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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에 노란 꽃을 피우는 학자수 회화나무

괴槐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1년 1/2월호)

by 경인

槐花黄盡不關渠 회화나무 노란 꽃 져도 그대는 상관 않고

老向功名意自踈 늙으면서 공명의 뜻 저절로 적어지네.

乞得山田三百畝 산골 밭을 삼백 이랑 구하고서

青燈徹夜課農書 등불 아래 밤 새어 농사 책을 살피네.


주희朱熹의 시 ‘늙은 벗 승사에게 장난삼아 주다 (戲贈勝私老友)’이다. 정조대왕의 명으로 주자의 글을 뽑아 편찬한 책 <아송雅頌>을 몇 해 전 만지작거리다가 우연히 이 시를 보고 (2017년 8월 2일) 번역한 적이 있다. 페친이신 서성 교수님께서 이 번역을 읽으시고, “회화나무꽃이 다 진다는 것은 음력 7월을 말하고, 당송 시대 땐 이때가 2월에 회시에서 떨어진 거인(향시 합격자)들이 시문을 지어 예부에서 재시험 볼 때라 두문불출하고 한창 바쁠 때였지요. 그래서 "회화나무가 노래지면 거인들이 바쁘다"(槐花黃, 擧子忙)는 속담이 생긴 것이지요. 그러니까 제1구에서 "상관 않고"란 말은 전에는 회화 꽃 한창일 때는 언제나 회시 시험 준비로 바빴는데 이제는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 제1구와 제2구 사이의 관계에서, 회화나무 꽃이 지니까 친구 생각이 나 이 시를 지어 보내는 주희의 깊은 마음이 드러나 절로 훈훈히 집니다”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말씀해주시면서 번역도 나쁘지 않다고 하셨다. 문외한이 전문가의 좋은 평을 들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회화나무꽃세부-20180802성남.JPG 회화나무 꽃, 2018.8.2 성남

하여간 괴槐는 <당시식물도감>, <북경삼림식물도보>, <식물의 한자어원사전> 등에서 한결 같이 회화나무(Sophora japonica L.)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전에 이 글자가 나오면 거의 대부분 회화나무인데, 이 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라고 알려져 있다. <천자문>에 “길 양 옆에는 괴槐와 경卿이 늘어서 있다 (路挾槐卿)”이 나온다. 이 구절의 배경에는, 조정에 세 그루 회화나무(槐)를 심어 삼공三公의 자리를 나타내고, 길 좌우에 대추나무(棘=棗)를 심어 경卿, 대부大夫, 공公, 후侯 등의 자리를 나타내었다고 하는 옛 주나라의 제도가 있다. <주례周禮> 추관秋官 편에서 괴槐를 찾아보면, “세 그루 회화나무(槐)를 향하여 삼공三公이 자리한다 (面三槐 三公位焉)”가 나온다. 이에 대해 정현鄭玄은 “괴槐는 회懷를 말한다. 이곳에서 오는 사람을 품어서(懷) 그와 더불어 의논하고자 하는 것이다”*라는 주석을 달았다. 이 주석 때문에 ‘홰나무’라는 별칭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회화나무는 삼공三公을 상징하게 되면서, 관청이나 양반가에 많이 심는 나무가 되었다.


회화나무를 뜻하는 고전 속의 괴槐를 우리나라에서는 홰나무, 회나무, 회화나무, 괴목, 느티나무 등으로 이해하고 있다. 홰나무, 회나무, 괴목 등은 회화나무의 이명이라고 하더라도, 느티나무로 보는 것은 재고해볼 일이다. 회화나무는 콩과에 속하고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상당히 다른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조금 장황하지만 우리나라의 문헌을 살펴보기로 한다. <향약집성방>에 ‘괴교槐膠’, ‘괴화槐花’가 나오는데, 일제강점기에 출간된 책에는 ‘홰나무 진’, ‘홰나무 꽃’이라는 향명을 기재했다. <훈몽자회>에는 “괴槐 회홧괴”, <동의보감> 탕액편에는 “괴실槐實 회화나모 여름”으로 적었다. <물명고>에는 “괴槐는 회懷와 같은 것이다. 잎은 고삼苦參과 같고 나무는 아주 크다. 수피는 검고 꽃은 노란데 뿔 모양이 맺어진다. ‘회화나모’. 괴槐의 음이 회懷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인데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이유 없이 ‘느티괴’라고 해서 훗날 민간에서 잘못 알게 되었음은 어찌된 일인가?”**라고 했다. 즉, 최세진崔世珍(1468~1542)과 허준許浚(1539~1615)은 괴槐를 회화나무로 바르게 이해했다. 이에 더해, 유희柳僖(1773~1837)는 괴槐를 명확히 회화나무로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느티나무라고 하는 것은 잘못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광재물보>에도 괴槐는 ‘회화나무’로 기록하고 있다.


회화나무-겨울열매-20180203서울.JPG 겨울의 회화나무, 2018.2.3 서울

그 후, <전운옥편>에는 “괴槐의 음은 ‘회’이다. 겨울에 땔나무로 쓰며, 허성虛星의 정精이다. 꽃은 노란색으로 물들일 수 있다. 회櫰와 같다”***라고 하여, 회화나무임을 설명했고, <자전석요>도 “槐회 꽃은 노랑으로 물들일 수 있다. 회櫰와 같다”****고 했다. 이어서, <한선문신옥편>도 “괴화나무 회”로 동일한 설명을 하고 있고, <한일선신옥편>도 “괴화나무 홰”로, 현대의 <한한대자전>도 “홰나무 괴, 콩과에 속하는 낙엽교목. 회화나무”로 설명하고 있다. 조선어학회에서 1936년에 초판을 발행한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봐도, ‘홰나무’를 괴槐로 보고 이명으로 ‘회야나무, 회화나무, 괴화나무, 괴목’을 기록한 반면, ‘느티나무’는 규목槻木으로 보고 이명으로 ‘느틔나무’를 적었을 따름이다. 비슷한 시기인 1937년에 조선박물연구회가 발간한 <조선식물향명집>도 회화나무는 괴槐, 느티나무는 거櫸로 기록했다. 같은 해 발간된 <선한약물학>도 ‘괴화槐花’에 한글로 ‘회화나무 꽃’을 병기했다. 즉, 어디에서 느티나무로 설명했는지 문헌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조선삼림식물도설>을 보면, 회화나무의 한자명으로 회목櫰木, 회화목櫰花木, 괴화목槐花木을 들고 있는데, 느티나무에 대해서도 괴목으로 통한다고 하면서 한자명으로 괴목槐木, 규목槻木, 거㯫, 계유鷄油, 궤목樻木 등을 들고 있어서 일부에서 괴목槐木을 느티나무로 이해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따름이다.


회화나무열매-20171126-과천.JPG 회화나무 열매, 2017.11.26 과천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고전에서 괴槐를 만나면 문맥을 잘 살펴야 할 듯하다. 즉, 중국고전의 삼괴三槐나 관청, 학자와 관련된 문장에서는 반드시 회화나무로 해야 할 것이지만, 일부 조선시대 학자들이 느티나무(Zelkova serrata [Thunb.] Makino)를 괴목槐木이라 표현한 사례도 있을 것이므로 잘 판단해야 하리라. 마지막으로 월헌月軒 정수강丁壽崗(1454~1527)의 시 한 수를 감상한다.


별시에 선비들이 많이 모였다는 말을 듣고 (聞別試群儒大會)


過眼槐黃歲不留 회화나무 노란 꽃이 눈길을 스쳐가고 세월은 머물지 않아라

驚心擧子幾番愁 놀란 가슴의 거자擧子는 몇 번이나 실망했나?

今聞別試如雲集 오늘 들으니, 별시에 구름같이 모였다고

誰是場中第一流 누가 이번 과거에서 일등을 할까?


회화나무가을열매-20181103-창경궁.JPG 회화나무 열매, 2018.11.3 창경궁

예나 지금이나 공명의 길은 과거든 고시든 입시든 시험을 잘 치르는 데 있지만, 누가 시험에서 일등 했다고 삶의 길을 제대로 갈 것이라고 보장하겠는가? 내 고향 안동에도 곳곳에 회화나무 고목들이 있다. 몇 해 전 종숙과 함께 와룡면의 광산김씨 긍구당 고택을 방문했을 때, 고택 가까이 흐르는 개울 가에 회화나무가 멋지게 자라고 있었다. 이 나무를 보면서 나는 긍구당 집안의 염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집 근처 공원에도 회화나무 서너 그루가 자라고 있다. 여름날 노란 꽃이 만개하는데 비바람에 꽃이 지면 온통 바닥이 노랗게 물들어 괴황槐黃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시절의 가장 중요한 시험은 회화나무 꽃 필 무렵이 아니라 괴실槐實 꼬투리가 여물어가는 11월에 있다.


<끝 2020년 2월 29일,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1년 1/2월호>

<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이유출판, 2023, pp.35~41 초고>


* 槐之言懷也 懷來人於此 欲與之謀 – 周禮注疎

** 槐 懷者仝 葉如苦參 樹極大而皮黑 花黃結角 회화나모 槐音懷 擧世知之 而徐四佳無端以爲느티괴 遂誤後俗 何也 – 물명고

*** 槐회 冬取火木 虛星精 花可染黃色 櫰仝 – 전운옥편

**** 槐회 花可染黃 괴화나무회 櫰仝 – 자전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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