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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Oct 21. 2022

내가 휠체어를 타게 될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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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 아침에 치골통으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원래도 작았던 내 행동반경은 정말로 침대와 화장실로 확 줄어들었다. 가장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게 화장실이었다. 임신 후반기에 접어들며 방광이 많이 눌려 조금만 물을 마시면 화장실을 가야했다. 수분 공급이 줄어들면 자궁 수축 호르몬의 농도가 짙어져서 자궁 수축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물을 꼭 마셔야 했다. 그러니 화장실을 자주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걷기가 힘들어지니 이것만큼 난감한 게 없었다. 수건을 깔고 그 위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수건 트위스트 신공으로 생활하길 이틀쯤, 아빠가 휠체어를 구해다 주셨다.


휠체어를 처음 보았을 땐 이제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된 것 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나의 오산이었다.


휠체어를 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 도무지 뭐 하나 쉬운게 없다. 바퀴가 있으면 다 해결될거라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바퀴는 자동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었다. 휠체어의 바퀴가 굴러 가도록 팔의 힘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리고 방향 전환을 하는 게 어려웠다. 안방을 들어가려면 90도로 회전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여서 더 쉽지 않았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방마다 문턱이 있었다. 급회전 한 후 문턱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려면 팔 힘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더욱이나 문턱 때문에 한 번에 힘을 주어 확 넘어 가야 했는데, 그 반동으로 문턱을 내려왔을 때 반동으로 치골이 더 아파왔다. 


또 휠체어를 사용하면 미끄러질 수 있어서 낙상 사고를 주의해야 했다. 혹시라도 깜박해서 휠체어에 락을 걸어두지 않고 일어난다면, 다시 앉았을 때 큰 사고가 생길 수 있다. 혹시라도 넘어져 큰 충격을 받게 되면 조산이 아니라 유산을 걱정해야 할 지도 몰랐다. 정말 유의해서 사용해야 했다.


이렇듯 휠체어 타는 것은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지만 그래도 야외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걸을수 없게 되고부터 분만날까지 꼼짝없이 집에 갇혔구나 싶었는데 휠체어가 있으니 그래도 바람을 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야외에서 휠체어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단, 다른 사람의 손에 나의 안전을 온전히 맡긴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일단 휠체어는 안전벨트가 없다. 그리고 혹여나 안전벨트가 있어 휠체어에 고정이 된다 하더라도, 밀어 주는 사람이 실수로 휠체어를 놓쳐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내 생명줄을 온전히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준 느낌은 생각보다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두번째는 휠체어를 타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다녔던 도로도 휠체어를 타니 전혀 다른 길이 되었다. 너무 요철이 많아 이동하기 어렵거나, 턱이 높아 오르내리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도로에서 내려오고 싶어도 경사 없이 턱이 뚝 끊겨있어 휠체어가 내려갈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땐 턱이 높지만 무리해서 쾅 내려오거나 돌고 돌아 길을 찾아야 했다. 


한 번도 휠체어를 탄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불편했다. 막연하게 요즘은 엘리베이터도 다 있고 휠체어용 리프트도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경솔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나마 내 휠체어를 밀어줄 사람이라도 있었지만 내가 온전히 휠체어를 움직여 다녀야 한다면 아예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세번째는 생각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신경 쓰인다는 점이었다. 물론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지만… 일단 내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끼고 불편하게 생각 한다는 것도 뜻밖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를 쳐다보는 시선도 이해는 되지만 조금 불편했다. 


배가 무척이나 부른 젊은 여자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모습이 생소하게 보여 쳐다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니 무척이나 불편했다. 그리고 점점 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보기가 힘들고, 누군가 말을 걸어 오거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볼까봐 일부러 시선을 피하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그런 내 모습에서 자괴감을 느꼈다. ‘왜 내가 이러고 있지?’ 하면서. 아픈건 죄가 아닌데 당당하지 못한 이유가 없다 생각 했었지만 막상 직접 겪어 보니 느낌이 달랐다. 어딘가 계속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면 자연스럽게 시선의 높이가 낮아진다. 이전엔 편하게 볼 수 있었던 매대를 보기가 어려워서 허리를 애써 펴서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내 위에서 나를 볼 수 있는데 나는 다른 사람을 쉽게 마주 보기 어려웠다. 참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의외로 위축 되는 느낌이었다. 


내 임신은 왜 이렇게 힘들까. 속상할 때도 많았다. 대상 잃은 원망도 많았다. 그러다 생각을 뒤집어 내가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게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나는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는 연습을 해볼 수 있었다. 이전에 한 번도 되어 보지 않았던 입장들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배운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절대 안할거라 생각했던 것들도 나에게 벌어질 수 있다는 것, 이정도면 괜찮을거라 생각한 것들이 사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너무 힘든 건 사실 더 힘든 것을 마주 하며 극복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아는 게 전부일 거라고 단언 하지 않는 것… 


나는 그 시련들이 아기를 대하기 전에 내가 갖춰야 할 것들을 배울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이런 저런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더 끈끈해졌고, 나는 아이들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내가 겪은 그 많은 시련들은 어쩌면 부족한 부모를 위해 준비된 선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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