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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Oct 20. 2022

여행지에서 뱃속 아이를 잃을뻔 했다.

의사가 하지 말라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초음파 화면 속에서 아기가 꼬물대는 모습이 꽤 귀여워 보였다. 나도 많이 익숙해졌나 보다. 격변의 입덧 시기도 지나갔고 이르지만 아주 작은 감각으로 태동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몇 번의 진료를 더 보면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활에 조금씩 적응을 하고 있었다. 겁을 엄청나게 먹었던 초기와 다르게 모든게 순조로이 흘러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도 매 진료마다 “아주 좋네요. 잘 챙겨먹고 있죠? 잘 크고 있어요. 걱정할 게 하나도 없네요.”하고 좋은 피드백을 주셨다.


긴장이 조금 느슨해져서인지 다른 마음이 슬금슬금 들었다. 바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무척이나 바빠질테니 여행을 꿈도 못 꿀 터, 지금이 마지막 해외여행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코로나 이전이라 해외여행도 자유로웠고 하와이나 괌, 동남아 등 해외 휴양지에 태교여행을 가는게 보통의 분위기 였다. 나는 아이를 갖기 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혼자 다녀올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출산을 하고 나면 더 어렵다고 생각하니 지금이라도 꼭 가고싶었다.


태교여행은 보통 임신 중기(12주~27주)에 많이들 간다. 그때가 컨디션도 가장 좋고 조산과 유산의 위험도 적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계획했던 시기는 임신 18주였다. 몸도 가볍고 배가 좀 나오긴 했지만 불편할 정도도 아니었으며 음식도 가리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었다. 이따금 쉬어야 하긴 했지만 일상 생활에 무리가 없었다. 쌍둥이 산모들은 반반인 것 같았다. 태교여행은 많이들 가는 분위기였고,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 반, 제주도를 비롯한 국내여행을 가는 사람 반 정도였다. 어떡하나 고민이 좀 되었지만 그래도 평소에 별 일이 없는데 여행을 가서 특별한 일이 생길까 싶었다. 병원 진료를 볼 때 의사 선생님께 여행을 가도 되겠냐고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셨다. 


“안가는 게 좋긴 한데… 가서 무슨 일 생길지 모르잖아요. 근데 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긴 하고… 최대한 쉬어가며 조심해서 갔다와요. 근데 왠만하면 제주도 가세요. 국내는 그래도 대처하기가 좀 나으니까. 그리고 절대 무리하면 안돼요.”


아이에 대해서는 정말 보수적으로 말씀하시는 선생님이라 못 가게 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내 컨디션이 괜찮아 그런지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내 나이가 20대라는 점, 그간 진료중 이벤트나 걱정스러운 상황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 아이들의 성장 상태가 괜찮았다는 점(둘의 성장 속도 차이 없이 잘 자라고 있었음), 태반 위치가 위험하지 않다는 점 등 여러가지를 고려했을 때 딱히 가지 말아라고 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게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나는 나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모른다는 점이었다. 나는 첫 임신이었고 임신을 한 내 몸이 힘들때 어떤 식으로 신호를 보내는지 몰랐다. 또 내 체력도 임신 전 나의 체력을 기준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정도였으니 정확하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 겁이 없었다. 주위에서는 과하다 싶을정도로 쉬어야 한다고 말을 해주었지만 그게 어느정도인지는 몰랐다.


그리고 나의 무지는 여행지에서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나는 태국 방콕으로 떠났고 이틀간 즐겁게 잘 놀았다. 구경도 많이 하고 힘들면 쉬어가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숙소를 옮기는 날 몸 컨디션이 심상찮았다. 어딘가 계속 배가 아팠다. 생식기도 빠질듯이 아팠다. 흡사 생리통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컨디션이 나쁜가 싶었지만 좀 불편한 정도였지 심하게 아프진 않았다. 숙소를 옮기는 날이 아니었더라면 좀 더 쉬었을 텐데, 숙소를 옮겨야 해서 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옮길 숙소는 편안하고 휴양지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빨리 옮겨서 쉬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알다시피 체크아웃 시간과 체크인 시간은 차이가 좀 있다. 또 옮기는 숙소는 약간 외곽지역에 있어서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체크아웃 후에 한 군데 들러 구경을 하고 숙소로 들어가면 되겠다는 계산이었다. 몸이 안좋으니 카페에서 쉬어가면서 조금씩 움직였다. 그렇지만 그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날 밤, 나는 정말 최악의 밤을 맞이했다. 배가 미친듯이 쥐어짜이는 고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첫 임신이라 잘 모르는 내가 느끼기에도 이건 아닌데 싶은 고통이었다. 그건 단순한 배뭉침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불 정리를 할 때 진공 청소기로 공기를 모조리 빼서 진공 상태로 만드는 진공팩! 바로 그 느낌이었다. 배를 어마어마한 강도로 쥐어짜는 느낌! 뭐가 잘못되도 정말 잘못됐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진통 간격을 체크했다. 간격이 너무 짧아 그런지 어플은 계속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규칙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도가 너무 강했다. 아이들은 괜찮은걸까. 태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이들은 괜찮을까, 버티고 있을까. 너무 두려웠다. 두렵다는 말로는 다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두렵고 미안했고 자괴감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병원에 가야 하나?

이 새벽에 어느 병원으로 가야하지?

호텔에 얘기하면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 줄까?

병원에 가서는 어쩌지?

여기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어쩌면 여기서 분만을 해버리면 어떡해?

그 이후의 절차는 어떻게 되는걸까?

어느 곳을 가도 한국의 의료시설만큼은 안될텐데, 오히려 갔다가 발이 묶이는건 아닐까?

비용은 얼마나 나올까?

장기 입원으로 가게 된다면 그건 또 어떻게 하나?

그 전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과정은 순탄할까?

거기부터 막히거나 대기가 길어지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게 나에게는 더 힘든 일이 아닐까?

차라리 여기 호텔에서는 누워서 쉴 수 있지만, 병원에 가서 절차상의 문제로 더 고생만 하는건 아닐까?


섣불리 병원을 갈 수가 없었다. 일이 꼬이거나 길어질 경우를 생각해서 어느 편이 더 나은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장기입원으로 이어질 경우 비용 걱정도 되었다. 여긴 한국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외국인이니까.


한 편으론 아이들이 위험할 수 있을 상황인데 아이들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현실적인 방안들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내 상황에 무력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괴감과 자책감이 들었다. 


‘내가 내 컨디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아이들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구나. 애초에 태교여행을 가겠다는 것 자체가 내 욕심이었어. 아이들을 우선으로 생각했다면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을텐데. 나는 내 욕심이 앞섰던 거야. 나는 나이기 이전에 아이들을 품고 있는 상황인데, 내가 그걸 잊었어… 이번 일로 아이들이 정말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러면 나는 정말로 어떡하지…’


수축이 살짝 줄어들었다. 호텔에 누워 좀 더 쉬어보기로 했다. 열심히 서칭한 결과 체내 수분량이 낮아지면 수축 호르몬의 농도가 짙어져 수축이 올 수 있다고 수액을 맞기도 한다는 정보를 찾았다. 내가 할 수 있는건 물을 계속 마시는 일이었다. 새벽 내내 물을 마셨다. 혹시 모르니 포트에 끓여서 천천히 계속해서 마셨다. 몇 병을 마시고서야 수축이 잦아들었다. 새벽에 시작된 소동이 동이 틀 때 쯤에서야 끝이 났다. 그제야 눈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호텔에 누워만 있었다. 낮에도 잔잔한 수축이 몇 번 있었다. 그 순간마다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무신론자지만 신도 찾게 되었다. 아이들을 지켜달라고 빌고 빌었다.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면 돌아가서 그 어떤 힘듦이 있어도 버텨내겠다고. 이번 한 번만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신나게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에 앉았는데 카톡이 왔다. 태풍 소식으로 비행기가 결항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정말 그 카톡을 보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리고 배가 순간 확 아파왔다. 스트레스를 온 몸으로 받는다는 증거였다.


비행기는 아예 취소되었으니 다른 날짜로 옮기라고 했다. 그런데 고객센터 연결도 안되고 다음 날 비행기는 몇 자리 남아있지도 않았다. 어버버 하는 사이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열심히 알아보니 태풍이 지나가는 건 맞는데 취소되는 건 내가 예매 했던 항공사 밖에 없었다. 제주가 태풍 영향으로 비행기가 필요해서 다른 지역의 비행을 취소하고 제주로 돌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가 됐든 정말 울고싶은 소식이었다.


하루 더 있다가 부산으로 내려갈지, 아니면 어떻게든 오늘 한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지. 남아있는 티켓도 얼마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어떻게든 오늘 한국을 가야겠다 싶어 인천으로 가는 티켓을 예매했다. 그리고 인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원래 도착할 시간보다 약 8시간이나 지나서야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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