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두 개인 집으로 이사하다

이사하는 날의 마음

by 허정호

이사하는 날의 마음

욕실이 두 개인 새 집을 계약했다.

아내는 마지막까지 전망 좋은 집을 놓지 못해 망설였지만,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보자는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퇴직자는 관리비부터 줄여야 한다지만, 우리는 오히려 7평 더 큰 집으로 갔다.

인생이란 늘 계산처럼 흘러가지는 않는다.

1992년, 처음 분양받은 집. 전세를 놓고 외지에서 떠돌다 2004년,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진주로 돌아온 지 벌써 17년.

분양받은 지는 어느새 28년이 흘렀다.

아내가 그 집을 좋아한 놓지 못했던 이유는

해가 떠오르는 기운, 아침마다 붉게 물드는 노을, 베란다의 작은 화분들.

이 세 가지가 그녀를 매일 웃게 했다.

그래서 집을 떠난다는 생각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공인중개소 두 곳에 이름을 올리고 보름을 기다렸다.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시간이 흘러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먼저 집부터 팔고 오세요.”

집도 보여주지 않으며 퉁명스럽게 말하던 중개소 사장의 말이 귀에 걸렸다.

전단지를 만들어 전봇대에 붙여 보기도 하고, 인터넷 블로그를 한다는 다른 중개소에 다시 의뢰하기도 했다.

그 사장은 집 상태를 보겠다며 직접 찾아왔고, 조망 사진을 찍고, 내가 찍어둔 일출과 아침노을 사진까지 달라고 했다.

“전망이 좋아서 가격만 맞으면 금방 팔릴 겁니다.”

그 말 한마디에 우리 마음의 매듭이 조금은 풀렸다.

며칠 후, 외출 중에 연락이 왔다.

집을 보러 왔다는 소식에 운동 중이던 딸에게 급히 연락해 집을 정리해 달라 부탁했다.

어머니와 딸로 보이는 두 사람이 둘러보고는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밤이 되어 두 사람은 또 한 명을 데리고 다시 찾아왔다.

멀리 펼쳐진 야경에 반한 듯 창밖을 오래 바라보더니 가격을 강하게 눌러 깎아왔다.

한숨이 나올 만했지만, 사람이라는 게 또 타이밍이 있으니 기분 좋게 흥정을 끝냈다.

그렇게 계약금이 건네졌다.

집이 팔리고 나니, 이번엔 우리가 더 서둘렀다.

3월 중순으로 잡았던 이사 날짜를 앞당겨 3월 초로 옮기고, 2월 중순까지 집을 비워달라고 부탁했다.

소파, 장식장, 신발장 등을 시골집으로 옮기고, 아들은 오래되어 입지 않은 옷과 장식품들을 ‘당근마켓’에서 팔았다.

아내는 화분을 정리하며 몇 개만 남기고 모두 시골집으로 가져갔다.

분갈이하던 아내의 손끝에서 오래된 집에 남아있던 아쉬움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2월 중순 매매 계약을 마치고 법무사에서 서류 등기까지 마쳤다.

새 집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체 리모델링 대신 필요한 부분만 고쳤다.

도배는 친환경 업체를 찾았다가 코로나로 무산되어 시내 업체에 맡겼는데, 벽지가 들뜨고 쭈글거려 결국 두 번이나 다시 해야 했다.

조명은 직접 보고 골랐고, 싱크대와 욕실 유리는 비대면으로 상담해 해결했다.

이사 준비라는 게 늘 생각보다 더 많은 작은 선택들로 이루어졌다.

이사하는 날 아침

8시에 오겠다던 이사팀은 7시 조금 지나 들이닥쳤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던 중이라 잠시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귀중품이 든 가방과 상자를 승용차에 옮겨 실었다.

월요일이라 출근하지 않은 차량들이 많아 짐을 내리지 못한 채 한참을 기다렸다.

9시가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이사가 시작되었다.

관리비를 정산하고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잔금을 받았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마음속에 시원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28년의 시간은 그렇게 한순간에 문턱을 넘어갔다.

특히 그 집을 직접 분양받았던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더 허전했을까.

평소 같으면 이삿짐 정리로 정신이 없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짐은 그대로 둔 채, 잠시 떠나기로 했다.

머물던 공간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시간이 필요했다.

딸은 오빠 집으로 갔고, 아내와 나는 며칠 전 미리 난방을 해두고 먹거리를 준비해 두었던 시골집으로 향했다.

3일간의 휴식을 끝내고

새로운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오래 붙잡고 있던 기억들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빛이 드나들던 창, 꽃들이 자라던 베란다, 아침마다 붉게 번지던 노을.

그 모든 풍경들이 우리를 보내주듯 고요하게 뒤에 남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07화낯섦 속에 스며든 친근함과 미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