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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Jul 13. 2022

서당개 3년이면 현타가 옵니다.

((이전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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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사 욕구는 홀수 해마다 온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저는 그 말이 이해가 잘 안되더라고요. 저에게는 적응이 최대 고민이자 과제였기 때문이에요. 일만 잘 하면 아무 고민 없을 것 같은데. 조직에 완전히 녹아들고 나면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지나보니 그 말이 딱 맞았어요. 내 앞가림 하기 바빴던 1년차, 능력을 맘껏 펼쳐보던 2년차를 지나고 나니 제법 머리가 굵어진 3년차가 되었지요. 그러고 나니 정말로 현타가 오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3년차가 되니 이전보다 많이 편해졌어요. 이젠 더이상 가슴을 부여잡고 잠들지도 않고, 심장이 쿵쿵거리는 것을 느끼며 깨지도 않았어요. 새벽에 쫓기듯 깨지도 않았죠. 쫓기듯 불안한 감각을 느끼며 살았던 과거와 달리 꽤 편안해졌어요. 마음 맞는 사람과 일하는 날은 참 편안하고 행복하기도 했어요. 후임이 들어오니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날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이전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였어요. 일상은 1년 전과 마찬가지로 매일같이 쳇바퀴처럼 돌아갔지만 그 속엔 많은 것들이 있더라고요. 매일같이 물밀듯 쏟아지고 나가는 입퇴원 환자들은 과중한 업무로 보였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각종 사건들은 버거운 과제로 보였어요. 함께 일하는 동료사이에서의 묘한 눈치와 관계들은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보였고요. 보이는 문제는 많아졌는데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어요. 2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무력하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어요. 직장 생활에 너무 집중하니 공허한 감정을 더 느끼게 되는 것 같아 일부러 집중하지 않고 주의를 돌리려 노력했어요. 체력과 시간, 돈도 생겼으니 이제 정말 하고 싶은걸 해보자 싶었어요. 저는 소소한 전시회와 프리마켓 가는게 좋았어요. 특히 프리마켓은 여러 수제품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저는 누군가의 개성이 들어간 작품을 좋아하거든요. 특이한 발상도 멋지고요. 수제품도 어느정도 유행이 있어서 거의 대부분은 비슷한 아이템이긴 하지만 그 와중에 발견하는 독특한 아이템이 좋았어요. 그래서 보물 찾는 마음으로 프리마켓들을 찾아다녔어요.

  나도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바다캔들이 유행이었는데 그 캔들 속에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 피규어를 넣어보면 참 예쁘겠다 싶었어요. 젤캔들은 커녕 캔들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라서 원데이 클래스를 예약하고 배우기도 했어요. 그 이후로도 혼자 많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캔들 만들기에 매진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좋아하는 일과 뚜렷한 목표가 있는 상태는 사람을 몰입하게 만든다는 사실. 그리고 나는 이전에도 이 경험을 해보았다는 사실. 잊고 있었던 몰입의 힘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어요. 그렇게 만든 캔들로 프리마켓에서 판매를 했어요. 내가 공들여 만든 작품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더라고요. 그 경험으로 재밌는 취미를 가진 직원으로 사내 신문에 실리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어요.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해달라는 요청도 받았어요. 그 땐 '내가 감히 그런 것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부담을 느껴 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쉬워요. 좀 더 도전해도 좋았을 것 같거든요. 그렇지만 그 때 마음도 이해돼요. 저는 제가 머리속으로만 구상하던 작품을 실제로 만들어 보는 것에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그 이상 진행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 번 겪어보고 깨달았어요. 내가 하고자 하면 그저 하면 된다는 사실을요. 그러면 새로운 기회가 자연스레 찾아온다는 사실도요. 캔들은 전혀 관심도 없었고 하나도 몰랐지만 내가 구하고자 하면 정보는 도처에 널려있었어요. 닿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는 꼭 찾아오더라고요. 

  


  그렇게 직장 생활 중 생긴 첫 번째 취미는 막을 내렸어요. 일탈은 즐거웠지만 결국은 본업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취미가 함께하는 삶은 즐거웠지만 취미가 본업이 될 순 없었어요.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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