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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Jun 18. 2021

고향을 뜻하는 상재의 나무, 목왕木王으로 불리는 개오동

재梓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2년 7/8월호)

내 고향은 경북 안동의 산골마을인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고향을 떠났으니 어언 40년이 가까워진다. 20여년 전 어머니께서 자식들 가까이 계시기 위해 고향을 떠난 후부터 시골집은 해마다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결국 빈집으로 오랫동안 버려져 있는 것이 근심스러워, 작년 봄에 집을 완전히 철거하고, 집터는 밭으로 만들었다. 이제 고향 마을에 가도 잠시 앉아 있을 처마도 없는 셈이다. 철거 당시에는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느니 철거하길 잘했다 싶다. 


고향에서 산 세월보다 타향에서 산 세월이 훨씬 긴데도 아직 선친께서 평생을 사셨던 고향마을이 그리운 것을 보면, 누구에게나 고향이란 마음 속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삶의 뿌리인 듯하다. 옛 글을 보면 고향을 뜻하는 말로 상재桑梓라는 말이 보인다. 이 말은 <시경> 소아小雅의 시 ‘소반小弁’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상재桑梓 - (좌) 뽕나무, 2020.8.8 창경궁, (우) 개오동, 2021.6.18 오산 물향기수목원

維桑與梓  상桑와 재梓까지도

必恭敬止  반드시 공경하니

靡瞻匪父  눈을 뜨면 보이는 건 아버님이고

靡依匪母  눈을 감으면 그리는 건 어머님이라네.

不屬于毛  터럭까지 물려받지 않았던가?

不離于裏  살결까지 물려받지 않았던가?

天之生我  하늘이 나를 내셨으니

我辰安在  나의 좋은 시절은 언제나 오려나?


고대 중국에서는 마을 주변에 양잠을 위해 상桑을 심고, 가구를 만들기 위해 재梓를 심었다고 한다. 이것이 ‘소반小弁’의 모티프가 되어 상재가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을 뜻하게 되었다. 흔히 이 상재桑梓를 ‘뽕나무’와 ‘가래나무(Juglans mandshurica Maxim.)’로 번역하고 있다. <훈몽자회>에서 “梓, 가래나모재, 결이 매끈한 것이 재梓이고, 용茸(맹아 혹은 잔털)이 흰 것이 추楸이다. 또한 의椅라고 한다”*라고 한 데서 기인할 것이다. 


가래가 달려있는 가래나무, 2017.8.12 봉화 -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지리산 이북의 산지 및 계곡가에 자생한다.


그러나, 상桑이 ‘뽕나무’임은 틀림없지만, 재梓가 가래나무인지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중국 본초학 문헌에서는 모두, 재梓를 개오동(Catalpa ovata G. Don.)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반부준의 <시경식물도감>과 <초사식물도감>을 보면, 재梓는 개오동이고, 추楸와 의椅는 모두 학명이 Catalpa bungei C. A. Mey.로 나오는데, 이는 개오동류로 우리나라에서는 만주개오동이라고 하기도 한다. <중약대사전>도 재梓는 개오동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일본의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는 재梓가 중국에서는 개오동, 일본에서는 자작나무과의 ‘일본벚자작나무(Betula grossa)를 가리킨다고 했다.


(좌) <삼재도회>의 재梓 그림, (우) 개오동 잎과 꽃, 열매, 2021.6.18 오산 물향기수목원


명나라 때 편찬된 <삼재도회三才圖會>에 재梓가 그림과 함께 실려있다. “재백피梓白皮, 하내河內의 산골짜기에 자란다. 지금은 길 가까이에도 다 있다. 나무는 오동나무 비슷한데 잎이 작고 꽃은 자주색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재梓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가래나무로 보기 어렵고, 그림도 가래나무와는 거리가 멀다. 참고로 재백피梓白皮 약재 이름으로, 개오동의 뿌리껍질 혹은 수피의 질긴 부분을 말한다. 


또한,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재梓는 온갖 나무 가운데 제일이다. 그래서 재梓를 목왕木王이라고 부른다. 대개 재梓 보다 더 좋은 나무는 없으므로, <서경書經>에서 ‘재재梓材’로 편篇 이름을 삼고, <예기禮記>에서 재인梓人으로 명장名匠 이름으로 삼고, 조정에서 재궁梓宮으로 관棺 이름을 삼았다”***고 하면서 재梓, 즉 개오동을 재목으로 으뜸가는나무로 소개하고 있다.


개오동 꽃, 2021.6.18 오산 물향기수목원

<훈몽자회>에서 ‘가래나모’라고 했던 재梓를 우리나라에서 그 후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아보자. 우선, <전운옥편>은 “梓 자, 추楸이다. 목공木工, 고향故鄕은 상재桑梓이다”로 설명했지만 한글 훈이 없어서 어떤 나무로 이해했는지 알기 어렵다. <물명고>에서 유희柳僖는 “재梓, 추楸, 의椅는 같이 한 종류인데, 추수楸樹는 가을이 되면 가지를 실처럼 늘어뜨리는데 그것을 추선楸線이라고 한다. 반복해서 상고해보니 다 함께 우리 동방의 ‘노나무’ 무리이다.  그런데 다만 ‘노나무’ 하나로는 그 세가지 중 어떤 것을 가리킬까?”****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희는 재梓를 노나무라고 한 셈인데, <광재물보>도 ‘노나무’라고 했다. 이러한 이해는 <자전석요>와 <한일선신옥편>에도 “梓 노나무 자”로 이어진다.’


‘노’는 실로 꼰 줄을 뜻하고,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을 보면 노나무를 ‘개오동나무’로 설명하고 있다.. 정약용의 <아언각비雅言覺非>를 보면, 가檟를 설명하는 항목에서, “이아익爾雅翼에서 … 곽씨는 드디어 의椅, 재梓, 추楸, 가檟는 한 종류의 나무인데 네 가지 이름으로 다 망라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수사동垂絲桐은 곧, 개오동(梓)이다. 그 나무는 바로 관을 짜는 재목으로 알맞기 때문에 재관梓棺이라고 한다”*****라고 했는데, 정확한 해설인 듯하다. 이는 정태현이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개오동나무’의 한자명으로 재梓를 채록한 것과 일치한다.


개오동 열매, 2021.1.9 의성 - 수사동, 즉 실을 늘어뜨린 오동이라고 불릴 만 한 모습이다.


개오동은 중국 중북부 원산으로, 가을이나 겨울에 보면 길이 20~30cm 정도의 열매 꼬투리가 길게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으므로 수사동垂絲桐, 즉 실을 늘어뜨린 듯한 오동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것이다. 이것으로 보면 조선 중기까지 재梓가 추楸와 함께 ‘가래나무’를 뜻했지만, 후기로 오면서 수사동垂絲桐이나 ‘노나무’로 불리기도 한 개오동을 뜻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향을 뜻하는 상재桑梓는 뽕나무와 개오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제 백담柏潭 구봉령具鳳齡(1526~1586)이 귀향했을 때 고향 친구가 찾아온 정경을 읊은 시 한편을 감상한다. 반겨주는 고향의 벗 정련鄭璉(1524~1594)에게 준 시로, 제목은 ‘정정기 련에게 화답하다 (答鄭廷器璉)’이다.


十年桑榟客初回            십 년 만에 나그네로 상재桑榟에 돌아오니

忽有人隨舊雨來            정든 옛 친구가 홀연히 찾아 오네

雲屋對床山影裏            구름 집에서 상을 마주하니 산 그림자 속이고,

一樽贏得好懷開            한 동이 술 넉넉하니 회포 풀기 좋구나


2018년 5월 26일과 27일 양일간 나는 어떤 포럼의 안동 여행을 주관하게 되어 고향을 다녀왔다. 첫날은 하회마을을 관광하고,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 강윤정 학예연구부장님으로부터 안동의 독립운동에 대한 강연을 들은 후,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을 방문했다. 봉화 유곡에 있는 충재종택의 재실인 추원재에서 1박한 후, 둘째 날은 내 고향인 도산면 일대를 권윤대 면장님과 안현주 문화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게 되었다. 


개오동, 2018.5.27 안동 - 도산면의 퇴계종택 밖 시냇가에 자라고 있었다.


여행객의 시선으로 고향을 다녀보기는 처음이어서 색다른 경험이었다. 도산서원과 퇴계종택, 이육사문학관, 퇴계묘소, 농암종택을 방문했는데, 평소 그냥 지나치던 곳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농암종택 방문에서는 종손이신 이성원 선생님 말씀에서 양반가의 전통과 품위를 느꼈고, 퇴계종택에서는 이근필 종손의 접빈객하시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세월호 참사 후 의재정아義在正我, 즉 ‘의리는 나를 바르게 하는데 있다’는 글씨를 써서 나눠주고 계시는데, 그 배경 설명을 듣고선 나도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졌다. 연로하신 종손께서는 우리들과 면담하는 동안 내내 손님접대의 예절을 지키시기 위해서인지 꿇어앉아 계셨다. 우리는 황송해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 기념촬영을 한 후 종택을 나섰다. 종택 앞을 흐르는 시냇물이 퇴계(退溪)가 호로 삼은 토계인데, 이 냇가에 넓은 잎 나무가 한 그루 보여 살펴보니 개오동이다. 고향에 와서 고향을 뜻하는 상재桑梓의 나무를 만난 셈이어서 몹시 반가웠다. 


(2018.6.3 권경인. 이가원 번역 시경 참고, 2021년 6월 보완,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2년 7/8월호, pp.68~74.)

*梓, 가래나모재 膩理者梓 茸白者楸 亦曰椅. 楸 가래츄 實曰山核桃 又唐楸子曰核桃 – 훈몽자회

**梓白皮 生河內山谷 今近道皆有之 木似桐而葉小 花紫 - 삼재도회三才圖會. 

***梓, 木王. 梓爲百木長 故呼梓爲木王 蓋木莫良於梓 故書以梓材名篇 禮以梓人名匠 朝廷以梓宮名棺也 – 본초강목

****梓楸椅同是一類 而楸樹至秋 垂條如線 謂之楸線 反覆考之 幷爲我東노나무之屬 而只一노나무 可當三者中何物歟 – 물명고

*****爾雅翼 … 郭氏遂云 椅梓楸檟 一物而四名總之 吾東之垂絲桐 卽梓也 其木正中棺材 故梓棺 – 아언각비

+표지사진- 꽃이 활짝 핀 개오동, 2021.6.18 오산 물향기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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