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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일곱째 날 - 재회

by 준환

7.26.(금) 흐리고 비


< 아내 >


날이 여전히 흐리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을 켠다. 난 밤사이 꽁꽁 잠가 둔 창문을 열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입 안 수포가 거의 아물었는지 청포도를 ‘첩첩’ 소리 내며 잘 먹는다. 열한 시 반 숙소를 나서 미국마을로 갔다. 남편은 서울에서 출발해 네 시 반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다. 미국마을 앞에는 더 위쪽 용문사로 이어지는 안내표지판이 있었다. 호기심에 올라가는 입구를 찾던 중 비가 내렸다. 그동안 여행에서 마주친 절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삼 배라도 짧게 올리고 싶었으나 비에 가로막혔다.


점심 시간이 다되었다. 아이에게 물으니 잔치국수라는 대답. 남해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주민이 많지 않아 원하는 데로 식당을 고르기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가까운 밥집에서 먹고 이순신 순국 공원으로 갔다. 마지막 전투, 처절했던 노량해전 영상을 보고 유배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갓 도착했을 즈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해 터미널이야.”


< 나 >


지난 일요일 서울로 돌아왔다가 남해 내려가는 날이다. 아침에 지방 출장에서 돌아와 터미널로 갔다. 출발까지 두 시간 남짓. 여행을 시작한다는 자유와 설렘, 새벽부터 서둘렀던 긴장이 풀어져 본능적으로 소주 한 잔이 끌렸다. 아침밥으로 설렁탕을 시켜 함께 느릿느릿 맛을 음미했다.


혼밥치고는 긴 시간을 보내고 그동안 거추장스러웠던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었다. 근처 서너 군데를 돌았으나 열지 않았거나 예약 손님이 있어 기다려야 했다. 차 시간이 점점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제법 큰 미용실로 들어가 물었다. “머리 자를 수 있을까요?” “네.” 반가운 대답. 귀를 푹 덮은 옆머리와 눈 찌를 듯한 앞머리까지 싹둑 잘라내니 마음이 상쾌했다. 마치 여행을 위해 쌓였던 불편함을 털어내는 느낌. 다만 너무 가지런하게 잘린 앞머리가 우리 아이와 흡사했다. 그냥 가면 놀림받을 것이 분명해 지그재그로 바꾸었다. “다시 확인하시겠어요?” “알아서 해주셨겠죠.” 출발을 앞두고 마음이 느긋해진다.


열한 시 반 차를 탔다. 자다 깨다 여러 번, 어느새 대전을 지나 차창 밖으로 기암이 보였다. 산꼭대기와 아랫녘은 나무가 무성한데 중간은 바위 절벽이 맨 그대로 드러났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이채로운 풍경을 살피다 나중에 오르려 기록했다. 지도에는 무주 근처 적상산이라 표기되었다.



두 시간을 더 달려 남해대교를 건넜다. 아내와 아이, 사랑스러운 가족을 만나니 한결 편안해졌다. 오늘은 친구 두 가족이 온다. 방이 두 개뿐이라 마당 나무 덱에 한 가족이 묵을 텐트를 쳤다. 한여름 후텁지근한 날이 걱정되었으나 들어가 앉으니 잔디밭 너머로 바다와 뒷산에서 번갈아 부는 시원한 바람에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 일곱 시 반, 하니 아빠는 오자마자 해 가림막을 쳤다. 땅이 무르지 않아 이곳저곳 지지대 박기를 여러 번, 한 길 높이로 완성했다. 곧 마당에서 저녁 먹으려고 불을 피웠다. 화로가 젖어 이십여 분이나 지났을 때야 숯이 빨갛게 타올랐으나 무더위에 얼마 되지 않아 집안으로 옮겨야 했다. 대학 친구 하니 아빠는 만난 지 이 년, 엄마는 두 배쯤 오래되었다. 그동안 하지 못한 긴 이야기는 술잔에 하나하나 조금씩 나누어 덜었다. 어느새 밖은 다시 비가 내렸다. 화덕 나무에 크게 붙은 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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