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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May 05. 2024

<화하만필花下漫筆>의 “연자화燕子花(제비꽃)”에 대하여

제비붓꽃(Iris laevigata)

일제강점기 사학자이자 언론인인 문일평文一平(1888~1939) 선생의 <화하만필花下漫筆>에 “연자화燕子花(제비꽃)”에 대해 쓴 글이 있다. 몇 해 전 이 글을 읽으면서 연자화燕子花를 비록 ‘제비꽃’이라고 적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오랑캐꽃으로 부르기도 하며 이른 봄부터 들판 곳곳에 피어나는 제비꽃속(Viola)의 제비꽃 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붓꽃속(Iris)의 ‘제비붓꽃’일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제비꽃 (2023. 4. 8. 인천 계양산)

그후 붓꽃을 비롯해 부채붓꽃, 각시붓꽃, 금붓꽃 등은 감상할 기회가 있었지만 좀처럼 제비붓꽃을 만나지는 못했다. 허태임 박사의 <나의 초록 목록>을 읽으면서 제비붓꽃은 고성의 석호에 자라는 귀한 꽃이라는 사실을 안 후, 제비붓꽃을 보고 싶은 마음은 더욱 깊어졌다.


(좌) 붓꽃(2022. 6. 11. 평창), (우) 부채붓꽃(2024. 5. 1. 물향기수목원)
(좌) 금붓꽃 (2021. 4. 16 화야산), (우) 각시붓꽃 (2022. 4. 26. 안동)



“제비붓꽃도 마찬가지다. 기름진 좋은 땅 다 마다하고 오직 석호에만 살겠다는 식물. 꽃망울이 붓을 닮은 붓꽃류는 꽃잎인지 꽃받침인지 구분되지 않는 꽃덮이의 생김새가 각 종을 구분하는 식별형질이다. 제비붓꽃은 보라색 꽃덮이에 하얀 무늬가 특징인데, 배는 하얗고 꼬리는 날렵한 제비를 여러모로 쏙 빼닮았다. 바닷물이 한 방울도 들지 않는 석호, 고성의 선유담과 봉포호에 제비붓꽃이 군락으로 자란다.” (허태임, 나의 초록 목록, pp. 238~239)


지난 5월 1일 휴일을 맞아 오산 오색시장에 가서 장보기도 하고 칼국수 한 그릇 먹고 오자는 제안에 선뜻 오산으로 향했는데, 가는 길에 물향기수목원을 걷기로 했다. 물향기수목원은 싱그러운 신록을 뽐내면서 이른 봄에 꽃을 피웠던 매실나무며 콩배나무, 귀룽나무는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고 늦봄이나 초여름을 장식하는 꽃들이 피었다. 입구의 개양귀비며 괴불나무, 해당화, 등나무, 백합나무, 일본칠엽수, 불두화, 백당나무, 층층나무, 공조팝나무 꽃이 만발했다. 그 중에 습지원에서 활짝 핀 제비붓꽃을 만났다. 드디어 몇 해 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화하만필>의 연자화를 만난 것이다. 뜻밖에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서 기쁨은 더 컸다.


오늘, 물향기수목원에서 찍은 제비붓꽃 사진을 보면서, <화하만필>의 “燕子花(제비꽃)”를 음미하면서 다시 읽어보았다. 다음에 문일평이 소개한 일제강점기 동요와 꽃을 묘사한 부분을 인용한다.


제비붓꽃 (2025. 5. 1. 물향기수목원)



“냇물결 언덕우에 제비꽃 하나

물새보고 방긋웃는 제비꽃 하나

고흔얼굴 물속에 비치어 보며

한들한들 춤추는 제비꽃 하나


이것은 요새 유치원의 원아들이 흔히 부르는 동요로서 하고 많은 꽃 중에서 이 제비꽃을 노래함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초하初夏 맑은 시내가에 한들한들 웃고 선 그 자태는 초화草花의 청초미를 오로지 이 꽃에서 발견할 수 있음이다.

늦은 봄에 붉었던 꽃이 모조리 다지고 새로 전개된 녹음의 천지에는 염려艶麗하던 꽃이라고는 자취 조차 찾을수 없는 때 제비꽃이 홀로 피어 미美를 자랑하고 있음은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꽃이냐? 더구나 이 꽃이 물까에 피게됨은 일종아취一種雅趣를 더하니 초하의 기후도 맑고 시대도 맑고 이꽃도 청초하여 삼미三美가 구전俱全한 것을 보겠다.

여러해 묵은 뿌리에서 돋아나는 풀로서 물가 젖은 땅에 生하며 키는 두 자가량이오, 잎의 모양은 검劍 같고 줄거리는 잎사귀 듬뿍난 한복판에서 솟아나 여름이 되면 줄거리 끝에 큰 꽃이 하나피어 빛은 자록색紫綠色이 보통이나 혹시 백색도 있으며 화판은 두 층으로 되어 외층外層의 화花는 크고도 아래로 탁 늘어졌으며 내층內層의 화花는 적고도 뾰죽하여 우로 웃둑 솟아있어 그 모양이 제비와 같은 고로 이름하게 되었다.


다만 여기 주의할 것은 제비꽃은 속칭 붓꽃(溪蓀)과 꽃창포(花菖浦)와 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려우나 그러나 제비꽃의 잎은 화창포花菖浦의 잎처럼 중앙에 융기맥隆起脉이 없고 또 계손溪蓀의 잎처럼 세장細長하지 아니하고 아주 넓고도 부드러움이 그 특징의 하나이오 그러고 꽃도 화창포보다는 적으며 계손보다는 적이 다른 점이 있다. 제비꽃의 줄거리는 잎사귀에 비하여 흔이 그 키가 적으니라.” (삼성문화문고, 화하만필, pp.106~107)


제비붓꽃 (2024. 5. 1. 물향기수목원)


문일평은 제비꽃(연자화燕子花*)에 대해, 초여름에 피며 붓꽃이나 꽃창포와 비슷하지만 줄기가 잎보다 짧고 잎의 중앙에 융기맥이 없고 넓고 부드럽다고 했다. 줄기 끝에 큰 꽃이 하나 자록색紫綠色으로 피며, 외화피편은 크고 아래로 늘어지며 내화피편은 작고 뾰족하며 위로 솟아 있다고 했다. 이러한 설명은 영락없이 제비붓꽃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이다. 제비붓꽃을 자생지에서 감상하고 싶다. 고성 선유담과 봉포호에 언젠가 제비붓꽃 필 무렵 꼭 가봐야겠다. <끝, 2024년 5월 5일>


*일본 문헌인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을 참고해보니, 연자화燕子花에 대해 중국에서는 제비고깔속 Delphinium ajacis를 가리키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카키츠바타(カキツバタ)로 읽고 제비붓꽃(Iris laevigata)을 뜻한다고 한다. 제비붓꽃은 일본식 한자어로 ‘두약杜若’으로도 표기한다고 한다. 이로 보면 연자화燕子花는 일본에서 도래한 한자어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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