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로 하나가 지나간 뒤, 남은 선택에 대하여
밭두렁 너머로 보낸 시간
부모님께서 면 소재지로 이사 오시며 개울 건너편의 밭을 구입하셨다. 집에서 바라보면 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약방 일을 하셨고, 밭농사는 어머니의 몫이었다. 나는 주말이면 집에 내려와 어머니를 도와 밭일을 거들곤 했다. 괭이나 삽으로 흙을 뒤집어 두둑을 만들면, 어머니는 그 위에 씨를 뿌리셨다.
아버지는 늘 밭 위쪽을 가리키며 “이 자리가 묘자리로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는 농사만이 아니라, 이 땅과 함께 늙어가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9년 전 어느 날, 어머니는 윗동네 김 씨가 밭 옆으로 농기계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내고 싶어 한다며 밭 일부를 달라고 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길을 내는 것에 동의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길이 나고 난 뒤, 아무런 보상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는 이 일이 마음에 걸린다며 확인해 보라고 하셨고, 나는 수소문 끝에 당시 농로 조성의 책임자를 찾아갔다.
그는 어머니께서 밭을 무상으로 내주신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밭을 준 것이 아니라, 길을 내는 것을 허락했을 뿐이었다. 이미 원상 복구가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밭을 매수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정리되었고, 결국 농지가 많은 두 사람이 그 밭을 사게 되었다.
등기하는 날, 농로 책임자는 다시 부탁을 했다. “트랙터가 다니기엔 길이 좁으니 30센티미터만 더 내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농기계가 오가며 길은 파였고, 밭두렁은 허물어져 있었다. 나는 논두렁이 무너지지 않게 제대로 보수해 달라는 조건으로 이를 허락했다.
하지만 2019년 봄, 직접 밭농사를 지으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랙터와 트럭이 지나가며 언덕은 무너졌고, 어떤 구간은 밭두렁이 사라져 접근조차 어려웠다. 여름 장마가 오기 전 보수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나무 말뚝 몇 개를 박아 놓은 임시 조치뿐이었다.
이듬해 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밭두렁은 더 내려앉았고, 농로 쪽의 흙은 계속 흘러내렸다. 다시 보수를 요청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큰 돌을 가져와 길을 막아버릴까 여러 번 고민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었다.
가을이 되어 농작물을 모두 거둔 뒤, 밭두렁을 다시 살펴보았다. 좁은 길 위로 대형 농기계들이 다니며 지반은 꺼졌고, 흙은 쓸려 내려가 말뚝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더 이상 이 상태로 밭을 유지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동생들과 상의 끝에, 밭을 팔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부모님이 오랫동안 농사지으신 땅이라며, 너무 아깝다고 서운해했다. 나 역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했다. 밭두렁을 확실히 보수해 주든지, 아니면 밭을 사서 길을 정비하든지 선택하라고. 며칠 뒤, 밭을 사겠다는 연락이 왔고 밭두렁 문제도 그제야 함께 마무리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흙을 일구며 보낸 시간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더는 지켜내기 어려운 땅이었다. 이별에는 늘 아쉬움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이제는 조용히 인정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