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민 Oct 21. 2022

대학병원 전원, 오히려 좋아.

행복은 불행의 가면을 쓰고 온다.

결국 임신 26주, 대학병원으로 전원하자고 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양수 감압술을 받으라고 했다. 양수 감압술은 주사를 통해 양수를 빼내는 시술이다. 이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오랬동안 온 힘을 다해 애를 썼는데도 실패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했다. 양수 감압술도 너무 두려웠다. 터지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응급으로 분만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단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입이 썼다. 노력으로 안되는 일이 있구나. 그래, 어쩜 당연하지. 이렇게 된 게 더 좋은 일일지도 몰라. 그간 강박에 시달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로서는 실패라는 방점을 찍는게 차라리 더 마음 편할 것 같기도 했다.


그전에 다니던 병원도 대기가 무척 길었지만 대학병원은 그 이상이었다. 예약을 하고 오는건데도 대기실은 항상 만실이었고, 산과 특성상 갑작스러운 분만이 생겨 교수님이 들어가시고 나면 진료 대기는 더더욱 길어졌다.


대기를 기다리며 대기실의 브로슈어를 살펴봤다. 브로슈어는 조기진통, 전치태반, 자궁경부 무력증 등 고위험 임신에 대한 이름들로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다태임신’이 눈에 들어왔다. 임신 그 자체만으로도 고위험이 되는 임신이라니… 새삼 여성간호학을 공부했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절대 쌍둥이는 갖지 말아야지 생각했고, 가질 기회도 없을거라고 단언했지만, 세상에 단언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배웠다.


긴 대기 끝에 초음파실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긴장하며 들어섰으나 생각보다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의 교수님이 계셨다. 교수님과 함께 가장 먼저 한 일은 양수 과다의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아이고… 진짜 힘들겠어요… 인간은 하나만 품어야 해요… 하나만 품도록 설계된 몸이에요. 그런 몸으로 둘을 품으니… 아휴…” 


초음파를 보시던 교수님이 연신 안타까워하며 해주시는 말씀이 마음에 따뜻하게 닿았다. 가슴이 찌르르 떨리며 울컥했다. 사실 그동안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쌍둥이 임신을 많이 축하해주고 격려해주었다.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들이지만 내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컸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품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내 몸 자체가 받는 신체적 부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모든 생각이 아이들을 위주로 돌아가고, 나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아이 위주로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너무 외로웠던걸지도 모른다. 그 때의 나는 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품은 엄마로 존재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그런데 기대없이 온 대학병원에서 뜻하지 않은 위로를 들은 것이다.


나는 쌍둥이라 아기집이 두개였는데 하나는 정상 양수량의 범위를 넘어 양수 과다가 맞았고, 다른 하나는 경계에 있었다. 하나여도 과다량인데 둘 씩이나 그러니 몸이 남아날 새가 없는게 당연했다. 


그 다음은 양수 과다의 원인을 찾기로 했다. 초음파를 보며 아이가 제대로 컸는지, 어딘가 이상이 있진 않은지 확인했다. 역시나 한 아이의 신장이 좀 더 큰 것 외에 다른 이상은 없었다. 제일 중요한 뇌도 괜찮았다. 


“아이가 좀 큰 편이네요. 큰 아이들은 양수도 많은 경우가 종종 있어요. 아이들에게 별다른 문제는 보이지 않아서 걱정할 일은 없겠어요. 성민씨, 조금 더 버틸 수 있죠? 엄마만 버틸 수 있으면 조금 더 지켜봅시다. 아직 양수 감압술 할 정도는 아니에요.”


아이들은 쌍둥이 였지만 단태아만큼 컸다. 보통 쌍둥이들은 같은 주수의 단태아보다 조금 작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같은 주수의 단태아만큼 컸다. 양수가 많아 자유로이 몸을 움직일 수 있어서 그런지 태동도 많았고 자세도 잘 바꾸었다. 


일단은 다 괜찮다고 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한편으론 여전히 양수를 줄일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에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감압술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니 오늘만큼은 마음을 내려놓아도 되겠지 싶었다. 그리고 대학병원은 워낙 고위험 임신 케이스가 많아서 그런지 내 경우는 그리 심각한 케이스가 아닌듯 했다. 결국 내가 힘들어서 그렇지 아이 자체가 잘 자라지 못하고 있거나 위험한 것은 아니니까. 타인의 아픔을 위로삼으면 안되지만.. 솔직히 조금 안도가 되기도 했다. 그 중에선 내가 제일 덜 위험한 듯 보였으니까.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었지만 그땐 그랬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대학병원 전원에 만족했다. 그전에 몸무게와 양수량 강박에 시달리던 때 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했기 때문이다. 정작 나는 바뀐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힘든 말, 걱정, 한숨소리로 내 곁을 채웠을 땐 세상이 정말 불행하게 느껴졌다. 임신 초기부터 중기까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는 느낌으로 애를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원한 이후로는 모든게 다 좋다는 긍정적인 말로 채워졌다. 애를 왜이렇게 크게 키웠냐고 타박을 들었는데 전원 후에는 아이를 잘 키웠다는 칭찬을 받았다. 같은 현상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구나 싶었다. 어쩌면 인생도 비슷한 것 아닐까. 내가 처한 상황은 똑같은데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극과 극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전 06화 차라리 당뇨인게 낫겠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