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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Oct 20. 2022

양수가 많으면 생기는 최악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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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큰 일 날 뻔 했네요.”


한국으로 오자마자 달려간 병원에서는 지금도 자궁수축이 있다고 했다. 그 순간엔 이게 수축일까 싶을 정도로 가벼운 배뭉침으로 느껴졌는데 검사를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수치상으론 50에 해당하는 수축이었다. 비로소 내가 태국에서 겪었던 수축의 위력을 느꼈다. 잘 모르는 내가 느끼기에도 배가 쥐어짜듯 아픈게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나보다. 다시 한번 잘 버텨준 아이들에게 고마웠고 나의 안일한 판단이 후회스러웠다. 그건 단순한 잔수축이 아니라 조기 진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수액을 맞고 수축이 다 멎어들었음을 확인한 후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물론 무리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단순히 그것뿐일까? 그 다음주가 되어서야 담당 의사를 만날 수 있었고,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양수가 너무 많네… 양수가 너무 많아… 배가 너무 빨리 불러오지 않았어요?”


어쩐지 배가 너무 빨리 커진다 싶었는데 쌍둥이는 다른가보다 했다. 알고보니 양수가 많아서 더 빨리 커지는 것이었나보다. 문득 비행기를 탈 때, 18주라고 했더니 28주냐고 되물었던 항공사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의사는 다시 한 번 조산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산모의 체구도 작고, 쌍둥이인데다, 양수까지 많으니 이대로 가면 분명히 조산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의학기술이 많이 좋아지지 않았냐고 물으니 의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살릴 순 있겠죠. 생존률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생존에 대한 문제이지 조산한 아이가 마주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는 전부 빠진 이야기에요. 자궁에서 충분히 있다 나오지 못한 아기는 온 몸 온 장기가 미성숙해서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아요. 조산은 절대 막아야 해요. 저번에도 말했죠? 딱 30주까지만 버텨봅시다. 30주 1.5kg까지는 되어야 해요.”


  “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양수를 줄일 수가 있나요?“


  “혈당 조절이 안되면 양수가 많을 수 있어요. 혈당 조절부터 해봅시다. 식사 골고루 잘 챙겨드세요. 단거 드시지 마시고, 단백질 챙겨드시고, 나머지 영양소는 골고루 드세요.”


 나는 굉장히 심란한 마음으로 진료실을 나섰다. 양수 과다에 대해 검색해보니 검색 결과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양수 부족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많았다. 양수를 늘리고 싶어 안달인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많은게 문제가 되네 싶어 더 마음이 복잡해졌다. 양수과다에 대한 결과가 많지 않은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건 별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딱 하나, 조산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 빼고는. 쌍둥이가 아닌 단태아였다면, 양수가 많은건 너무나도 축복인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축복이었을 이 문제가 쌍둥이를 품은 내게는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었다. 작은 체구에 쌍둥이를 가진 것만으로도 악조건인데 거기에 양수까지 많다니… 과연 나는 조산하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을까, 몹시 심란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강박에 시달렸다. 오늘은 양수가 얼마나 늘었을까, 배가 더 커진것 같지 않나, 이건 먹어도 되는 음식인가, 피해야 하는 음식인가, 이 양은 적당한가, 너무 많은가 하면서 말이다. 몸무게는 아침마다 재며 걱정했다. 달콤한 음식을 마주하게 되면 고뇌가 더 깊어졌다. 한창 당기는 것 많을 20주의 임산부에게 너무 가혹했다. 밀가루 음식은 또 얼마나 당기는지! 진료 보는 날은 전날부터 너무 걱정스러웠다. 몸무게가 너무 많이 늘어서 혼나지 않을까 임신 주수 적정 몸무게를 검색해보며.


  몇 주간 지켜보았으나 양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그리고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담당 의사가 식단표를 작성해오라고 했다. 단 것은 일절 금지, 최대한 골고루 영양 챙겨 먹기. 양이 적어도 안되고 많아도 안되며 단백질을 특히 잘 챙겨먹을 것. 다이어트도 제대로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식단표는 더더욱이나 써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주어진 미션이었다. 내 몸이니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둘이나 품은 이상 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식단표를 작성했다. 하루에 먹은. 음식의 종류와 양, 그로 인해 섭취한 영양성분 g까지. 


  더없이 정성스러운 식단표를 들고 가니 의사 선생님께서 박수를 치셨다. 브라보!! 이대로만 먹으면 양수는 분명히 줄어든다고 장담하셨다. 하지만 원하는 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완벽한 식단이라고 무척이나 칭찬해주신 게 무색할 정도로 양수는 무심하게 늘어갔다. 초음파를 보는 담당 의사의 눈가에도 주름살이 늘어갔다. 점점 굳어가는 선생님의 표정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안되는 게 있었다. 살면서 노력해도 안되는 걸 수없이 겪어보았지만, 내 몸조차 그럴지는 몰랐다. 임신은 별개의 문제였나보다. 내 몸도 나만의 몸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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