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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Nov 11. 2024

대화의 방식

II. 여행 중의 산책


 몰타는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이기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비교적 저렴한 여비에 인생을 스스로 알아가는 동력을 막 얻은, 혹은 아직도 얻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다. 또 이탈리아 아래 지중해의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 섬은 고유한 낯선 색채를 풍겼다. 가끔 우울감을 주었던 만성적인 모랫빛깔과 대비되는 뜨거운 여름 파티의 화려한 색채. 이 낯선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조금 더 용감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몰타에서는 사흘에 한 번씩은 파티가 열리는 듯했다.

 환영 파티, 이별 파티, 영어 파티, 생일 파티, 그 속에서 수없이 오가는 대화, 왁자지껄함, 빠른 비트의 음악, 술… 파티문화는 생소했다. 생일 당사자나 곧 떠나는 자 혹은 그 누구든지 간에 파티를 연다고 친구들에게 알린다. 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자유롭게 파티가 열리는 공간으로 찾아간다.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지 않는 내게도 가끔씩 파티에 가자는 말이 들려온 적이 있었기에, 몇몇 파티는 휩쓸리듯이 참석하기도 했다.

 파티에서는 "Where are you from?", "Why did you come here?" 이 두 개의 질문을 거치면 조금은 친한 사이가 되곤 했다. 길 가다 마주칠 때 손을 흔들어주는 정도로. 도착한 지 사흘째에 같은 반이었던 일본인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게 되었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던 그 파티는 비교적 정적이었다. 일제히 둘러앉아 준비해 온 음식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꽤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조금은 어색했고 대부분 즐거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날의 파티는 즐거울 때도 있었고, 즐거워야 할 때도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아도 모른 척했다. 파티의 미덕은 웃음과 활기였고, 그것은 즐거움을 적지 않게 강요했다.

 그날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파티에서는 끊임없이 대화들이 생성되는데, 대화가 끊긴 그 잠깐의 시간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즐거움의 강요 속에서 생성된 대화들은 껍데기만 남았다. 대화를 위한 대화. 몇 번의 파티에 참석하고 난 후, 나는 대화의 껍데기를 곧잘 감지하게 되었다. 파티를 즐기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첨예하게 다듬어진 작가들의 언어를 알게 된 이후, 곧 흩어져버릴 대화의 껍데기들에 파묻혀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다.

 단 둘이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껍데기는 얇다. 한국에 돌아왔으나,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 대학생활이 지속되고 있던 어느 겨울, 대학 동기의 연락을 받았다.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 없었지만 같이 밥을 먹자는 당돌한 그녀의 연락이 흔쾌했다. 한없이 따뜻한 이들은 뭉뚝한 기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편견을 깨부수던 그였다. 첫 만남에서도 내면의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흘러나오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우리는 오래된 친구 같았다. 허심탄회한 대화 속에서 위태로워 보이던 우리들의 존재는 허물을 벗고 자신을 드러낸다. 그렇게 만난 발가벗은 존재들은 서로 연결되어 존재의 이유를 힘껏 붙든다. 우리는 내밀한 이야기들을 꺼냈다. 그것은 “Why did you come here?”에 대한 진정한 답변이었다.

 독서는 나체 상태의 대화이다. 우리의 인생을 꿰뚫어 단숨에 설명해 내는 문장을 만나는 순간, 나체가 되어 그저 책을 부유해 다닌다. 생각은 자유를 얻고 무한해진다. 그러한 문장이 있는 책은 재독 하려 노력한다. 다시 읽을 때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질문들이 생긴다. 이들은 인생의 끈질긴 인연이 된다. 나를 지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있기에 계속해서 자신감을 얻는다. 어쩌면 잘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

  일상의, 일생의 대화는 대부분 이러할 것만 같다. 난잡하게 생성되고 버려지던 파티에서의 수많은 대화 속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파티가 지속되는 동안 얼굴에 띄워두던 미소는 진짜 나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열리는 파티는 나의 일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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