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당 플러스

숫자로 시작된 변화, 습관으로 이어진 날

by 허정호

건강검진 독촉 문자를 몇 번이나 받았다. 그때마다 ‘다음에 가지 뭐’ 하며 미루다 보니, 어느새 해를 넘기기 직전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게 됐다. 대장암 검사 대상자라 분변을 챙겨야 했지만, 검사용 용기 대신 면봉으로 살짝 떠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가는 나 자신이 어쩐지 민망하게 느껴졌다.

“일찍 오셔야 합니다.”

간호사의 말을 떠올리며 서둘러 도착했건만,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나처럼 해를 넘기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병원은 북적였다. 검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피를 뽑고, 상부 엑스레이를 찍고, 위내시경까지 이어졌다. 혈압은 다소 높게 나왔지만 집에서는 늘 정상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위내시경 결과는 곧장 나왔다. ‘경미한 위궤양.’ 2주치 약을 처방받고, 혈액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에 확인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결과지를 받아든 순간, 머릿속이 잠시 하얘졌다. 총콜레스테롤은 기준치를 넘었고, 혈당은 137. 그 아래 적힌 ‘당뇨병 확진 대상자’라는 문장이 유독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2년 전만 해도 안전권에 가까웠던 수치였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순간 어지러움이 스쳤다. 이제 정말로, ‘관리’라는 걸 시작해야 하는 걸까.

간이 검사로 다시 측정한 혈당은 117. 예전과 비슷한 수치였다. 그제야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의사는 “약을 쓸 단계는 아니다”라며 식이요법과 운동을 권했다. 아침과 점심은 잘 챙겨 먹고, 저녁은 가볍게 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단순한 조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닭가슴살, 돼지 안심, 숙주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이게 했다. 그날 이후 식탁이 달라졌다. 아침과 점심은 넉넉히, 저녁은 가볍게. 세 끼 밥의 양도 30% 줄였다.

아침에는 밥 2/3공기에 집에서 만든 요구르트, 삶은 콩을 갈아 만든 콩국이나 콩가루, 그리고 채소 볶음을 곁들였다. 점심은 고기와 채소 위주로 든든하게 먹고, 저녁은 생선이나 두부, 계란, 국물 적은 된장찌개로 소박하게 마무리했다. 식당에서도 자연스레 선택이 달라졌다. 고기구이집 대신 생선탕이나 추어탕을 찾고, 무거운 메뉴 대신 한정식집으로 발길이 향했다.

혈당 수치라는 숫자는 차갑고 단정했다. 하지만 그 숫자를 관리하는 나의 하루는 오히려 따뜻해졌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움직일지 스스로 돌보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2년마다 의무처럼 받던 건강검진이, 이제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저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나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는 신호등 같은 것이 되었다. 빨간불이 켜졌을 때 잠시 멈추고,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작은 경고였다.

해를 넘기기 직전에서야 시작된 변화였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더 늦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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