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 속에 스며든 친근함과 미안함

노니를 먹는 사람

by 허정호

노니를 먹는 사람

캄보디아 여행 첫날.

식사를 마치고 호텔 앞 계단으로 내려오니 머리가 일곱 달린 나가 뱀 조형물이 우릴 맞이했다.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느긋하게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딱히 살 것은 없었지만, 한국의 시장과는 많이 달라서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시장 바깥쪽에는 과일과 채소를 파는 상점과 노점들이 줄지어 있었고, 냉장고도 없이 햇볕 아래 생고기를 늘어놓고 파는 식육점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런 더운 날씨에 위생은 괜찮을까, 괜한 걱정이 앞섰다.

시장 안쪽은 또 다른 풍경이었다. 여러 가게가 뒤섞여 있는 모습이 마치 복잡한 백화점을 연상케 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금은방과 중고 휴대폰 가게들이 많았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금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장 안에 금방이 많다는 것이었다. 다시 보니 사람들 목에는 큼직한 금목걸이가 대롱대롱 걸려 있었고, 손목마다 금팔찌가 반짝이고 있었다. 딸기는 수입품이라 귀한 대접을 받아 굉장히 비싸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후에는 불상으로 가득한 박물관을 둘러본 뒤, 캄보디아 최대의 호수라는 톤레삽 호수로 향했다. 수상가옥을 지나 맹그로브 숲으로 들어가는 쪽배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숲으로 이동하던 중, 어린 남매를 태운 배가 따라왔다. 커다란 뱀을 목에 두르고 두 손을 내밀며 “원 달러”를 외치던 아이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끝내 나는 1달러를 내밀지 못했다. 아이들은 배가 속도를 내자 물러났고, 그 장면은 이상하게 오래 가슴에 남았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쪽배는 두 사람씩 태우고 숲 안으로 들어갔다. 사공은 쪽배 경력이 3년이라 했다. 한국말이 어설펐지만 나름 귀에 잘 들어왔다. 쪽배에 오르자 “안녕하셔요” 하고 인사를 건네더니, 환영의 의미라며 참파꽃으로 만든 화관을 머리에 씌워주었다. 이어서 ‘소양강 처녀’를 한 곡 불렀다.

낯선 숲 속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노래에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돌아오는 길, 사공은 우리 부부가 참 좋다며 아내의 손 위에 보라색 꽃반지를 얹어 주었고, 900 리얼 지폐로 접은 하트도 선물했다.

1달러만 주라는 가이드의 말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에게 10달러를 건네며 행복하길 기원했다.

저녁을 먹으러 이동하던 길, 톤레삽 호수 위로 붉은 주황빛 석양이 아름답게 펼쳐젔다. 가이드는 마치 준비된 공연처럼 그 풍경을 ‘서비스’처럼 보여 준 뒤, 내일 일정을 설명했다. 오후에는 아로마 전신 마사지와 캄보디아 탄생 뮤지컬을 관람한다며 희망자를 받았다.

20만 원에 가까운 가격에 모두 잠시 망설였다. 둘 중 하나만 택해도 된다는 말에 사람들이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10명이 신청했고, 우리 네 사람과 노부부만 빠졌다.

가이드는 내일 아침까지 결정해 달라며 여운을 남긴 채 씨엠립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우리를 데려갔다. 저녁을 먹고 한 시간 자유시간. 그가 망고주스를 한 잔씩 사주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셋째 날, 앙코르톰과 바이욘 사원, 코끼리 테라스와 타프롬을 거쳐 오후에는 앙코르와트를 둘러봤다. 마사지와 뮤지컬에 가지 않은 우리 팀은 호텔 앞에 내려졌다. 참가하지 않겠다던 노부부는 결국 뮤지컬만 보고 오겠다고 했다.

가이드는 끝까지 우리를 설득하려 했지만, 우리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괜히 마음이 걸려, 우리는 봉투를 만들어 미안함을 전했다.

마지막 날, 크메르루주 집권 시기의 대학살 희생자 유해가 안치된 왓트마이 사원을 방문한 뒤부터는 본격적인 쇼핑 일정이 이어졌다. 상황버섯, 보석점, 노니점, 그리고 잡화점까지. 무려 여섯 곳이었다.

첫 상황버섯 가게에서는 설명이 끝나도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았다. 가이드는 미묘하게 말을 줄였고,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마음 약한 누군가가 하나를 샀다. 그제야 가이드는 “다음 장소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보석점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사람들은 흥정을 시작했고, 가이드 얼굴에는 다시 빛이 돌았다.

나는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아내에게 작은 루비 팔찌와 사파이어 목걸이를 샀다.

그 순간만큼은, 그냥 기분이 좋았다.

노니 가게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노니가루를 보라며 내놓았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가이드는 말없이 노니 가루를 떠먹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결국 기다리던 구매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가게를 나설 때, 노니 가게 안에는 묘한 침묵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잡화점에서는 다시 분위기가 환해졌다.

가족과 지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모두들 분주했고, 우리도 은잔 세트와 간단한 식품을 골랐다. 가이드는 또다시 얼굴이 환해졌다.

그 여행에서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앙코르와트도, 톤레삽의 석양도 아니었다.

아무 말 없이 노니를 삼키던 가이드의 얼굴이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노니집에서의 침묵과 고요를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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