7.22일부터 25일까지 아내가 쓴 일기입니다.
7.22.(월) 비
남해 시골집 반달 살이가 시작되었으나 남편은 어제 서울로 갔다. 아무래도 이 주 내내 사무실을 비우기 힘든가 보다. 식구와 남해를 두고 떠나는 뒷모습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나와 아이는 그나마 언니 가족이 이틀간 함께 할 수 있어 한 사람 빈 허전함을 달랬다.
어제 새벽 열났던 아이는 간밤 약 먹고 푹 잠이 들어 다행히 좋아졌다. 기력이 돌아왔는지, 오늘은 바다에서 사촌 형과 수영할 수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하루 더 참자고 하자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도 내일이 있다고 달랬다.
열한 시 넘어 ‘흔한남해’라는 집 근처 돈가스 식당에 들어갔다. 차로 오가는 길 마주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유명 유OO 채널 ‘흔한남매’와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똑같이 지어도 되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었다. 아이는 그런 나에게 ‘흔한남해’로 고쳐 얘기했다는데 기억에는 없다. 앞으로 남해 여행은 지레짐작하는 버릇보다는 아이의 시선에 맞춰야겠다는 생각이다.
상주 은모래비치로 출발했다. 차로 약 30분. 구불구불한 섬 길이지만 잘 정비되어 운전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산과 바다가 면면히 이어진 풍경에 한 번씩 빠져 감탄할 때마다 언니가 앞에 보고 운전하라며 질책했다.
돗자리와 야외 의자를 가져가 해변 나무 아래에 자리 잡았다. 하얀 뭉게구름이 자주 해를 가려줬으나 한낮은 여전히 뜨거웠다.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며 보드게임과 자기소개 게임을 했다. 중간중간 “딱!” 하는 소리. 형에게 벌칙 받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목이 아파 음식 삼키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데리고 근처 병원에 갔다. 목 안이 많이 부었다는 의사 소견, 서울에서도 달에 한 번은 감기로 고생했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사이 조카 둘은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바닷물에서 모래사장, 다시 그 반대로 번갈아 달려가는 장면을 가까이서 영상으로 남겼다. 장마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여전히 거칠고 혼탁한 파도였으나 바다 자체가 행복한 듯 두 팔을 뻗어 가슴에 담뿍 안았다. 그렇게 온몸으로 기쁨을 발산한 채 시원한 바다로 뛰어들었다. 반면 발만 담근 채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는 뭔가 아쉬운 표정이다.
한참 지나 누나가 다리에 물린 것 같다며 물에서 나오자 남동생도 따라 나왔다. 아마 오랜 물놀이에 배가 고픈 듯. 적당한 자리를 찾을 새 없이 짐 푼 곳에서 라면을 끓였다. 바닷바람 맞으며 앞다툰 젓가락질에 금세 동났다. 어쩌면 그 두 배를 마련했어도 항상 배고픈 중학생과 고등학생에게는 적은 양이 아니었을까. 아이는 간편식 적은 밥으로도 만족한 얼굴이다. 이윽고 바다로 다시 들어간 친남매 둘. 평소답지 않은 친근한 사이가 되어 작은 튜브 함께 나누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저녁은 고기구이. 휴가 온 언니에게 구워 주고 싶었으나 한사코 자신이 한다는 말에 집게를 건넸다. 이곳에 온 후 화장실 청소와 빨래, 음식 만들기로 잠시도 쉬지 않는 언니가 의아했다. 다만 이 번뿐만은 아니었기에 각자 다른 여행 방법이라 받아들였다. 평소라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 훌쩍 지났으나 손님들 마지막 밤, 늦게까지 집을 환히 밝혀 왁자지껄했다.
자기 전 아이 손발에 두드러기가 나타났다. 알레르기 증상인가 걱정스러워하는 내 표정에 내일 수영을 못할까 불안해했다. 곧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쳐 괜찮다고 달랬다. 짧은 일정이었다면 물에 한 번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겠으나 내일도 낫지 않는다면 괜찮다. 우리에겐 아직 열흘이 남았으니.
7.23.(화) 흐림, 비
언니, 유니, 주니 안녕
밤새 아이가 뒤척여 나도 잠을 설쳤다. 기분도 몸 상태도 좋지 않다. 가만히 보니 아이 입술에 물집이 돋았다. 요즘 수족구병이 유행이라더니 걸린 듯싶다. 오늘도 바다에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아기 때도 피했던 병이었는데. 남해 반달 살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여행 초반이 순탄하지 않다. 형과 누나의 따뜻한 위로가 오히려 아이 감성을 자극했다. 사촌 형이 돌아가기까지 삼 일 내내 함께 물놀이하지 못해 울음이 또 한 번 폭발했다. 서러워하는 아이를 보며 언니가 말했다. “야니야. 괜찮아 바다에 가서 물놀이하자!” 주변 사람들에게 옮을 수도 있어 내심 바랐으나 말할 수는 없었던 터라 개의치 않는 언니와 조카들이 고마웠다. 수포가 퍼지는 건 어울린 아이들 몫.
어제보다 가까운 송정솔바람해변으로 갔다. 돌아가는 날이라 서둘러 나온 탓일까, 자매가 함께 물건을 두고 왔다. 나는 모자와 소지품 가방, 언니는 튜브와 모자. 아이 키우는 사십 대 엄마들에게 늘 있는 일이다. 휴가철임에도 해변은 한산했고 구름 낀 하늘은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었다. 조카들과 아이는 나올 기색 없이 센 파도에 몸을 맡겨 한나절을 보냈다. 그 덕에 나와 언니는 파라솔 아래 나란히 앉아 망중한을 얻었다. 이제야 모두 만족스러운 시간을 가졌으나 헤어지게 돼 아쉬웠다.
오후 세 시 반. 돌아가려 자리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부르러 갔다. 짐을 옮기는데 유니가 어기적거리며 걸어왔다. 오른쪽 허벅지 안쪽에 붉은 반점이 생긴 게 해파리에 쏘인 모양, 통증이 꽤 커 보였지만 성숙한 누나답게 참으며 동생들이 물리지 않아 다행이라 말했다. 가까운 보건소에서 약을 바르고 나오는 길 해파리 쏘임 위험을 경고하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남해안 해파리 출몰 기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집에 도착해 몸을 씻기고 돌아가는 일행에게 든든히 밥을 먹였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 대전으로 가는 차편이 많은 사천 터미널에 내려주고 왔다. 해는 건너편 남해도 중턱에 걸쳐 아직 환했으나 석양 붉은빛이 진하게 드리웠다. 조금 있으면 칠흑 같은 어둠에 뒤덮인다. 허전한 분위기 그동안에 소란이 그리워 기분이 가라앉았다. 집을 정리하고 입맛 없는 아이를 위해 흰 죽을 끓였다. 단둘이 가진 저녁 식사, “후드득” 빗소리가 들렸다. 아뿔싸! 이불을 밖에 널어두었었다. 혼자 동분서주하며 걷고 의자에 앉으니 일행이 떠난 빈자리가 더 드러났다. 아이를 재우고 문단속했으나 적막함 속에 스며 나온 왠지 모를 불안감. 오늘따라 무언가 지붕에 뛰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에 잠 이루지 못한 채 그리운 남편이 떠올랐다. 어서 와주었으면 하는 마음. 휴대전화를 들어 며칠간 찍은 사진을 돌려보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꽉 찬 하루였는지라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