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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Apr 22. 2024

베이징 천단공원天壇公園의 측백나무와 향나무 숲

측백側柏, 원백圓柏, 회백檜柏

지난 4월 초순에 짧게 북경 출장을 다녀왔다. 2019년 겨울에 다녀온 후 5년만이었다. 4얼 7일 일요일 출국해서, 월 화 이틀 간 워크샵을 한 후 4월 10일 총선 날 귀국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사전투표를 한 후 별 기대 없이 업무 출장길에 올랐던 것인데, 측백나무와 향나무 고목들로 이루어진 천단天壇((Temple of Heaven) 공원의 멋진 숲을 감상하면서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둘째 날 워크샵이 끝난 후 중국 동료들이 천단天壇 관광을 주선해준 덕분이었다.


기년전祈年殿


천단은 명청 시대 중국 황제가 제천 의식을 거행했던 곳이다. 천단의 대표적인 건물이 중국이 자랑하는 황궁우皇穹宇, 기년전祈年殿 등이다. 이 건축물도 굉장했지만, 제단 하나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천단공원 정문을 들어서자, 좌우로 상록 고목들이 즐비하게 자라고 있었다. 측백나무와 향나무였다. 관람하면서 보니 간혹 다른 나무들이 섞여 있긴 했지만 이 측백나무와 향나무가 천단공원 전역을 푸른 숲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좌) 측백나무, (우) 향나무, 2024.4.9 천단공원


중국에서 측백나무와 향나무는 늘 푸르고 장수하여 예로부터 상서로운 나무로 여겨졌으며, 황실의 정원이나 제단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나는 졸저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에서, “백柏 - 측백나무가 언제부터 잣나무로 전해지게 되었을까?”와 “檜 - 정원수로 사랑받으며 향으로 쓰인 향나무”에서 이 두 종의 나무에 대해 다룬 바 있다. 몇 구절 인용한다.


“내가 읽은 모든 논어 번역서들은 백柏을 잣나무로 번역하고 있으니 아마 이 땅의 많은 사람도 잣나무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논어』의 이 백柏은 잣나무(Pinus koraiensis)가 아니라 측백나무(Platycladus orientalis)이다. 반부준의 『시경식물도감』이나 『성어식물도감』을 보면 백柏을 측백나무로 설명하고 있다. 의문이 생겼다. 소나무과와 측백나무과는 잎의 모양이 현저하게 다르고, 옛날부터 중국에서 소나무를 송松 자로 쓰고 측백나무를 백柏 자로 썼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백柏을 소나무과에 속하는 잣나무로 생각하게 된 것일까?” (p.99-100)


“정약용은 회檜가 젓나무가 아니라 만송蔓松 혹은 노송老松이라고 했다. 정약용과 동시대를 산 이충익李忠翊(1744~1816)의 『초원유고』에 “만송蔓松을 두루 심어 담장을 두르고(遍揷蔓松繞屋垣)”라는 시구가 나온다. 이충익은 이 만송에 대해 “민간에서 원백圓柏 가운데 덩굴진 것을 만송蔓松이라고 한다.”라는 주석을 달고 있다. 원백圓柏은 향나무를 가리키므로 정약용도 회檜를 당시 민간에서 노송老松이라고 부르던 향나무로 봤을 것이다. 반부준의 『시경식물도감』에도 회檜는 중국명으로 원백圓柏인, 향나무(Juniperous chinensis L.)로 설명하고 있다.” (p,284)


천딘공원의 울창한 측백나무와 향나무 숲


천단공원의 숲 속을 걷다가, 중국 현지에서는 측백나무와 향나무를 어떤 글자로 표현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일행 중 중국인 동료에게 수첩과 볼펜을 주면서 저 나무들이 무엇인지 써 달라고 했다. 은근히 檜와 백柏을 기대했는데, 그는 송松과 백柏을 쓰지 않는가? 곧게 자라는 향나무를 송松이라고 했다. 그리고 송백松柏이 늘 푸른 나무라서 천단에 심었을 거라고 말했다. 즉 절개의 상징 송백松柏을 우리나라에서 흔히 소나무와 잣나무로 보는데 반해, 그 중국 친구는 흥미롭게도 향나무와 측백나무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천단공원 상록수를 송松과 백柏 두 종의 나무로 설명하는 중국인 동료


정말로 중국에서는 향나무를 송松이라고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무에 혹시 설명문이 붙어 있을지 몰라 좌우를 살피면서 걸었다. 꽤 여러 곳에서 나무 이름을 알려주는 팻말을 볼 수 있었다. 측백나무 하나에 “古樹 (二級) 柏科: 側柏 學名: Platycladus orientalis 年代: 淸朝(約100年)”라는 팻말이 있었다. 향나무 고목 하나에는 “古樹 (一級) 柏科: 檜柏 學名: Sabina chinensis 年代: 明朝(約540年)”라는 팻말이 있었다. Sabina chinensis는 Juniperous chinensis L.의 이명(synonym)이므로 향나무를 가리킨다. 또다른 향나무에는 “圓柏 Sabina chinensis, 柏科 圓柏屬”이 붙어 있었다. 중국인 동료가 향나무를 송松이라고 했지만, 팻말에는 곧게 자라는 소위 직향나무를 원백圓柏, 그 외의 향나무를 회백檜柏이라고 적혀 있었다. 측백나무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측백側柏이었다.

 


1943년에 출간된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는 Juniperous chinensis L.의 한자명으로 향목香木뿐 아니라 원백圓柏, 원송圓松, 회檜, 회백檜柏 등 여러가지를 기록하고 있다. 향나무를 뜻하는 원송圓松에 송松이라는 글자가 쓰였다. 뿐만 아니라 향나무를 안동지방에서는 노송老松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중국 친구가 향나무를 송松이라고 한 것은 실제로 중국 민간에서 그렇게 쓰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원백圓柏과 원송圓松은 곧게 자라는 향나무를, 회檜나 회백檜柏은 넓게 자라는 향나무를 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의 “檜 - 정원수로 사랑받으며 향으로 쓰인 향나무”의 말미에는 김창업金昌業(1658~1721)의 『노가재집』에서 인용한 회檜와 원백圓栢을 읊은 시가 있다. 이제 그 시의 뜻이 더 분명해졌다.


“원백圓栢도 향나무(檜) 종류이지만

곧게 자라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네.

세상 사람들이 그 심재를 취해서

자단 대신 향 피울 때 사용한다네.


圓栢亦類檜 惟直爲少別 世人取其心 充作紫檀爇” (p.287~288)


즉 김창업은 곧게 자라는 향나무를 원백圓栢으로, 그 외의 향나무를 회檜로 정확히 구별했던 것이다. 이 회檜를 중국에서 회백檜柏으로도 썼다. 아무튼 그 넓은 천단공원을 사철 푸른 숲으로 치장하는 측백나무와 향나무 고목들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교목으로 우뚝 자란 수많은 측백나무 고목들은, 『논어』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에서 백柏이 잣나무가 아니라 측백나무임을 웅변하는 듯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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