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량의 법칙

어찌저찌 또 총량이 맞춰진다니 다시 기대를 해봐도 되는거야......?

by 세르게이홍

손가락을 다 끊어버리고 다 같이 죽을까 했던 금토일월요일이 지나가고 화요일이다.


집에는 이미 한차례 정신과 약을 싹 다 버렸던 터라 출근해서 사무실 책상서랍들, 파우치들을 닥닥 뒤져서 작년 7월 받아온 약을 몇 봉 찾았다.


현대의학의 힘으로, 우리 정신과교수님이 매번 해주시는 말씀으로 일어나 앉아보았다.


지금 그만두지? 지금보다 좋은 직장? 절대 못가. 자기의 지금 나이가 몇이고, 지금 관둬? 그럼 정말 훨씬 못한데로 가야돼. 그럼 지금보다 더 자괴감이 와. 일 나가자. 조금만 쉬고 일 나가. 너무 힘들잖아 지금? 그럼 내가 한달 우선 병가를 써줄께. 일단 쉬고 또 나가봐. 정말 못나가겠으면 다시 또 두달 쉬어보자. 그렇게 끊어가며 지금 직장 다녀야해.



맞습니다. 절대 다녀야합니다. 그래야 주담대도 이어가고, 신용대출도 이어가고, 다 직장이 있어야죠.

근데 요 며칠은 정말 걍 GG 칠까... 하고 우울과 싸매고 있었다.



하 또 아침이네.. 아무것도 하기싫고 그냥 멍하니 이불만 싸매고 머리 싸매고 누워있고 싶었다.

아직 자는 애들 끌어안고 양 옆에 껴안고 킁킁대다 여기저기 비벼보다 다시 자다 셋이 다 떠나고 싶었다.

(응...... 약기운이 떨어지긴 했구나.....)


그래도 습관인지 무의식적으로 무조건 출근해야한다가 박힌건지 오늘도 "기어나오다 싶이해서" 출근했다.


아침 9시 15분


"감사합니다. ㅇㅇ팀 ㅇㅇㅇ입니다"

"야! 왜 메신져에 답이없어!!!! 나는 너의 답없음에 깊은 불안을 느껴!!!"

"아...! 나 메신져가 업뎃 중이라 안켜졌네.."


매일 아침 나의 출근을 체크하는 (회사)친구다.

이제는 15년간 매일 보는 사이, 밖에서도 보는 오래된 사이, 재판도 함께 다닌 사이, 미행도 함께 한 사이, 매 재판마다 탄원서를 썼던 회사친구가 아닌 친구다.


놈은 없겠지. 주담대 걱정도 없겠지만, 이런 친구도 없겠지.

정신이 매우 불안정해서 전화를 끊고 또 눈물이 났지만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아이 낳고 놈의 가출 몇달 전까지 계속 시터이모 한분과 살았다.

살림이 부족한 나를, 맨날 잠에 치이는 나를 딱하게 여겨 어느날 부터 아이가 자면 사부작 사부작 살림을 하시고 나중엔 반찬까지 하시고, 결국 마지막엔 제발 쉬시라고 했던 이모

그때 지인들이 그랬다. 시모복은 빻았지만, 시터복은 온 우주의 기운을 받았다고...


놈의 가출 이후 알았다.

서방복은 빻았지만 친구들복은 온 우주의 기운을 받았다고.


주저앉아 휴직하고 안나가고 싶고 집에만 있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이새끼 넌 휴직하면 안돼"

"출근했니?"

"밥 왜 안먹어"


이런 말들이 하루하루 집에서 나와 일을 나오게 했고, 하루가 모여 일주일, 일주일이 모여 한달,

한달이 모여 한해, 그렇게 다섯해를 버텼다.


총량의 법칙을 믿자. 빻은 만큼 받는 것도 있다.


손가락 미끄러져 옘병된 주담대 대환 대신... 또 뭔가 받을 복이 있으리라 믿어보자.


이제 일을 하자 나에겐 빚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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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이 지랄을 보며 (사실 큰 아이는 10살이 되고 전말을 다 알았다) 커서 판사가 되겠다는 큰아이

꼭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줘야 하는게 싫다며 모두 살려주는 의사가 되고싶다는 작은아이

아이들 방에 걸어주고 싶은 자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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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금 전 10시 8분


"감사합니다. ㅇㅇ팀 ㅇㅇㅇ입니다"

"아유.... 카톡 답없어서 걱정했잖아요! 아휴 출근했구나!! 어제 얼굴이 너무 안좋아가지구"


비록 폐급놈과 결혼해서 이 사태를 만들어 놨지만..

가족이 아닌데도 5년전을 생각하며 요 며칠의 나를 보며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또 일어나 앉아본다.


총량의 법칙을 믿자.

- 가 있으면 + 가 있다.

지금 거어어어어어어업나 마이너스니 곧 거어어어어어업나 플러스가 올거라고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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