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으로 가는 길

불우의 명곡 방청의 날, 설렘으로 향하다

by 허정호

― 불후의 명곡 방청의 날, 설렘으로 향하다

5월 어느 금요일,

“아빠, 불후의 명곡 방청권이 당첨됐어요.”

아들의 목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월요일이 녹화 날이니까 준비하셔요.”

마침 그날은 어린이날 대체 공휴일이었다.

아내가 “뭔 일이야?” 하고 묻자,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빠가 불후의 명곡을 좋아하시잖아요. 몇 번이나 신청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됐어요. 방청권이 네 장이니까 서울 이숙이랑 이모랑 같이 가세요.”

“그래, 고맙다.”

순간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서울 처형 부부가 시간이 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공휴일이라 괜찮다고 했다. 녹화가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라 다음날은 미리 휴가를 내 두었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 그것도 방송국이라니.

그런데 이상하게 평소엔 아무렇지 않던 옷들이

이럴 때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결국 백화점으로 향했다.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청바지가 어때!”

아내가 청바지를 권했다.

가격표를 보니 5만 원에서 17만 원까지 다양했다.

저렴한 건 너무 허술해 보여서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 세일 문구에 마음이 흔들려 두 벌을 샀다.

세일인데도 20만 원이 넘었다.

아내는 간단한 티셔츠를 하나 샀다.

집에 와서 입어보니 청바지 통이 너무 좁아

트렁크 팬티를 입을 수조차 없었다.

고속버스 좌석은 여유가 있었다.

처형은 “점심은 집에 와서 꼭 같이 먹자”고 몇 번이나 당부했지만

아내는 “우리가 늦을지도 모르니 먼저 드세요”라며 양해를 구했다.

서울터미널에 도착해 처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하철 9호선 급행을 타고 맨 뒷칸에서 내려 9번 출구로 나오라고 했다.

몇 번 와도 헷갈리던 출구를 처형은 세세하게 안내해 주었다.

당산역에 내리자 작은 해프닝이 생겼다.

아내가 먼저 출구를 나가고, 나는 캐리어를 두고 잠시 머뭇거리던 순간

철문이 ‘찰칵’ 하고 닫혀버렸다.

당황도 잠시, 캐리어를 먼저 넘기고 재빠르게 철봉을 뛰어넘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촌스러운 해프닝에 웃음이 터졌다.

2시가 넘었는데도 처형은 점심을 먹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카는 막내 이모를 위해 직접 파스타를 만들어 놓았다.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처형은 무릎이 좋지 않다며 “내일을 위해 오늘은 집에서 쉬자”고 했다.

다음 날, 동서와 나는 한강변을 따라 영등도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아내는 처형, 조카와 함께 케이크 만들기를 배웠다.

한강변에는 돗자리를 깔고 여유를 즐기는 가족들로 가득했다.

방송국까지는 택시를 타고 편하게 이동했다.

좋은 자리를 얻겠다고 4시쯤 도착했는데,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도 그 뒤에 합류했다.

‘우리가 거의 마지막쯤이겠지.’

예상대로 좌석은 한쪽 뒤편이었지만 무대는 잘 보였다.

입장까지 두 시간이나 남아 여의도를 산책하고,

방송국 앞 식당가에서 순댓국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드디어 7시, 녹화가 시작됐다.

가수들의 열창, 관객과 함께하는 토크와 게임,

모든 순간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TV로 보던 무대보다 훨씬 뜨거운 현장의 에너지가

가슴 깊이 전해졌다.

녹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서울의 밤공기가 유난히 따뜻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여서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느껴본 설렘 때문이었을까.

그날의 기억은

‘불후의 명곡’이라는 방송보다도 훨씬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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