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첫 수업료
여행의 첫 수업료
2019년 11월, 겨울 초입의 바람이 아직은 선선하던 어느 날.
공항으로 가는 길은 늘 설렘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날은 공항 주차장이 만차라 사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봉고차에 몸을 실은 채 공항으로 향했다.
결혼 30년을 기념하는 여행, 동갑내기 부부와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마음은 들떠 있었지만, 공항을 오가는 번잡함 속에 작은 불편함은 늘 따라붙기 마련이다.
공항에서 만난 여행사 직원은 예전과 달리 우리를 세심하게 챙겨주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여행사 가이드는 간단히 전달만 하고, 나머지는 여행객의 몫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비행기 출발까지 두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둘러보다가 “그래도 한식이 최고지” 하며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전자 발권대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전광판의 번호를 눈으로 좇다 번호가 뜨면 직접 음식을 받아오는 시스템. 내겐 이네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계산도, 음식 받는 일도, 뒷정리도 모두 손님 몫이 되었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할 일만 늘어난 것 같아 씁쓸했다.
씨엠립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가 넘었다. 공항 안은 이미 다른 비행기에서 내린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입국심사대 앞은 인산인해. 우리도 밀려가듯 비자 발급대로 향했다.
비자신청서를 작성하고, 여권 사이에 30달러를 끼워 제출했다. 이제 여권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행객이 입국장을 빠져나간 뒤에도, 내 여권만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심사대에서 들려오는 큰 목소리.
“허*호, 허*호!”
어색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여권을 흔드는 손이 보였다. 손을 흔들며 다가가자, 그 직원은 다시 말했다.
“30달러.”
나는 이미 여권에 넣어 제출했다고 손짓으로 설명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30달러.”
몇 번을 말해도 같은 말만 반복됐다.
“빨리 주고 나가자.”
아내의 재촉에 억울함은 잠시 접어두었다. 결국 30달러를 다시 건네주고서야, 나는 여권을 돌려받았다.
수화물 찾는 곳에서는 가방 네 개가 묵묵히 주인을 찾아 빙빙 돌고 있었다. 그제야 숨을 내려놓고, 비로소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공항을 나오자 가이드는 먼저 나온 열두 명과 함께 작은 종이를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서서야, 나는 묘한 허탈감에 휩싸였다.
가이드에게 비자 발급비를 두 번 냈다고 말하자,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허술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냥 잊어버리세요.”
그 말이 더 씁쓸했다.
내가 그렇게 허술해 보였을까.
여권에 돈이 들어 있음을 분명히 확인시키지 않은 내 잘못일까.
아니면, 마지막에 이름을 불러 긴장하게 만든 그들의 노림수였을까.
30달러를 두 번 내고서야 시작된 여행.
나는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마디를 되뇌었다.
“내 여권 돌려줘!”
여권은 돌아왔지만, 마음 한구석엔 작은 금이 간 것처럼 씁쓸함이 남았다.
금액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날 밤, 나는 돈보다도 여행에 대한 믿음을 잠시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여행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라 했지만,
그날 내가 처음 마주한 것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었고,
설렘보다 먼저 배운 것은 ‘조심’이었다.
버스 창밖으로 스쳐 가는 씨엠립의 밤거리 불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국의 첫 공기 대신 내가 치른 것은
작은 수업료였을지도 모른다.
여행은 그렇게,
기념일의 들뜬 마음 대신
조심스러운 마음 하나를 내게 남긴 채
조용히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