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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Oct 19. 2022

가족들에게는 알리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며 ‘어떻게 쌍둥이를 키우냐, 나는 엄두가 안나서 못하겠다’고 얘기하지만, 나라고 처음부터 자신이 넘쳤던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다. 날 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실 나는 아이를 갖는 것도 두려웠다. 나는 불안도도 높고 예민한 사람이었고, 걱정을 달고 살았기 때문에 아기를 갖는게 어렵게 느껴졌다. 언젠가 갖긴 하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 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랬던 아기를 가질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배우자 덕분이었다. 느긋하고 안정적인 성향이었던 배우자 덕분에 어느 순간 근거없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그간 하고 싶었던 일도 다 했겠다, 내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자 아기를 가지고 싶어졌다. 이제는 아기를 위해 나를 내려놓을 각오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용기를 내자마자 그 마음 무르지 말라는 듯 바로 아기가 찾아왔다. 혼자 오기 심심했는지 둘이 함께 말이다.


아기를 갖는 건 계획에 있었지만 쌍둥이는 계획에 없었다. 상상도 못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 청천벽력 이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거 잘 알지만 이렇게까지 뜻밖일 수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의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좀 불안하네요… 둘이 크기 차이가 좀 나서, 도태될 수도 있겠어요. 그런 경우가 의외로 제법 있거든요. 아직은 가족들에게 알리지 마세요.”


머리를 크게 두 대 얻어맞고 진료실을 나섰다. 쌍둥이 임신도 충격적이고 걱정스러운데, 심지어 하나가 도태될 수도 있다고?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나는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도 될 지… 임신사실은 기뻤으나 쌍둥이는 부담스러웠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쌍둥이가 찾아왔음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사실을 부정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흔쾌히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러다 나쁜 소식을 들으면 더 큰 충격에 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사실 부정하는 마음이 더 컸지만 나의 마음 상태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봐 너무 조심스러웠다. 거부하는 마음이 하나가 도태되는 결과를 낳는것은 아닌지…


사실 임신 초기의 유산은 대부분 염색체 이상으로 산모와는 관련이 없다. 몸을 조심하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과 별개로 진행되는 유산도 너무나 많다. 물론 나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이 뜻대로 안됐다. 머리로 안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가 지나니 머리가 꽉 찬 것 같은 느낌은 좀 가라앉았다. 생각하면 다시 혼란스러웠지만 말이다. 무슨 결론이 나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곤 했다. 일주일 쯤 지나자 나는 내가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좋은 일인지는 의문이었다.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덜컥 겁이 났다. 그렇게 내 마음을 덮어두려 애쓰면서 다음 진료일을 맞이했다.


나는 불안함이 크면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그리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습관이 있다. 습관처럼 나쁜 상황을 그리다 혹여나 영향을 줄까 싶어 의식적으로 좋은 상황을 그렸다. 


그리고 초음파를 확인하는 순간 마법이 펼쳐졌다. 두 아이 다 심장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콩콩 잘 뛰고 있기도 했다. 그 순간 들은 심장소리는 지난 2주간 했던 마음 고생이 날아갈 정도로 너무나 벅찬 소리였다. 


아이들은 처음에 보였던 차이가 여전히 벌어진 채 자라있었다. 처음엔 하나가 성장을 못해서 차이가 났을지도 모르니 도태 가능성을 말씀해주셨는데, 여전히 차이를 두고 자란 것을 보니 아마 몇 일간의 차이를 두고 수정이 된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열심히 뛰고 있는 두 개의 심장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안도하고 기뻐하는 내 마음이 느껴졌다. 아, 나는 저 소리를 지키고 싶어서 2주간 그렇게 마음 고생을 했었구나. 그 때 깨달았다. 나는 분명하게 이 아기들을 지키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새끼를 지키고 싶은 본능인지, 상실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 마음인지. 그것도 아니면 책임감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유를 불문하고 나는 지키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이제 쌍둥이를 임신한 산모가 되었다. 이 아기들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게 될 수 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세 돌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나는 이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계획에 없었던 쌍둥이었지만 아기들을 지키고 싶다고 결정한 날이다. 그 이후로 힘든 순간들이 수차례 찾아왔다. 그 때마다 이 첫 순간을 되새겼다. 그렇게나 함께하길 원했던 간절한 마음을 떠올리며 말이다. 이렇게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는 시간이 없었다면, 이후 힘든 순간들마다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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