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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여덟째 아홉째 날 – 세 친구 가족

by 준환

7.27.(토) 비 온 뒤 갬


첫 날


간밤 동이네 가족이 왔다. 지난해 여름, 같이 휴가를 보내려 일정을 맞춰놓고 출발 전날 아내가 코로나19에 걸렸다. 보통은 식구들 옮을까 하는 걱정에 따로 시간을 보냈겠으나 동이네는 나와 아이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평창 산속에서 삼 일을 함께 보내며 고마움이 컸다. 오늘 남해 도착 한 시간 전부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 비가 왔다고 하는데 탈 없이 와주어 감사했다.


하니네가 묵은 텐트는 비를 막으려 덮개가 닫혀있었다. 지난밤 덥고 습한 날씨에 야영은 괜찮았을지. 일곱 시가 조금 지나 거실에서 연이은 기침과 말소리가 들렸다. 평소처럼 일어난 우리 아이가 낸 것. 늦게 도착한 일행이 깨어날까 보아 살금살금 방에 들어오게 했다.


일행모두 느지막이 둘러앉아 어디 갈지 찾아보았다. 아내는 이미 바닷가 두 곳을 다녀왔다. 그중 하나를 고르려다 다른 장소가 눈에 뜨였다. 이름도 산뜻하고 시원한 설리(雪里) 해변. ‘설꽂이’라고도 불리는 마을 이름과 같은 그곳은 실제 눈이 오지는 않지만 새하얀 눈 덮인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졌다. 다만 기대를 가득 품고 간 남해도 끝은 바람과 크게 달랐다. 간밤 세차게 내린 비에 바다는 갈색, 속이 보이지 않았고 스티로폼과 나뭇가지 부유물이 가득했다. 강릉살이 동안에도 폭우 뒤 대개 이랬던 듯 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에서 망설였다. 아이는 부모 그림자를 보고 큰다고 했던가, 아비가 주저하는 모양에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외려 일행에서 제일 어린 하니가 거친 바다를 가장 사랑했다. 센 파도에 뒤집히고 밀려나길 여러 차례. 그래도 마냥 즐겁나 보다. 제 키를 넘는 물결이 밀려오자 가까이 있던 내 손을 끌어 불안 줄이며 깊은 곳에 재차 들어갔다. 해변에서 빠질 수 없는 모래놀이. 연년생 아이들은 아빠들이 파 놓은 구덩이에 들어가 머리만 쏙 내민 채 한참 열중했다.



마치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 짐을 꾸렸다. 전날 피로와 긴 이동으로 시골집에서 휴식하고 싶던 듯, 물에 젖은 아이들을 차례로 대강 씻기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셋은 삼천포로 갔다. 큰 어시장을 천천히 왔다 갔다 하다 나이 지긋한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는 횟집에 섰다. 난 몇 년 전 속초 동명항에서 고래회충에 걸린 적 있어 깨끗한 바닷물과 싱싱한 생선이 담긴 수족관을 유심히 찾았는데 딱 맞는 곳이었다. 삼 킬로그램 가까운 광어 하나와 적당한 크기 우럭 여럿을 주문하며 각자 아내에게 혼이 날까 걱정되었으나 잠시 지청구를 듣기로 했다.


어스름이 깔린 저녁, 마당에 의자를 펼쳐 긴 밤을 보냈다.



7.28.(일) 맑음


둘째 날


이른 아침부터 불을 피웠다. 여전한 더위에 가족을 실내로 피신시킨 하니 아빠는 텐트를 혼자 공간으로 만들었다. 전날 비 젖은 장작으로 메케한 연기가 스멀스멀 파고들었으나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문득 바다 위 하늘로 눈을 돌렸다. 한눈에 담기 어려운 말 모양 흰 구름이 형체를 가늠할 수 없게 바뀌었다. 금새 여행이라도 떠난 듯. 마당 너머 아래 큰길에서부터 소란스레 올라온 경운기는 집 문 앞을 능숙하게 지났다. 그 길은 웬만한 차가 다니기 어렵다고 여겼던 각진 ‘ㄹ’ 자 이다. 우리는 비좁고 낯선 길에 언제쯤 익숙해질는지. 평범한 시골 하루를 다시 맞이했다.


전날 늦게까지 어울려 오전 내내 힘이 없었다. 일어나고 눕기를 반복하다가 열두 시가 다 되어 기력을 차렸다. 휴양림과 해수욕장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한낮 해가 가려진 계곡을 골랐다. 창선교를 지나 왼편 독일마을 쪽으로 가다 보면 다리가 하나 나온다. 동천교. 아래는 화천이란 이름의 큰 내가 흐른다. 멀리서부터 도롯가에 차들이 줄지어 섰고 물에 들어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오래전부터 여름철 다리 밑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더위를 피하기 좋은 장소, 천을 따라 부는 선선한 바람에 온도가 누그러져 한낮에도 앉아 있기 좋았다. 어른 평균 키보다 깊은 데까지 헤엄치며 물속을 관찰했다.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이도록 깨끗한, 남해군에서 가장 좋은 계곡이라는 안전요원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둑 아래는 물살이 조금 센 허벅지 깊이였다. 튜브에 앉아 미끄럼 타는 어린아이 둘. 엉덩이가 돌에 배겨 멈출 때까지 다리를 움츠렸다 펴며 조금이라도 멀리 가려 한다. 아빠들도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해가 뉘엿뉘엿 진다. 마지막 저녁 동이 아빠는 낚시를 제안했다. 지족항 근처에는 선상 낚시하는 곳이 많다. 바다 가운데까지 삼십 분, 서너 시간 고기를 잡다 돌아오는 일정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버거웠다. 대신 낚싯대를 빌려 아버지마다 하나씩 들고 방파제 위에 섰다. 각자 아이의 응원을 받으며 갑작스레 시작된 경쟁. 시작은 나였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아이는 첫 물고기에 뛸 듯 기뻐하며 자랑하기 바빴다. 아이 셋은 곧 고기 담은 통에 모여 처음 보는 것인 양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신기해했다. 다음은 동이 아빠. 등에 가시 달린 손바닥 길이였다. 내가 다시 한 마리 낚자 여덟 살 막내 하니가 뾰로통해졌다. “지렁이를 열심히 끼웠는데 대체 아빠는 언제 잡아?” 그 성화 덕이었는지 마침내 한 마리를 잡았다. 모두 여섯, 빌린 값 오만 원에 비하면 보잘것없었으나 재미에 만족했다. 보리멸을 빼곤 처음 보는 것들이라 이름을 알 수 없었다. 모두 풀어주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오기 전 이미 식사를 마쳐 남은 장작에 불 붙이고 간단한 먹을거리만 준비했다. 다디단 마시멜로 향과 소시지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장작 불빛에 가려 선명하지는 않더라도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별이 하늘에 촘촘히 박혔다. 시골이 오랜만인 아이들은 밤하늘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려 옥상 지붕으로 올라갔다.


아쉬운 밤, 이미 절반쯤 감겨 졸린 티가 역력한 얼굴에도 잠자지 않고 버티던 아이들은 하나둘 방으로 들어가고 아빠들은 한참 더 이야기를 이어갔다. 밤바람이 시원하다며 하니 아빠는 삼 일째 텐트에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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