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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Oct 25. 2022

숨막히는 쌍둥이 출산의 기억

정말로 숨이 막혔다.

나는 출산의 환상이 없었다. 이미 많은 출산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론 그렇다. 자연 분만은 인간도 결국 동물임을 깨닫게 하고, 제왕절개는 어딘가 인위적인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탄생의 순간은 어딘가 뭉클해지는 감정이 든다. 우리도 결국 생명이기 때문일까? 출산에 대한 환상을 한 꺼풀 벗기고 출산 장면을 바라보면 확실히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데, 그 장면에서 느끼는 감정은 분명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가리지 않고 말이다. 아기가 세상 밖으로 태어난 순간, 그리고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은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들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벅찬 감정 말이다. 영상으로 보든 현장에서 보든 한결같이 참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출산이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컸다. 다른 사람의 출산 장면만 봐도 이토록 감동적인데, 내가 당사자라면 얼마나 특별한 기분이 들까 싶었다. 그리고 너무 감동받아서 주체 못하고 펑펑 울어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나는 제왕절개 예정이라 진통도 없을테니 얼마나 더 그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컸다. 그리고 그 기대는 마취가 시작되며 산산히 부서졌다.


하반신 마취를 위해 옆으로 누워 몸을 한껏 웅크리는 새우등 자세를 해야 했다. 웅크리는 자세로 척추 사이 공간을 펴주고 그 공간에 바늘을 꽂아 마취제를 주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가 너무 커서 웅크려지지가 않았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웅크려 보았으나 내 자세가 문제인건지 담당 마취과 의사의 내공이 부족한건지 바늘을 다섯번 넘게 찔렸다. 바늘도 무서웠지만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한 아이가 답답했는지 엄청나게 움직이는게 느껴졌다. 온 몸 장기가 차이는 느낌, 그리고 갈비뼈를 잔뜩 밀어대는 느낌이 너무 아파서 정말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최대한 빨리 마취에 성공하고 다시 돌아눕고 싶은데 마취는 계속 길어졌다.


하반신 마취가 잘 안되면 수면마취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번에 딱 마지막이라는 얘기가 들리자마자 마취에 성공했다. 마취가 되면 한 쪽 다리부터 어딘가 따뜻한 느낌이 든다. 이어서 둔감해지는 느낌이다. 그러고 나면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며, 잡아당기고 꼬집어도 감각이 없어진다.


담당 교수가 수술실에 들어왔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제왕절개 수술을 직접 참관한 적이 있어 대략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어서 직접 볼 순 없지만 어느 단계쯤이겠구나 추측할 수 있었다. 수술이 시작된 듯 했다. 감각은 없었지만 아마 피부부터 절개하며 들어가고 있었을 터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사실 마취를 한 이후로 숨쉬기가 조금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강도가 더 세졌다. 누군가 내 목을 틀어 쥐고 있는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공포심인지 인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 아름답게 한 줄기의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얼굴이 아니라 눈물과 콧물로 잔뜩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정말로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 메스꺼워졌다. 그런데 내 느낌과는 별개로 다른 의료진들의 반응은 평온했다. 힘들다고 해도 갸웃거리며 “괜찮으신데… 메스꺼움 가라앉히는 약을 좀 더 드릴게요.”하고 약물을 주입할 뿐이었다. 아마도 내 감각과는 별개로 내 몸은 별 문제가 없었나 보다. 기계도 조용했다. 의료진들도 아기가 나오길 기다리는 듯 조용히 집중하고 있었다. 생과 사의 기로에 놓인 듯한 고통을 느끼는 건 그 장소에서 나 밖에 없었던 듯 하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때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아기를 꺼내느라 생기는 진동이었다. 이윽고 아이의 힘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뭉클했다. 첫째가 나왔구나. 정말 반가워. 잘 우는거 보니 다행이다. 좀더 감상에 젖어있고 싶었는데 목을 죄이는 감각과 닦지 못한 눈물이 눈가에 가득이라 아주 불편했다. 아기에겐 미안했지만 이 순간이 어서 빨리 끝났으면 싶었다. 이어서 울음소리가 하나 더 들렸다. 둘째였다. 두 울음소리가 겹치는 것을 들으니 이제 정말로 안도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반가운 소식은 드디어 몇개월 만에 가슴을 누르는 답답한 감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몇 키로가 사라진 걸까. 몇개월간 공간이 없어서 제대로 펴지지 못했던 폐가 드디어 한껏 펼쳐진 느낌이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문제는 마취가 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회복실에서 30분 정도면 마취가 깬다고 하는데 왜인지 나는 한시간이 넘도록 마취가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꼬집어도 다리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자 회복실 간호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대신 목을 죄이던 감각은 조금씩 풀려갔다. 아마도 마취가 과하게 들었던 것 같다. 의사가 오더니 의식도 명료하고 컨디션도 괜찮으니 마취가 다 풀리지 않았지만 병동으로 가자고 했다. 


몇 시간 만에 만난 남편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기들 봤어? 어때? 울 정도로 감동적이야?”

“아기들은 모르겠고… 나는 너를 잃는 줄 알았어.”


아기들은 빨리 나왔는데 내가 나오지 않아서 걱정이 컸다고 했다. 보통은 30분이면 나오는데 한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으니 걱정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모두에게 출산은 큰 이벤트고 목숨 걸고 하는 일이지만, 쌍둥이 산모는 더 그렇다. 


가장 걱정했던 건 과다출혈이었다. 쌍둥이 산모는 그동안 자궁이 너무 커져있었던 탓에 제대로 수축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과다출혈로 이어져 응급상황을 맞이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남편에게도 최악의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일러두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기만 나오고 한시간 째 내가 돌아오지 않으니 남편도 얼마나 무서웠을까.


둘째는 컨디션은 너무 좋았지만 추가 검진을 위해 중환자실로 가기로 미리 얘기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첫째를 신생아실에서 만날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지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첫째도 호흡이 힘들어져 중환자실로 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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