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향기 따라 걷는 밀양의 시간
밀양강을 따라간 누정의 하루(2) 2026.3.5. 목
(영남루와 밀양 향교 그리고 밀양박물관
금시당을 나서며, ‘맛집’이라는 간판을 내건 추어탕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주인장을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여행길에서는 이런 소소한 어긋남마저 하나의 풍경이 된다.
다음 목적지인 영남루 인근, 한적한 골목 안 되지국밥집으로 들어갔다. 고기와 순대가 들어간 국밥을 시키면서 고추장을 따로 달라고 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국밥은 생각보다 매웠고, 결국 국물은 그대로 남기고 말았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좌측 길로 올랐는데, 그곳은 후문이었다. 길을 잘못 들었지만, 그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졌다. 박시춘 생가에 이르자 ‘애수의 소야곡’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이끌리듯 생가로 올라가, 아담한 초가 마루에 앉았다. 그 시절의 아픔을 노래한 작가를 잠시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불러 보았다.
영남루 후문 좌측의 무봉사로 먼저 들렀다. 산비탈에 자리한 절이라 크지는 않았지만, 아담하고 고즈넉했다. 무엇보다 밀양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았다. 대웅전 안에는 보물인 석좌여래좌상이 그대로 모셔져 있었고, 석탑 앞에는 봄을 알리는 매화가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종무소 옆 종각으로 돌아가니 홍매화도 피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제 영남루를 마주할 시간이었다. 무봉사를 내려와 후문으로 들어섰다. 넓은 광장에 들어서자 밀양강을 바라보며 영남루가 턱 버티고 서 있었다. 두 개의 정자를 갖춘 그 모습은 과연 우리나라 최고의 누각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지붕 아래에는 ‘영남루’ 현판을 중심으로 ‘강좌웅부’, ‘교남명루’라 쓴 현판이 나란히 걸려 위엄을 드러냈다. 영남루에 올라 강을 내려다보고 싶었으나, 보수 중이라 출입이 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뒤편의 천진관으로 들어갔다. 단군 이래 역대 창건 시조의 위패가 모셔진 곳으로, ‘천부경’과 함께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글귀가 걸려 있어 인상 깊었다.
공영주차장으로 내려오니 바로 앞이 아리랑시장이라, 자연스레 발걸음이 옮겨졌다. 구역마다 나뉜 시장 골목은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이곳저곳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왜 이곳에서 점심을 먹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에 오면 꼭 시장에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을 나와 영남루 정문으로 향하니 밀양아리랑 노래비가 반겨주었다. 가사를 읽으며 잠시 따라 불러보았다.
봄 매화와 가을 은행나무로 유명한 밀양향교로 향했다. 그러나 교동 밀성손씨 고가 집성촌 쪽 주차장이 막혀 있어 되돌아 나와 밀양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 입구는 한산했고, 입구에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관람실로 들어가려 하자 “잠깐만요” 하고 안내 직원이 나왔다. 70세 이하이면 입장권을 끊어야 한다며, 70세 이상이면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무료 관람인 줄 알고 들어가려다 잠시 머쓱해졌다.
직원은 친절하게 관람 순서를 안내해 주었고, 박물관 안은 한동안 나 혼자만의 공간이 되었다. 역사와 민속 전시를 둘러보고, 화석 전시관을 거쳐 독립기념관을 나오니 태극기 변천 스탬프가 있어 찍어 나왔다.
차를 아리랑 아트센터 주차장으로 옮겨놓고 향교까지는 걸어갔다. 막상 교동 고가 집성촌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비어 있었고, 곳곳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차를 가져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활짝 핀 매화나무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신을 벗고 향교 대청마루에 올라앉아 다리를 풀고 있었다. 그때 한 분이 다가와 디딤돌 위에 벗어둔 내 신을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놓고 갔다. 이런 또 하나의 작은 결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조금 덜 붐비자 매화나무가 있는 포토존으로 다가갔다. 뒤편의 흙담장과 쪽문, 돌계단과 지붕이 어우러져 매화나무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매화는 화사하게 만개해 향기를 품어내고 있었고, 그 앞에서 나 또한 차례를 기다려 사진을 남겼다. 한 그루의 매화나무가 이토록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또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문득 가을이 떠올랐다.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향교의 풍경은 또 어떤 모습일까. 계절을 달리해 다시 이곳을 찾게 될 이유가, 이렇게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