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달린 꼬리표, 농부

농부가 된다는 의미

by 허정호

늦게 달린 꼬리표, 농부(2020년 6월 말)

2006년, 특별조치법이 시행되던 해에 부모님으로부터 집과 논, 밭을 모두 증여받았다.

부모님이 살던 시골집은 아내 명의로, 대지는 두 동생 공동명의로 등기를 했다. 논 두 필지와 밭 한 필지는 내 명의였다.

부모님이 필요하면 언제든 팔아 쓰시라고 형제들과 이미 이야기를 나눈 뒤였다.

그때는 몰랐다.

시골집을 아내 명의로 해둔 것이 이렇게 오랫동안 ‘2 주택자’라는 꼬리표로 나를 따라다닐 줄은.

논과 밭은 부모님이 직접 농사를 지으셨다.

그러다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시면서 농사는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이 되었고, 논과 밭은 가까운 친지와 동네 이웃에게 맡겨졌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 나 역시 직접 농사를 지을 형편은 아니어서 8년 동안 농지개량조합에 위탁해 식량으로만 이어갔다.

퇴직을 계기로 나는 부모님이 살던 집으로 주소를 옮겼다.

그리고 조금씩 땅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논 두 필지 중 한 필지는 직접 경작하기로 했다. 쌀농사를 시작했다.

다른 한 필지는 이웃에게 계속 맡겼다.

밭은 오랫동안 어머니 친구분이 농사를 지어왔지만, 세월은 그분에게도 공평했다.

몇 해 전부터 밭 일부만 경작되고 나머지는 그대로 묵었다. 풀은 허리 높이까지 자라 있었고, 밭은 밭의 얼굴을 잃고 있었다.

“이제 젊은 사람이 지어야지.”

그 한마디와 함께 밭은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일부는 계속 맡기고, 묵혀 있던 땅은 풀을 베고 경운기로 갈았다.

40평씩 나누어 들깨를 심고, 호박을 심고, 가죽나무와 음나무를 심었다.

씨앗을 묻는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요구했다.

면사무소에 들러 논 한 필지와 밭을 직영으로 농지원부를 고쳤다.

농자재를 산 영수증을 챙겨 농산물품질관리원에 가서 농업경영체 가입을 신청했다.

관리원에서는 이전에 농사를 짓던 사람에게 임대를 그만두었는지 확인했고,

실제로 작물을 심어 재배하는지도 현장에서 확인한 뒤에야 승인이 난다고 했다.

서류를 접수하고 돌아온 뒤,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확인을 나온다는데, 풀부터 정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논만으로도 가입이 가능한데, 밭까지 서둘 필요는 없었는데,

알면서도 괜히 낫을 들고 나섰다.

땀이 쏟아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서 괜히 쌩고생하는 건 아닐까.’

한 달 뒤, 농업경영체 등록이 되었다.

의료보험료 감면도 신청했다.

서류 한 장으로 삶의 이름이 농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농업경영체 가입과는 별개로, 일정 규모 이상의 농지를 가지고 있으면 농협 조합원이 될 수 있었다.

2백만 원 출자를 하고 지역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그렇게 나는 퇴직과 함께,

대단하지도 크지도 않은,

하지만 분명한 이름 하나를 얻었다.

소규모 경작을 하는 농부.

땅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한참 늦게서야 그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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