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채荇菜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17년 1/2월)
關關雎鳩 구륵구륵 징경이는
在河之洲 황하 섬 속에 있고,
窈窕淑女 아리따운 아가씨는
君子好逑 군자의 좋은 짝일세.
參差荇菜 올망졸망 마름을
左右流之 이리저리 찾고,
窈窕淑女 아리따운 아가씨를
寤寐求之 자나깨나 구하네.
求之不得 구해도 얻지 못해
寤寐思服 자나깨나 생각하니,
悠哉悠哉 그리움은 끝이 없어
輾轉反側 이리저리 뒤척이네.
參差荇菜 올망졸망 마름을
左右采之 이리저리 뜯고,
窈窕淑女 아리따운 아가씨와
琴瑟友之 금슬 뜯으며 친히 지내네.
參差荇菜 올망졸망 마름을
左右芼之 이리저리 가려 뜯고,
窈窕淑女 아리따운 아가씨와
鐘鼓樂之 종 치고 북 치며 함께 즐기네.
이 시는 저 유명한 <시경>의 첫 머리에 실려있는 관저關雎이다. 안동 출신으로 한학의 대가셨던 이가원(李家源 1917~2000) 선생 번역(리가원 허경진 공찬, 청아출판사)이다.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라, 젊은 시절 누구나 몇 번은 읊조렸으리.
몇 해 전부터 나는 어떤 계기로 인해, 고전에서 한문으로 된 식물 이름을 현대 우리말로 번역할 때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식물들은 아마도 고전이 창작된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일 것이므로, 정확한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아서 잘못 번역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시에서 쓰인 식물은 그 시의 해석과 이미지에 영향을 많이 미치므로, 정확한 이름으로 번역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가원은 ‘행채荇菜’를 마름으로 번역했다. 번역할 당시의 아마 여러 자료를 참조했을 것이다. 마름은 학명이 Trapa Japonica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에 분포하는 1년생 수초로 늪이나 못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잎은 3~8cm의 넓은 마름모 꼴로 수면에 치마폭처럼 펼쳐지며, 여름에 1cm 가량의 흰 꽃이 핀다. 즉, 꽃이 눈에 잘 뜨이지 않고 눈부시게 아름답지도 않다. 물론 모든 꽃은 그 나름의 미를 품고 있지만. 아무래도 시경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꽃으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관심을 가지고 책을 찾아보았으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고전의 식물을 연구한 전문 서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중국이나 일본에는 연구 결과가 이미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말에 북경을 다녀오면서, 중국학자는 어떤 연구 결과를 내놓았는지 궁금하여, 지인과 함께 시내의 대형 서적에 들어갔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나로서는 지인의 통역에 힘입어 겨우 대만의 학자 반부준潘富俊이 쓴 <성어식물도감成語植物圖鑑> 한 권을 구했다. 또한 반부준은 이 외에도 <시경식물도감>, <당시식물도감>, <초사식물도감>, <홍루몽식물도감>도 저술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재고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본초강목채색도감>을 사고 나서, 지인에게 반부준의 책들을 꼭 좀 구해서 전달해주길 부탁했다. 그 후 11월 말 즈음에 나는 <홍루몽식물도감>을 제외한 나머지 책을 모두 인편으로 받을 수 있었다.
<시경식물도감>을 받자 마자, ‘행채荇菜’를 찾아보았다. 역시 책 첫머리에 나온다. 일부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현대 이름은 ‘행채莕菜’, 학명은 Nymphoides peltatum (Gmel.) O. Kuntze이다. 그리고 작고 예쁜 노란색 꽃 사진이 보인다. 중국의 남북 각 성과 한국, 일본, 러시아 등에 분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제 이 학명이 우리나라에서 무엇으로 불리는 지 찾으면 된다. 이창복의 <대한식물도감>과 고경식/전의식의 <한국의 야생식물>에 모두 노랑어리연꽃으로 나온다. 학명이 Nymphoides peltata (Gmel.) O. Kuntze로 쓰여있다. Peltata와 peltatum은 라틴어에서 같은 뜻이다.
노랑어리연꽃은 우리나라 전국 각지의 못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수초이다. 잎은 5~10cm 크기의 원형으로 물 위에 뜨고, 여름에 수면 위로 쑥 올라온 꽃자루에 3~4cm 크기의 진한 노란색 꽃이 핀다. 노랑어리연꽃이 무리지어 자라는 연못에 꽃이 피면 화사하기 그지없다. 그야말로 군자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고, 숙녀의 밝고 고운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제 제대로 된 이름으로 시를 다시 읽어보자.
關關雎鳩 구륵구륵 징경이는
在河之洲 황하 섬 속에 있고,
窈窕淑女 아리따운 아가씨는
君子好逑 군자의 좋은 짝일세.
參差荇菜 올망졸망 노랑어리연
左右流之 이리저리 찾고,
窈窕淑女 아리따운 아가씨를
寤寐求之 자나깨나 구하네.
<2016.12.18 씀,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 166호, 2017년 1/2월, pp.90~91>
+표지사진: 노랑어리연꽃, 2021.5.22 고창선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