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冬柏, 산다山茶, 산다화山茶花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지난 해 4월, 남도의 섬에 자라는 식생을 살펴보면서 동백꽃을 감상하러 여수 금오도로 간 적이있다. 오후 늦게 섬에 내리니 부두 근처 언덕의 동백나무가 활짝 핀 붉은 꽃을 풍성하게 매달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사철 푸른 잎새 사이에서 수많은 꽃송이가 노란 꽃술을 안고 붉게 만개한 모습이 여행객의 눈길을 사로잡았으나, 숙소로 이동해야 해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다음날 숲 길을 걸으면서 다시 동백꽃을 감상했다. 동백나무는 나무껍질이 황갈색으로 매끈한데, 동백나무 숲 속에는 동백꽃이 통째로 툭 툭 떨어져서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동백꽃은 수정이 완료되고 나면 쓸모가 없어진 수술이 꽃잎과 함께 통째로 지는 것이라는 설명에 처연한 느낌이 들기조차 했다. 관상수로 심어진 동백나무 몇 그루씩만 보아오던 나로서는 이날 금오도에서 만난 동백나무 숲은, 한창 개화기는 조금 지난 듯 했지만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최근에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장안에 화제라서 나도 몇 차례인가 보았다. 주인공 이름이 동백이고 주인공이 일하는 카페 이름이 까멜리아(Camellia) 였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봄의 전령사로 봄에 자잘한 노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를 가리키는데, 이 드라마의 동백꽃은 카페 이름으로 보아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 L.) 꽃이 분명하다. 동백나무는 Camellia 속에 속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 속에는 잎을 우려 녹차를 만드는 차나무(Camellia sinensis [L.] Kuntze)도 들어있는데,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근연 관계가 깊은 나무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는 것 같다. 차나무는 꽃잎이 흰색이지만 꽃술이나 꽃 모양, 열매 모양에서 동백나무와 비슷하다. 같은 Camellia 속이지만, 동백나무는 일본을 뜻하는 japonica가, 차나무는 중국을 뜻하는 sinensis가 종소명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속명인 Camellia로 동백나무를 지칭하는 것도 흥미롭다. 쓰임새로 보면 아무래도 차나무가 동백나무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남쪽 지방에서 겨울에도 꽃이 피는 이 나무를 중국 고전에서는 산다山茶라고 했다. <본초강목>을보면 산다山茶는 “잎은 차의 일종으로 마실 것으로 만들 수 있어서 차(茶)라는 이름을 얻었다. 산다山茶는 남쪽 지방에서 나는데, … 잎이 차나무 잎과 비슷하고 두텁고 단단하며 모가 나 있다. 중간이 넓고 끝이 뾰족하며 표면은 녹색이고 뒤는 (색깔이) 엷다. 깊은 겨울에 꽃이 피며 붉은 꽃잎에 노란 꽃술이다”*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식물지>도 Camellia japonica를 산다山茶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로 보면, 중국인들은 동백나무와 차나무 사이의 유사성을 알고 있었고 모두 차(茶)로 활용했던 것이다. 또한 산다와 비슷하지만 매화가 필 무렵에 꽃이 핀다는 다매茶梅도 문헌에 보이는데, 이는 애기동백(Camellia sasanqua Thunb.)을 말한다.
일본인들은 이 동백나무를 ‘쯔바키’라고 하고 한자로 춘椿을 쓰고 있다. (춘椿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장수를 상징하는 참죽나무를 가리킨다). 한번은 송완범 교수가 번역한 <목간에 비친 고대 일본의 서울, 헤이조쿄>를 훑어보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다음 구절을 발견했다. "... 사전 구실을 하는 자서字書 목간은 '동백椿(일본어 음으로 쯔바키)'이라는 큰 글자에 이어 작은 글자로 '쓰바키'처럼 만요가나로 기재한 한자의 훈을 쓰고 있다." 일본에서 7세기 2/4분기에 쓰여졌다고 추정되는 목간 내용을 설명하는 곳에서였다. 즉 일본에서는 쯔바키, 즉 동백나무를 춘椿으로 사용한 역사가 깊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뒤마의 소설 <동백꽃 여인 La Dame aux Camelias>를 일본인은 <춘희椿姬>로 번역했던 것이다. 이제 이 소설을 각색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춘희”로 번역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왜나하면, 우리나라에서 춘椿은 참죽나무를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산다山茶를 동백(冬柏)나무라고 불렀는데,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9∼1241)의 <동국이상국집>에 “동백화冬柏花”라는 시가 나오는 것으로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桃李雖夭夭 복사꽃 오얏꽃 아리따와도
浮花難可恃 덧없는 꽃이라 믿기 어렵고
松柏無嬌顔 소나무 측백나무 교태가 없어
所貴耐寒耳 귀한 것은 추위를 이겨내는 것
此木有好花 이 나무는 어여쁜 꽃이 있는데
亦能開雪裏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네
細思勝於柏 가만히 생각해보니 측백보다 나으니
冬柏名非是 동백이란 이름은 옳지 않구나.
정약용도 <아억각비>에서 산다山茶를 동백으로 설명한다. 즉, “산다山茶라는 것은 남쪽 지방의 좋은 나무이다. … 내가 강진康津에 있을 때 다산茶山 속에 산다山茶를 많이 재배하고 있었다. 비록 그 꽃의 품격과 젊은 자태가 자첨子瞻(소식蘇軾의 자字)의 말과 같았지만, 겨울에도 잎이 푸르고 꽃도 피었다. 또한 그 열매는 여러 쪽이 서로 합쳐져 있어서 대략 빈랑檳榔과 비슷했다. 이것으로 기름을 짜서 머리에 바르면 끈적거리지 않아 부인들이 귀하게 여겼으니 아름다운 나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산다山茶를 갑자기 동백冬柏이라고 부르고, 봄에 피는 것을 춘백春柏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고전에서는 동백나무를 저자의 기호에 따라 동백冬柏이나 산다山茶로 썼지만 나무에 대한 혼동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고전에서 우리 선조들이 동백나무를 어떻게 표기했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 동백꽃은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나, 서정주의 시 “선운사동구 禪雲寺洞口”의 이미지로 남아있을 것이다.
禪雲寺 고랑으로
禪雲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읍디다.
<끝, 2019. 11.16>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이유출판, 2023, pp.69~74 초고>
* 其葉類茗 又可作飮 故得茶名 … 山茶産南方… 葉頗似茶葉 而厚硬有棱 中闊頭尖 面綠背淡 深冬開花 紅瓣黃蕊 <본초강목 산다>
** 山茶者 南方之嘉木也 … 余在康津 於茶山之中 多栽山茶 雖其花品少態 誠如子瞻之言 葉旣冬靑 花亦冬榮 又其實多瓣相合 略似檳榔 以之榨油塗髮不䐈 婦人貴之 亦嘉卉也 東人忽以山茶名之曰冬柏 其春榮者謂之春柏 <아언각비>
+표지사진: 동백, 2018.4.16 금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