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속에 남겨둔 집을 정리하며
할머니 이사 하는 날
2020년 추석을 앞두고 벌초 대행을 맡긴 산림조합에서 연락이 왔다.
묘지가 많이 훼손되었다는 말과 함께 몇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봉분 앞 상석은 허물어져 내려앉았고, 봉분 왼쪽은 깊게 파여 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고향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게 되면서 벌초도 대행으로 맡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묘지 관리가 소홀해졌다.
당장 보수를 해야 했지만 코로나가 발생했고, 하루하루 미루다 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다.
할머니는 비바람에 집이 무너져 살아가기 힘들고, 빗물이 새어 들고 무너진 틈으로 바람이 들이치는데도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것이 못내 서운하고 화가 나지 않았을까?
비가 조금만 더 와도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아 큰비 오기 전에 서둘러 이장을 결정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 할머니 산소를 걱정하며 내게 몇 번이고 부탁하셨다.
“호야, 비만 오면 계곡물이 넘쳐서 산소가 허물어지는데, 뼈는 화장을 해서 주위에 뿌리면 된다.”
할머니 산소를 이장하라는 말씀이었다.
언제부턴가 추석날 할머니 성묘는 묘지 보수의 날이 되었다.
너구리란 놈이 산소에 굴을 파 집을 짓고 살며 할머니를 지켜주고 있었는데, 여름 장마철이면 그 굴로 물이 스며들어 봉분과 주위가 허물어져 발이 푹푹 빠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인근 계곡에서 돌을 주워 와 너구리 굴과 허물어진 땅을 메웠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봉분을 손보며 지냈지만, 어느 해에는 심한 비로 계곡물이 넘치고 봉분 위쪽에서 물이 쏟아져 내려 봉분 옆 한쪽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그때는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할 정도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종중 묘지로 함께 모시기로 하고 묘지석을 제작했다.
비석에는
「제32대 양천 허○○, 개성 왕○○ 지묘」
라고 할머니의 성과 이름을 그대로 새겼다.
아버지는 예전에 공동묘지에 불이 났을 때 할아버지 산소만 타지 않았다고 하시며, 할아버지는 산소는 그대로 두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이장하지 않고 기존 자리에 묵히고, 종중묘지에 비석만 세우기로 했다.
이사 날짜를 특별히 잡은 것은 아니었다.
손 없는 날이 좋다고 해서 음력 9일로 잡았다.
날씨는 흐렸고 비 예보도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아 오히려 이사하기에 더 좋았다.
마을 앞 장사익의 ‘찔레꽃’ 노래비가 있는 광장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석재 사장님과 인부 두 분이 삽을 챙기고 있었다.
예전에는 산소 바로 아래까지 밭이어서 찾기 쉬웠지만, 밭이 묵으면서 습지가 되고 잡목이 자라났다.
예전에는 낮으로 나뭇가지를 치고 장화를 신고 들어갔는데, 다행히 아직 풀들이 자라지 않아 수월했다.
묘지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더 처참했다.
봉분 왼쪽이 크게 허물어져 흙이 흘러내리며 일부 축대까지 무너져 내렸고, 비만 내리면 봉분이 통째로 내려앉을 것 같았다.
동생과 나는 준비해 온 제물과 술을 올리고 마지막 성묘를 했다.
“할머니, 집이 많이 허물어져서 할아버지와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합니다.”
삽으로 봉분을 걷어내고, 봉분 아래 흙을 조심스럽게 파냈다.
그 흙더미 속에서 뭉쳐 있던 머리 한 줌과 대퇴골로 보이는 작은 뼈 몇 점을 찾아 하얀 화선지에 옮겨 담았다.
한약 봉지 싸듯 정성껏 포장했다.
파낸 묘지 안에는 봉분 앞에 세웠던 상석을 넣고 다시 흙으로 덮었다.
오전 열 시쯤 묘지 정리가 끝나고 종중 묘지가 있는 할아버지 고향 산지골로 향했다.
묘지석을 놓을 자리를 파고 가져온 유골을 묻은 뒤, 그 위에 비석을 올렸다.
이장을 도와주신 분들께는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하고 점심값만 전달했다.
동생과 나는 시골집으로 돌아와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이제는 할머니가 집 걱정 없이 편안하게 쉬시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