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없이도 서로에게 가까웠던 날
차례 없이도 서로에게 가까웠던 날
2019년 추석, 우리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매년 반복되던 차례 대신, 부모님을 기리는 마음은 그대로 두되 방식만 바꾸는데 뜻을 모았다. ‘어떻게 보내야 추석 같은 추석일까?’ 고민한 끝에, 호국원 참배와 시골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추석날은 각자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추석 전날 아침 10시, 3형제 가족이 호국원에 모였다.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작은 제단 위에 단출한 추석상을 올렸다. 막걸리 한 잔을 부어 올리는 순간, 굳이 많은 형식이 없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 자체가 제사였고, 마음이 곧 예법이었다.
불판이 올라오고,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갔다.
전복에는 양념을 올려 구워 먹으니, 시골집이 금세 잔치마당이 되었다.
고기 냄새, 밥솥에서 피어오르던 뜨거운 김,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우리는 ‘차례 대신 밥상’으로 명절을 보내는 첫해를 이렇게 기념했다.
"그래, 이게 진짜 추석이지!”
잔치가 끝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게 따뜻했다.
형식 대신 마음을 택한 명절이 이렇게 편안할 줄이야.
그런데 정작 추석 당일, 어제의 북적임이 지나간 길 위로 허전함이 찾아왔다.
명절이라는 이름이 주는 익숙한 분주함 없이 하루가 조용하니, 마음이 어딘가 비어 보였다.
그러던 중 둘째 처형에게 전화가 왔다.
“저녁 먹으러 와! 제사 지내고 남은 나물로 비빔밥 해 먹자.”
달려가 밥을 비빈 뒤 생선 한 점과 함께 먹었다.
이 단출한 한 끼가 이상하게도 참 따뜻했다.
명절 음식의 맛은 늘 ‘함께 먹는 사람’이 완성한다는 걸 알았다.
처형은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내년부터 우리도 형제들이 모여 제사를 함께 차리기로!” 하며 웃었다.
우리의 변화가 다른 가족에게도 작은 바람처럼 번진 것일까?
다음날, 함양 산삼축제에 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터는 명절 분위기를 이어주었다.
천 원짜리 산삼꽃핀 만들기를 체험해 모자에 꽂았더니,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아내는 새끼를 꼬는 체험대에서 난생처음 도전에 들었다.
“잘한다, 잘해!”
할아버지의 칭찬에 아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어쩌면 명절의 기쁨은 바로 이런 순간들 누군가에게 칭찬받는 기쁨, 작은 체험에서 찾는 재미 일지도 모른다.
점심으로 전병과 부추전, 비빔밥을 먹으니 오래된 장터의 향기가 입안에 남았다.
저녁엔 아들이 영화 보러 가자고 했지만, 축제의 여운에 몸이 지쳐 다음날로 미뤘다.
연휴 마지막 날, 아들부부와 ‘엑시드’를 관람하고 양식당에서 피자와 볶음밥, 샐러드를 먹었다.
식사 뒤 운동장 산책길을 걷고, 강변을 지나 공원 카페에서 빙수를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가족끼리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날.
그 자체로 명절의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