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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Apr 01. 2022

버들개지, 버들강아지는 버드나무 꽃일까 열매일까?

유서柳絮와 유화柳花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4년 1/2월호>

현대에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버들과 관련하여 고전에서 꽤 자주 보이는 표현 중에 유서柳絮가 있다. 이 유서柳絮는 중국 남북조 시대 유의경劉義慶(403~444)이 편찬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재주 많은 여인의 상징인 ‘사가謝家의 딸’ 고사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진晉 태부太傅 사안謝安이 자질子姪을 데리고 시문을 논하다가 마침 눈이 쏟아지자 형용해 보라고 하였는데, 조카인 사랑謝朗이 “공중에 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다 (撒鹽空中差可擬)”고 하자, 질녀인 사도온謝道韞(349~409)이 “유서柳絮가 바람에 날리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 낫겠다 (未若柳絮因風起)”고 하였으므로, 사안이 좋아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펄펄 날리는 흰 눈을 유서柳絮로 표현한 이 고사로 인해 유서柳絮는 중국 뿐 아니라 조선의 문인들에게도 중요한 표현이 되었는데, 고전 번역서를 보면 이 유서柳絮를 대부분 ‘버들개지’로 번역하고 있다.


바람에 날려 땅에 떨어진 솜 같은 버드나무 열매, 2021.4.24 오산 물향기수목원


나는 이 고사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버들개지가 바람에 날린다는 표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버들강아지라고도 부르는 버들개지는 아직 매화도 피기 전인 이른 봄에 피는 갯버들이나 키버들 등 버들의 꽃차례를 말하는데, 이 꽃차례는 봄바람이 불어도 꽃가루가 눈처럼 날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유서柳絮는 ‘버들 솜’이라는 뜻인데, 오히려 버드나무 열매를 표현한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하순 오산의 물향기수목원에 갔을 때 하얀 솜털을 달 고 있는 버드나무 열매들이 땅에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흡사 솜을 뿌려놓은 것 같았는데, ‘버들 솜’ 유서柳絮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버들 솜’을 뜻하는 유서柳絮를 왜 버들개지라고 부르는지 그 의문을 풀어본다. 우선 국어사전을 펼쳐서 유서柳絮를 보면, ‘버들개지’라는 뜻 풀이가 나온다. 또 버들개지는 1950년 발행된 <한글학회지은 큰사전>에서 “버들의 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은 이어져서 1992년판 금성출판사 <그랜드국어사전>은 “버드나무의 꽃. 솜처럼 바람에 날려 흩어짐. 버들강아지. 유서(柳絮)”라고 설명하고 있고, 1994년판 동아출판사 <새국어사전>도 거의 동일하게 설명한다. 즉, 우리나라 국어사전류에서 일관되게 버들개지를 버드나무 꽃으로 보고 있어서, 유서를 버들개지로 번역하는 것인데, 과연 유서柳絮를 버드나무 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갯버들 꽃, 버들강아지 - 2021.2.27 화악산


특히, 버드나무 꽃이 “솜처럼 바람에 날려” 흩어진다는 국어사전의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버드나무 꽃은 꽃가루가 솜처럼 날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신 봄이 무르익을 4월 말경에 바람에 날리는 것은 솜 같은 털이 붙어있는 열매이다. 이제 우리 고전에서 버들개지와 유서柳絮의 용례를 좀 더 찬찬히 살펴보자.


우선 <훈몽자회> 복식服飾편에서 서絮 “소옴셔”로 훈을 달면서, “그리고 유화柳花를 유서柳絮라고도 한다”*라는 설명을 달았다. <두시언해>에서는 유서柳絮를 ‘버들가야지’로 번역했다. 예를 들면, “업드러 미친 버듨가야지난 바라말 조차 가고 (顚狂柳絮隨風去)”, “가배야온 버들가야지난 사라매 오새 버렛놋다 (輕輕柳絮點人衣)”, “버듨개야지 소오미라와 해요말 가장 믜노라 (生憎柳絮白於綿)” 등이다. 한편 유화柳花와 양화楊花는 ‘버들 꽃’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가람 그테 누른 버들 고잘 새 직먹나니 (雀啄江頭黃柳花)”, “복셩고잔 가나리 버들고잘 조차 지고 (桃花細逐楊花落)”이다. <동의보감> 탕액편에는 유화柳花, 즉 버들 꽃을 ‘버들가야지’라고 한글 훈을 달고 “유화柳花는 처음 필 때 꽃술이 노랗다. 그 꽃이 마를 즈음 바야흐로 솜이 나오는데 이것을 유서柳絮라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즉, <두시언해>에서는 유서와 유화를 구분하고 있고, <동의보감>과는 달리 유서柳絮를 ‘버들가야지’라고 한 것이다.


키버들 열매, 2018.5.1 물향기수목원


또한, 1790년간 <몽어유해蒙語類解>에서도 유서柳絮를 ‘버들가야지’라고 했다. <물명고>도 유서柳絮를 ‘개야지’라고 했는데, 이는 버들개지를 뜻한다. 이 같은 문헌을 보면, <동의보감>을 제외하면 대부분 유서를 버들개지로 표현하고 있고, <훈몽자회>의 설명처럼 일부에서는 유화와 유서를 구분하지 않은 곳도 있다. 한약재로서 유화柳華와 유서柳絮는 소위 본초학의 효시라고 하는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도 나오는 유래가 깊은 약재인데, 중국 문헌에서도 유서柳絮와 유화柳花에 대한 혼란이 있었다. <신농본초경>의 하품 125종 중 하나로 판본에 따른 글자의 출입은 있지만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유화柳華, 맛은 쓰고 차다. 주로 풍수風水, 황달黃疸, 면숙흑面熱黑을 다스린다. 일명 유서柳絮이다. () 주로 마개馬疥, 가창痂創을 다스린다. 열매() 주로 궤옹潰癰을 다스리고 담혈膽血을 물리친다. 씨앗즙(子汁)으로 갈증을 치료한다. 내와 연못 가에 자란다.”*** , <신농본초경>에서는 유화柳華의 이명으로 유서柳絮가 소개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유화柳華와 유서柳絮가 다르다는 것을 진장기陳藏器(681~757) <본초습유本草拾遺> 구종석寇宗奭(송나라 약물학자) <본초연의本草衍義>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장기藏器는 ‘<본경本經>에서 유서柳絮를 꽃(花)이라고 한 것은 그 그릇됨이 심하다. 꽃은 처음 필 때 꽃술이 노랗고, 그 씨앗이 곧 날아다니는 솜(絮)이다’라고 말했다. … 종석宗奭은 ‘유화柳花의 노란 꽃술이 마를 때 솜이 나온다. 그것을 거두어 뜸을 뜨면 부스럼이 낫는다. 솜 아래에 작은 검은색 씨앗이 붙어 있어서 바람이 불면 일어난다. … 꽃이 지고 씨앗을 맺어 솜이 된다. 옛 사람들이 솜(絮)을 꽃(花)이라고 하고 꽃이 눈 같다고 한 것은 모두 잘못이다. 진장기의 설명이 옳다. 또한 열매(實) 및 씨앗즙(子汁)에 대한 문장은 여러 학자들이 풀지 못했으며 요즘 사람들도 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버드나무 열매, 유서柳絮, 2021.4.24 물향기수목원


현대 중국에서도 유서柳絮는 “버드나무 류의 종자. 윗면에 흰 색 융모絨毛가 있어서 바람이 불면 나부끼는 솜처럼 날려 흩어지므로 유서柳絮라고 일컫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듯이, 버드나무 꽃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조선시대 문인들의 글에서도 유서柳絮는, 한결같이 꽃이 아니라 흰 눈처럼 바람에 날리는 열매를 말했다.


柳絮池塘開綺席   연못 가 유서柳絮는 비단 자리 펼쳤고

桃花門塢見雕楹   대문 안 복사꽃은 조각 기둥에 아롱지네


猶殘柳絮糝溪逕   아직도 남은 유서柳絮는 시냇길에 흩어지고

漸吐棠花照石池   차례로 피는 해당화는 돌 연못에 비추네


이 글은 정약용의 시 중에서 인용한 것인데, 앞 구절은 ‘박씨의 지담芝潭 별장을 방문하다 (訪朴氏芝潭別業)’의 일부이고, 뒷 구절은 ‘여름 날 홀로 앉아 채이숙蔡邇叔에게 써 부친다 (夏日獨坐簡寄蔡邇叔)’의 일부이다. 한결같이 유서柳絮가 땅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정약용 선생도 버드나무 씨앗에 붙은 솜 같은 털을 유서柳絮로 표현한 것이 분명하다.


곳 지고 속닙 나니 綠陰이 소사난다

솔柯枝 것거 내여 柳絮를 (ㅄㅡ)리치고

醉하여 계유 든 잠을 喚宇鶯에 꾀괘라


(꽃 지고 속잎 나니 녹음이 솟아난다

솔가지 꺾어 내어 버들개지 쓸어버리고

취하여 겨우 든 잠을 꾀꼬리 소리에 깨었다)


위 시조는 1728년간 <청구영언>에 실려있는데, 여기에서도 유서柳絮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으므로 버드나무 열매인 것이다.


한편 유화柳花는 본초학 문헌에서도 유서와 구별하지 않은 곳이 있듯이 문인들도 엄밀하게 버들 꽃과 열매를 구분하지 않은 듯하다. 왜냐하면 다음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에서 쓰인 유화柳花도 문맥을 잘 살펴보면 상당 부분 버드나무 꽃이 아니라 열매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漢陽城中春日長  한양 성 안에 봄 날이 길어지니

風吹柳花白雪香  바람에 날리는 유화柳花는 향기로운 백설이라


梨花落盡柳花飛  배꽃이 다 지니 유화柳花가 날리고

四月淸和小雨霏  청화한 사월에 가랑비는 부슬부슬


四月江頭楊柳花   4월 강가에는 양류화楊柳花 피었는데

花飛渡江點晴波   꽃은 날아 강 건너 맑은 물결에 떨어지네


溪南溪北柳花飛  남쪽 북쪽 시내에선 유화柳花가 날리고

處處春砧白苧衣   봄날이라 곳곳에서 흰 모시옷 다듬질하네


앞 두 구절은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세번째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 마지막은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의 시구이다. 모두 유화가 바람에 날린다고 했으므로 유화로 버드나무 꽃 보다는 솜 같은 털이 보송보송하게 달려있는 열매를 표현한 것이다.


홍대용洪大容(1731~1783)의 <담헌서湛軒書>에 실려있는 연행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요양遼陽을 지나 석문령石門嶺에 들어서니, 산골이 둘러싸여 있어 바람 기운이 조금 고요하고 날씨도 차츰 따뜻해졌다. 산기슭에 진달래(杜鵑花)가 활짝 붉게 피었는데, 그 곳 사람들은 영산홍映山紅이라고 한다. 그들이 유서柳絮를 유구아柳狗兒(버들강아지)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말과 은연중에 통하는데 또한 어떤 까닭인지 알 수 없다.”****** 즉 우리가 유서를 ‘버들강아지’라고 부르듯이 중국 요양 사람들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인데, 흥미롭다. 하지만 유서柳絮를 왜 버들개지나 버들강아지라고 했는지 그 어원은 알 수가 없다.


하여간 조선중기 우리말에서 ‘버들가야지’ 혹은 ‘버들개지’는 유서柳絮에 대응되는 말이었다. 그리고 <두시언해>에서 유서柳絮를 ‘버들가야지’로, 유화柳花를 ‘버들곶’으로 표현한 것에서 추정해보자면 ‘가야지’는 꽃 보다는 솜처럼 날리는 열매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버들개지는 처음에는 유서柳絮만 뜻했는데, 문인들의 글에서 유화柳花도 바람에 날리는 열매를 표현하는 시어로 쓰이면서 열매 뿐 아니라 꽃까지 뜻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綾羅島라

버들개지는

물우물 혼자돌다

흘너갑니다

가엽지 안을가요.

절므신 西關아씨.


바람아, 봄에 부는 바람아,

산에 들에 불고 가는 바람아,

자네는 어제 오늘 새 눈 트는 버들개지에도 불고,

파릇하다, 볕 가까운

언덕의 잔디풀, 잔디풀에도 불고,

하늘에도 불고 바다에도 분다.


이 시들은 모두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인데, 앞은 안서岸曙 김억金億의 “버들가지”, 뒤는 김소월의 "봄바람"의 일부이다. 문맥을 살펴보면 같은 버들개지지만 김억은 버들의 열매를, 김소월은 버들의 꽃차례를 뜻하는 단어로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버들개지를 버들강아지로 부르면서 이른 봄에 피는 버드나무 꽃, 특히 갯버들이나 키버들 꽃차례를 가리키는 단어로 정착되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고전의 유서柳絮는 버들개지가 분명하지만 현대어에서 버들개지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독자들은 버들개지에서 열매가 아니라 꽃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사실 식물의 꽃이 수정되어 열매로 익고 씨앗이 여무는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보송보송한 솜털을 달고 있는 버드나무 수과瘦果를 보고 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으므로, 버들개지, 버들강아지가 꽃과 열매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도 정답이 없는 듯 하지만, 고전 독자들은 버드나무 꽃과 열매의 차이를 알고, 문맥에 맞게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2021.11.14 끝,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4년 1/2월호, pp.84~91>


* 絮 소옴셔 又柳花亦曰柳絮 - 훈몽자회

**柳花 버들가야지. 柳花卽初發時黃蘂也 及其花乾 絮方出謂之柳絮 - 동의보감

*** 柳華 味苦寒 主風水 黃疸 面熱黑 一名柳絮 葉 主馬疥痂創 實 主潰癰 逐膽血 子汁療渴 生川澤. (問經堂叢書본 신농본초경), 柳華 味苦寒 主治風水 黃疸 面熱黑 葉 主治馬疥痂瘡 實 主治潰癰 逐膿血 一名柳絮 生瑯邪川澤 (維基文字版 開放共同編輯的資料)

**** 柳華. 柳絮, … 藏器曰 本經以柳絮為花 其誤甚矣 花即初發時黃蕊 其子乃飛絮也. (承曰 柳絮可以捍氈 代羊毛為茵褥 柔軟性涼 宜與小兒臥尤佳.) 宗奭曰 柳花黃蕊乾時絮方出 收之貼灸瘡良 絮之下連小黑子 因風而起 (得水濕便生 如苦蕒地丁類) 花落結子成絮 古人以絮為花 謂花如雪者 皆誤矣 藏器之說為是 又有實及子汁之文 諸家不解 今人亦不見用 – 본초강목

***** 柳絮 即柳樹的種子 上面有白色絨毛 隨風飛散如飄絮 所以稱柳絮 - 百度百科

****** 過遼陽入石門嶺 山谷周遭 風氣少靜 日候稍煖 岸際杜鵑花爛紅 土人謂之映山紅 其稱柳絮爲柳狗兒者 與東人土話暗合 亦不可曉也 – 담헌서

+표지사진 : 버드나무 열매, 유서. 2021.4.24 물향기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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