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槿, 목근木槿, 순舜
최근에 페친이신 노교수님께서 중국 남통南通을 여행하시면서, 구한말 중국 남통으로 망명하여 장건張騫(1853~1926)의 주선으로 한묵림인서국翰墨林印書局에서 편집원으로 일하신 김택영에 대한 이야기를 올려주셨다. 김택영金澤榮(1850~1927)은 이곳에서 이건창의 명미당집, 황현의 매천집 등 한말 문장가들의 문집을 신식연활자로 출간했다. 황현의 매천집은 일제강점기 국내에서는 출판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몇 해 전에 명미당집 한권을 우연히 입수한 적이 있다. 이 책이 중국에서 발간되어 있어서 왜 한말 4대가로 불리는 이건창의 문집이 중국에서 발간되었을까 궁금해한 적이 있었는데, 노교수님의 포스팅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어서 정말로 흥미롭지만, 조금은 구한말 상황으로 인해 쓸쓸한 마음으로 읽었다.
김택영金澤榮(1850~1927)이 무궁화에 대해 읊은 시가 있다고 하여, 어제는 <한국고전종합DB>에서 김택영의 문집인 <소호당시집>, <소호당문집>, <차수정잡수>등을 검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김택영은 매천과 친교가 깊고, 매천이 절명시에서 ‘근화세계이침륜槿花世界已沈淪’이라고 읊었으니 김택영도 무궁화에 대해 읊었을 개연성이 있을 텐데, 문집에서 발견하지 못해서 끝내 아쉬웠다. 오늘 퇴근 후, 검색 범위를 넖이고, "金澤榮 槿”을 검색어로 사용하여 드디어 찾을 수 있었다. “누각에 올라 (登樓)’라는 시로, <조선한시朝鮮漢詩> 권21에 실려 있다고 한다. (아직 이 문헌을 제대로는 찾지 못해, 정확한 출전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인터넷으로는 https://zh.wikisource.org/.../%E7%99%BB%E6%A8%93_(%E9%87... 등에서 볼 수 있다.) 기존 번역을 참조하여 다시 번역해본다.
남쪽 기러기 소리 시름겨워 잠 못 이루고
홀로 누각에 오르니 달빛이 밝구나.
열두달 어느 때 인들 고국 생각 않으랴,
삼천리 이역 땅에서 또 한 해를 보내네.
아우도 형님도 백발이 성성할텐데
아버지, 할아버지는 푸른 산 모퉁이에 잠들어 계시리.
무궁화 꽃이 활짝 필 날을 기다려
압록강 봄 물을 배 타고 돌아가리!
一聲南雁攪愁眠
獨上高樓月滿天
十二何時非故國
三千餘里又今年
弟兄白髮依依裏
父祖青山歷歷邊
等待槿花花發日
鴨江春水理歸船
독립이 요원해도, 머나먼 이국 땅에서 독립의 그날을 기다리던 창강滄江의 슬픔과 희망이, 매천의 절명시와 연결되는 듯하여 처연한 느낌이다. 선진국 대열에 접어들었다는 대한민국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한 세기 전, 나라가 망해가던 시절 애국지사들의 심정을 결코 쉽게 헤아리지는 못할 것이다.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의 절명시도 내 친구 이경운 군의 번역으로 다시 한번 읽어본다.
새, 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세상은 이미 망해 버렸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적을 회고하니
인간 세상 식자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
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沉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나는 대학 시절 이경운군의 컬럼에 실린 이 시와 번역을 읽고 깊이 감동한 바 있어서, 졸저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의 "울타리를 장식하는 여름꽃, 우리나라 꽃 무궁화 - 순舜, 목근木槿"편에서 그 전말을 자세히 인용했었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무궁화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도 밝혀두었다.
<2023.11.6>
*2024.7.26 추가 –
류달영, 염도의 공저 <나라꽃 무궁화> (동아출판사, 1983, pp.105~106)를 펼쳤다가, 내가 창강의 시로 추정한 무궁화 시가 “어느 망명지사의 시“로 다음과 같이 실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작자를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시를 하나 더 들어 보고자 한다. 필자의 짐작으로는 이 시를 쓴 이는 나라 잃은 한을 품고 압록강을 건너가서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 지사임이 틀림없다.
한스러운 기러기 소리 선잠을 깨어보니
다락 위엔 나 홀로, 차디찬 가을 하늘
허구한 날 어느 한때 나라를 내 잊으리
머나 먼 타국에서 또 한해가 가는구나
아른거리는 형 아우들 백발의 그 모습들
조상들 묻힌 동산이 눈앞에 또렷하이
기다리던 봄이 오면 무궁화도 피겠지
얼음 풀린 압록강에 타고 갈 배 손질할가
一聲怨雁攪愁眠 獨上高樓霜滿天
十二何時非故國 四千餘星又今年
弟兄白髮依依裡 父祖青山歷歷邊
弟待槿花花亦發 鴨江春水理歸船
이 시는 안 정용安正容 씨가 발굴한 것으로 신 중목愼重穆 씨가 고증한 것인데 경북 영천永川 태생 이 낭산李郎山의 시라고 전한다. 이 승만李承晩 박사의 망명 시절의 시일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한시의 글자 몇이 다르지만, 전사 과정에서 글자가 바뀌었을 뿐 같은 시임이 틀림없다. <나라꽃 무궁화> 저자들은 영천 출신의 이낭산의 시로 추정하지만 확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승만이 지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쓰고 있으나 이는 믿기 어렵다. 만약 이승만이 지었다면 그의 한시집인 우남시선 등에 실리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낭산郎山은 영천의 근대 한학자 이후李垕(1870~1934)의 호이다. 이후李垕는 곽종석郭鍾錫의 문인이다. 곽종석은 경술국치 등 국란國難을 만나 은거를 통한 自靖의 태도를 취했는데‚ 李垕도 스승의 자세를 따라 소극적인 저항을 했다고 한다. 이후의 문집인 <낭산집郎山集>을 검토해야 하겠지만, 이후는 중국 망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투신하지는 않았으므로 이 무궁화 시를 지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여전히 김택영이 지었을 가능성이 남아 있는데, <조선한시朝鮮漢詩 권21>을 언젠가는 열람하여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