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杜梨(Pyrus betulifolia), 당리棠梨
봄날의 짧은 북경 출장에서 우연히,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Pyrus betulifolia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4월 9일 오후, 회의가 끝난 후 중국 동료의 안내로 명청시대 중국 황제가 제천 의식을 거행했다는 천단天壇(Temple of Heaven)을 둘러볼 때였다. 마침 며칠 전, 대한제국의 천단 격인 환구단圜丘壇을 보고 난 터라, 북경 천단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천단의 나무는 주로 측백나무와 향나무 일색이었는데,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흰 꽃이 활짝 핀 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달려가서 살펴보니, 바로 두리杜梨(Pyrus betulifolia)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다. 중국에서 당리棠梨로도 불리는 Pyrus betulifolia는 나에겐 너무나 익숙한 학명이다. 졸저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의 첫번째 글이 “좋은 정치를 상징하는 나무 감당甘棠“인데, 감당甘棠이 바로 Pyrus betulifolia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자문』에 나오는 이 감당이, 내가 옛글의 나무에 관심을 가지면서 처음 살펴보았던 나무였고 그 정황은 졸저의 머리말에 자세하다.
“우선 어릴 때 선친과의 추억이 서려있는 천자문 의 한 구절인 ‘존이감당存以甘棠 거이익영去而益詠(감당 아래에 머물며 정사를 배푸니, 떠난 후에 더욱 그 덕을 노래한다)’의 감당甘棠이 무엇인지 조사해보았다. 흔히 옥편에서 감당을 팥배나무로 설명하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 『시경식물도감』을 보고서 감당은 학명이 Pyrus betulifolia로 우리나라에는 자생하지 않으며, 팥배나무라기보다는 콩배나무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 9)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감당을 우연히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더구나 꽃이 만발한 모습이라니! 북경 여행에서 잠시 감상한 감당의 추억을 떠올리며, 졸저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에서 몇 구절 인용한다.
“이 감당은 『본초강목』에서 당리棠梨의 이명으로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당리棠梨. … 『이아』에서 두杜, 감당甘棠이라고 했다. 붉은 것이 두杜이고 흰 것이 당棠이다. 혹자는 암나무를 두杜라고 하고 수나무를 당棠이라고 한다. 또 혹자는 맛이 텁텁한 것을 두杜라고 하고 단 것을 당棠이라고 한다. 두杜는 텁텁함을 뜻하고 당棠은 사탕을 뜻한다. 세 가지 설이 모두 통하지만 마지막 설이 맞는 것 같다. … 당리棠梨는 야리野梨인데, 산과 숲 곳곳에 있다. 나무는 배와 비슷하지만 작고, 잎은 삽주 잎 비슷하지만 둥근 것, 세 갈래 난 것도 있다. 잎 가에 모두 톱니가 있고 색은 자못 검푸른 흰색이다. 2월에 흰 꽃이 피고 작은 멀구슬나무 열매 같은 열매를 맺는데 씨앗은 크며, 서리가 내린 후 먹을 수 있다. 배나무를 접붙이는 나무로 매우 좋다.”
…
왕조시대에도 왕의 덕치에 의해 좋은 정치가 행해지면 백성들 삶은 조금이라도 더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춘추시대의 대표적인 선정의 흔적이 『시경』에 ‘감당甘棠’이라는 제목으로 채록되었고, 또 『천자문』에 ‘존이감당存以甘棠 거이익영去而益詠’으로 인용되면서 감당나무와 소백召伯은 고전에서 좋은 정치의 상징이 되었다. 이제 시대의 흐름에 맞는 훌륭한 정치를 기원하며, 콩배나무를 떠올리면서 「감당甘棠」 시 전편을 감상해보자.
무성한 저 감당 나무
베지도 말고 치지도 말라.
소백님이 머무신 곳이라네.
무성한 저 감당 나무
베지도 말고 꺾지도 말라.
소백님이 쉬셨던 곳이라네.
무성한 저 감당 나무
베지도 말고 휘지도 말라.
소백님이 머무셨던 곳이라네.
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
蔽芾甘棠 勿翦勿敗 召伯所憩
蔽芾甘棠 勿翦勿拜 召伯所說” (pp. 19~23)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 신분제가 있던 왕조시대의 선정과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좋은 정치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p.22) 아마도 천단에 심어진 감당나무도 황제의 선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었을지도 모른다.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야 절대권력자 황제의 선정을 기대할 필요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정자들은 권력을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명심하고, 주권자 개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면서 공공선을 위해서만 권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p.22)
마침 총선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천단의 그 감당나무 아래에 잠시 머물면서 나라에 바른 정치가 행해지길 빌고 싶었으나, 일행과 함께 예약된 저녁 장소로 이동해야 해서 사진만 몇 장 찍고 서둘러 나왔다. 이제 뜨거웠던 선거도 끝났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고 또 보았던 선거방송의 열기도 가라앉았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 당선된 선량들이 부디 바른 정치를 펼치길 바랄 뿐이다. 선거 결과를 보면서, 우리 나라는 우여곡절을 아무리 많이 겪어도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해 본다. (끝)
+표지사진 : 감당/Pyrus betulifolia (2024.4.9 북경 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