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베이징에서의 첫 번째 룸메이트 중 한 명은 베이징 아가씨였다. 베이징 아가씨라는 건 많은 의미가 있다. 중국 북쪽 사람들의 특성.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지역적 특색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베이징만의 강한 특색이 있다. 겉과 속이 같아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해서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상처받을 수 있다. 간단히 좋게 표현하면 '솔직하다'이지만 또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세다' '강하다' 뭐 이런 수식어들이 베이징인들에게 붙는다. 사실 나는 단점으로 작용하는 이런 특성을 더 좋아한다. 숨김없이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첫 룸메이트와의 시작은 좋았다. 관대하게 벗들에게 베풀고 도움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남을 돕는 부지런한 모습. 그래서 '대륙 스케일'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룸메이트는 요리를 잘해서 종종 맛있는 요리를 해 주곤 했다. 특히 만두를 즐겨 만들었다. 한국인들에게 만두는 많은 재료와 시간,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나 벗들이 모여 만드는 음식이지만 중국인에게는 단지 계란, 부추.. 아니면 배추, 고기 등 두세 가지 정도의 재료만 넣어 만드는 간단한 음식이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 성격이 굉장히 털털하고 남자 같은 아가씨인데 만두를 만들 때만큼은 여성스러운 모습이 보이는 그런 친구. 나중엔 내가 만든 비빔국수를 먹고 너무 좋아해서 퍽하면 또 해달라고 하고 맛있게 먹었던 친구. 여기까지가 그녀에 대한 비교적 좋은 이미지이고 중요한 건 지금부터이다. 이 친구를 소개한 같이 살던 한국인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곧 새로운 룸메이트를 찾아야 했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베이징은 방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3~4명이 같이 살아야 부담이 덜 됨) 지인의 소개로 일본 아가씨가 들어오게 되어 뜻하지 않게 '한중일'이 함께 생활하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돈을 아끼기 위해 낡고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방이 두 개어서 내가 베이징 룸메이트와 한방을 쓰고 다른 방은 일본 아가씨가 돈을 조금 더 내고 혼자 사용하게 되었다. 가족도, 부부도 아닌 사람과 한방을 쓴다는 건 정말 대단한 모험이니 웬만하면 도전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누군가가 말했다. 룸메이트와 한방을 사용하는 건 내내 다른 사람 앞에서 옷을 벗고 있는 느낌이라고... 베이징에서의 5년의 시간 중 나는 그 생활을 3년이 넘게 했다. 혼자만의 공간, 사생활이 전혀 없이 노출된 생활... 그래서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혼자만의 공간, 혼자만의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이유이다. 또 누군가는 말했다. 룸메이트 생활은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한국에서 가족들과만 살아서 몰랐던 나 자신.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를 깨닫게 해 주고 나 자신에 대한 수많은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 준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고 본다. 내가 반드시 고쳐야 할 점들, 반드시 발전시켜야 할 특성들을 알게 된 시간... 천천히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