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일) 맑음
남해 반달 살이 첫날. 이 주 내내 회사를 비울 수 없어 오늘 서울로 돌아갔다 다음 주말 내려온다. 그때까지 한 주는 아내와 아이 둘만 머문다는 생각에 간밤 걱정과 허전함이 교차했다.
후텁지근한 밤, 냉방기 찬바람이 몸에 바로 닿는 게 싫어 한참을 미루다 마지못해 켰다. 새벽, 바뀐 잠자리에 여러 번 깬 아이가 말했다. “아빠 추워.” 조짐이 심상치 않았으나 이불 덮어 토닥여주었다. 여섯 시 커튼 사이 햇살이 비쳤다. 옆에 누운 아이에게서 열감이 들어 머리를 만지니 아뿔싸, 사십 도에 가까워 보였다. 오늘은 여행 첫날, 일찍 상주은모래해변 갈 계획이었다.
※ 반달 살이 집은 오늘부터 묵을 수 있어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 지냈다.
아이는 재차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해?” 엄마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웃기만 했다. 혹시 몰라 간밤 약도 먹였었는데. 난 농담 삼아 대답했다. “같이 서울 가자.” 그 말에 억눌렀던 속상함을 드러내며 큰 소리로 울었다. 오랜 기다림, 가장 좋아하는 사촌 형과 함께할 것을 고대했다. 뜻대로 되지 않아 닥친 슬픔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업어주며 하루 푹 쉬자는 말에 조금 진정되어 다시 눕혔다.
열 시 반, 호텔에서 나왔다. 아이는 몹시 아픈지 바다에 꼭 들어가겠다는 모습이 아닌 찡그린 얼굴에 축 처진 어깨를 하며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아빠 아파서 미안해.”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나도 미안해.’
창선도 지족리 해안 길에서 산 중턱으로 난 도로를 따라갔다. 머지않아 나타난 비탈진 갈래 길. 아래쪽 삼십 미터쯤 끝에 보이는 빨간 지붕이 우리가 지낼 곳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백 평 남짓, 앞마당 경계에 축대를 쌓아 평평하다. 그 위에 방 두 개 단층집과 처마 달린 평상, 창고 한 동이 있다. 스무 평 되는 잔디가 심겨진 마당은 넉넉하게 텐트 치고 야영할 수 있는 크기.
반달 살이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집 앞 주차가 문제였다. 도로에서 갈라진 내리막 굽은 길은 한 대 간신히 지날 수 있었고 가팔라 양옆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전등이 없어 밤 운전은 어려워 보였다. 넓고 반듯한 길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가 내내 맞닥뜨릴 불편함.
장마가 끝나고 휴가철이 시작된 일요일 오후, 같이 간 일행 바람으로 물횟집에 갔다.(처형네가 화요일까지 함께한다) 꽉 찬 주차장, 식당 대기자 목록은 이미 예닐곱 칸이 채워졌다. 이삼십 분이면 되리라 싶어 서둘러 우리 이름도 써두었다. 십, 이십, 삼십 분, 좁은 차 안에 있는 것이 지루해서 가게 앞으로 가 살피니 차례가 올 기미가 없었다. 지나간 시간만큼 돌아갈 때가 가까워 나도 모르게 불평이 나왔다. 한 시간 넘겼을 무렵 겨우 들어갔다. 굳은 얼굴로 물 회 한 그릇과 전복죽 하나를 시켰다. “소주가 사천 원밖에 하지 않네?” 무표정한 얼굴이 그제야 살짝 밝아진 걸 본 아내는 헛웃음 지으며 허락했다. 넉넉한 양, 입맛 없는 아이 몫까지 남김없이 그릇 비운 내 모습은 조금 전과 너무 달랐다. 다음에 온다면 식사 시간을 피해야겠다.
며칠 먹을 수 있도록 충분히 장을 보고 헤어지기 전 무언가 허전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매일 겪은 일을 기록하겠다는 아이의 말에 읍내 문구점에서 일기장과 연필, 스케치북을 사주고 둘과 작별했다.
서울 가는 버스는 출발까지 두 시간 남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남해읍 한가운데서 작은 일탈을 하고 싶었다. 맥주 캔 하나를 들고 다니며 외국 사람처럼 이따금 한 모금 들이켰다. 대낮, 거리에서 술을 즐김에도 눈치 주는 사람 하나 없는 이방인 모습 또한 여행의 일부였다.
삼각형 지붕 남해 성당에 들어가 잠깐 열기를 피하고 시장에 갔다. 일요일 낮이기 때문인지 손님보다 한가로이 부채질하는 초로의 상인이 더 많은 상점가를 지나 실내포장마차가 모인 작은 골목 끝까지 걷다가 돌아왔다. 터미널로 가는 길, 수산물 가게 작은 수족관 안에 유유히 헤엄치는 용치놀래기가 보였다. 그동안 작은 몸집에 화려한 색깔이 이질감 있어 잡자마자 버렸는데 이번에는 손질해 끓여 봐야겠다.
버스에 올랐다. 예매할 때는 몰랐던 대전 경유. 네 시간 반을 걸려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면 다시 지하철을 타야 한다. 어제와 오늘 이동시간만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