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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Oct 19. 2022

의사가 쌍둥이 임신을 권하지 않는 이유

“아휴…. 어쩌다 쌍둥이가 찾아와서…”


믿을 수 없게도 산부인과 진료를 보러 가서 들은 말이다. 그분은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산부인과 병원의 가장 유명한 의사였다. 이 동네 아이들의 70% 이상은 다 이 의사가 받았을 거라는 농담이 있을만큼 경력이 길고 실력이 좋은 의사였다. 심지어 쌍둥이 자연분만도 가능한 국내에 몇 안되는 실력자라고 했다. 대기가 무척이나 길었지만 실력이 좋다고 해서 담당 의사를 변경한 것이다. 한시간이나 기다려 만난 의사의 첫 마디가 탄식이라니… 불편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 체구가 너무 작은데…. 아휴… 어떡하나. 어쩌다 쌍둥이를 가져가지고… 아휴… 쌍둥이는 진짜 힘들어요. 정말 힘들어요. 조산하지 않도록 정말 잘 키워야 해요.”


나는 그 날 진료를 보는 30분 내내 탄식과 걱정을 들어야 했다. 축복을 바란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큰 일이 난 것처럼 한숨과 걱정을 들어야 하나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선생님의 표현 방식이 불편해서 그렇지 걱정하시는 부분도 이해가 되었다.


쌍둥이 임신은 일단 ‘37주 만삭 출산’에 목표를 둔다. 왜냐면 조산 가능성이 정-말 크기 때문이다(어느정도냐면, 태아 보험 영업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웃는 얼굴로 권유하다가도 "쌍둥인데요" 한 마디에 난처한 표정으로 사라질 정도다). 사람의 몸은 한계가 있고 어느 정도 자궁이 커지면 분만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자궁 수축이 일어난다. 그런데 쌍둥이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다. 배가 너무 빨리 커지면 그만큼 일찍 분만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조산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조산의 위험성이야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아무리 의학 기술이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엄마의 자궁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다. 생존률은 이전보다 많이 올라갔지만 조산으로 인한 장애 발생률까지 해결되지는 않았으니. 이상이 없는 이상 최대한 뱃속에서 오래 품어 출산하는 게 중요했다.


의사 선생님의 의견은 이러했다. 일단 최대한 아이를 잘 키워서 최소한 30주까지는 버텨야 한다. 그리고 아기 몸무게도 1.5kg 정도까지는 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산하더라도 잘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아이의 몸무게가 너무 높으면 안된다. 오래 버티려면 차라리 몸무게가 낮은게 낫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식을 잘 먹어야 한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고영양 저열량 식단으로 잘 챙겨먹어야 한다. 특히 단백질을 잘 먹어야 한다. 앞으로 버티는 게 쉽지 않을거다. 체구라도 크면 좀 나은데 체구도 작아서 정말 걱정스럽다. 단태아와 쌍둥이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동일 선상에서 놓고 생각하면 안된다. 조심 또 조심해서 최대한 오래 버텨야 한다.


쌍둥이 임신이 쉽지 않은 이유가 또 있다. 쌍둥이 임신, 즉 다태임신은 그 자체로 고위험 임신으로 분류된다. 고위험 임신이란 산모나 아이에게 어떠한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19대 고위험 임신질환에는 ‘조기진통, 분만관련 출혈, 중증 임신중독증, 양막의 조기파열, 태반조기박리, 전치태반, 절박유산, 양수과다증, 양수과소증, 분만전 출혈, 자궁경부무력증, 고혈압, 다태임신, 당뇨병, 대사장애를 동반한 임신과다구토, 신질환, 심부전, 자궁 내 성장 제한, 자궁 및 자궁의 부속기 질환’이 있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 이 단어들 사이에 당당히 위치한 ‘다태임신’을 보면 새삼 내게 주어진 무게를 쉽게 보아선 안되겠구나 싶었다. 더욱이나 다태임신은 다른 고위험 임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쌍둥이 산모는 임신성 고혈압, 임신성 당뇨에 걸릴 확률이 단태아 산모보다 높다. 조기진통, 양막의 조기파열 또한 마찬가지다. 각각의 질환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닌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 요인들이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 나 역시도 임신 기간동안 조기진통, 양수과다증을 겪었다.


그렇지만 이미 아이 둘이 찾아온 상황에서 다른 방법은 없었다. 때로는 내 양 발에 아이들의 다리를 하나씩 묶고 3인 4각을 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양 팔에 아이를 하나씩 안고 혼자 버티며 전진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전진만이 있을 뿐! 우리에게 후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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