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장날, 펑튀기를 만나다

장날의 냄새, 펑 소리로 피어오르다

by 허정호

장날의 냄새, 펑 소리로 피어오르다

시골집 내려가는 날이 산청 장날이거나 단계 장날이면 어김없이 장 구경을 한다.

오늘은 아예 시골집에 내려가는 날을 산청 장날에 맞췄다.

아내는 “산청 무가 맛있다”며 꼭 사 가자고 했다.

시장 안은 한산했지만, 난전만큼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장날의 참맛은 언제나 난전에 있는 듯하다.

공용주차장엔 빈자리가 없어 외곽에 차를 대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살 것들을 정했다.

김장철인데도 배추와 무를 파는 곳이 많지 않았다.

산청은 추운 지방이라 김장을 일찍 하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무를 파는 세 곳 중 가장 튼실해 보이는 곳으로 발길이 갔다.

한 개 크기가 1.5kg은 족히 될 만큼 동치미 담그기 좋은 무였다.

한 개 천 원이라는 가격도 마음에 쏙 들었다.

아내는 다섯 개를 사겠다며 세 개를 골랐다.

그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주인은 남은 두 개를 직접 골라 마대에 담았다.

마대를 드니 묵직함이 만만치 않아, 아내와 함께 양손으로 들었다.

갓은 오이와 볶아 먹겠다며 한 단 6천 원짜리를 샀다.

짐이 무거워서 먼저 차에 옮겨두고 다시 장터로 향했다.

난전을 두 바퀴나 돌아도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걸자, 아내는 옥수수를 튀겨 가자며 펑튀기 가게로 오라고 했다.

지난번 아들 집에 갔을 때 마트에서 산 펑튀기를 맛있게 먹던 모습을 보고, 이번엔 제대로 튀겨주고 싶다며 벼르고 있었던 참이다.

도착하니 마침 우리 차례였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누룽지가 튀어나왔다.

고소한 냄새가 장터 가득 번졌다.

펑튀기 사장님이 갓 튀긴 누룽지 하나를 건네자, 아내는 국산 강원도 강냉이가 맞는지 다시 확인하고 단 것은 넣지 말아 달라고 했다.

옥수수 한 돼 가 기계 속으로 들어갔다.

어릴 적 펑튀기는 장작불에 달궈 손으로 돌렸지만, 지금은 가스와 전기로 움직인다.

세월이 참 많이도 변했다.

10분 남짓 지났을까, 다시 ‘펑!’ 소리와 함께 고소한 향기가 장터를 뒤덮었다.

곧 커다란 비닐푸대 하나가 따끈한 강냉이로 가득 찼다.

아내는 두 손으로 푸대를 안아 들고 “냄새 참 좋다”며 한 줌 먹어 보라고 건넸다.

나도 한 줌 받아 입에 넣는 순간, 어릴 적 장터 풍경이 입안에서 되살아나는 듯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아내는 난전에서 파는 호박죽을 보고

“저거 두 개 사서 점심으로 먹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호박죽이 당기지 않아, 시골집에 가서 비빔밥을 사 먹자고 했다.

도토리묵도 사 가자고 했는데, 펑튀기 구경에 푹 빠져 그만 잊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은 고소한 냄새로 가득했다.

아내와 나는 허기를 달래며 한 줌씩 펑튀기를 집어 먹었다.

장날의 향기, 소리, 사람들의 온기까지—

오늘 하루는 ‘펑’ 하고 터진 그 순간처럼 사르르 마음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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