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으로 살아남기

익숙함을 잃고 난 뒤에야 알게 된 진실

by 허정호

왼손으로 살아남기


2020년 봄, 일요일 아침이었다.

딸은 “아빠, 이거 타지 마세요”라며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내가 운동하는 사이 무심코 롤러 위에 발을 올렸다. 몇 바퀴 굴리며 몸을 풀던 순간,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오른손이 바닥을 짚었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했지만, 곧 아내가 달려왔다.

“꼼짝 마. 그대로 있어.”

그 말과 함께 약통이 열렸고, 나는 그대로 ‘붕대 말이’가 되었다.

그 순간 문득 장모님이 떠올랐다. 예전에 장모님이 실내 자전거를 사고 싶어 하셨을 때, 나는 “자전거 위험해요”라며 한사코 말렸었다. 그럼에도 장모님은 자전거에서 잠시 조는 사이 균형을 잃고 넘어져 크게 다치셨다. 그 일을 떠올리니, 이번 사고가 더 미안했다. 조심하라고 말하던 내가 정작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

사고 당시 손가락은 움직였지만 손목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오후부터 서서히 붓기 시작했고, 푸른 멍은 3주가 지나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침이면 손이 크게 부어 주먹을 쥐기 어려웠고, 오후가 되면 조금씩 나아졌다. 아이들은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나는 “조금씩 좋아지니까 괜찮다”며 시간을 믿었다.

식사는 자연스럽게 왼손의 몫이 되었다. 아내는 포크를 쥐여주며 “이렇게 먹어야지”라고 도와주었다. 처음엔 숟가락으로 입을 가져가며 겨우 밥을 먹었고, 3주쯤 지나자 조금씩 왼손 젓가락질이 가능해졌다. 4주째부터는 반찬을 집는 것까지 무리가 없었다.

가장 어렵던 것은 칫솔질이었다. 오른손의 익숙한 동작이 왼손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거울 앞에서 각도를 맞춰도 칫솔은 자꾸 잇몸을 때렸고, 결국 잇몸이 부어 칫솔질조차 불편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야 비로소 왼손 칫솔질에도 감이 생겼다.

6주쯤 지나고서도 손바닥을 바닥에 짚는 동작은 여전히 힘들었다. 아침이면 손목이 다시 부었고, 오후가 되면 조금씩 가라앉는 상태가 반복됐다. 대신 왼손을 자주 쓰며 엄지에 힘이 붙었고, 엄지 손가락이 눈에 띄게 비 정상적으로 굵어졌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 고통의 순간들도 어느새 하나의 경험으로 남았다. 여전히 롤러를 볼 때면 그때의 부탁을 흘려들었던 것을 떠올리며 웃음 섞인 후회가 밀려온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을 되새겨 본다. 서두르지 말 것, 과신하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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