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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Oct 25. 2022

임신 34주, 우리 이제 만나는거니?

그 날은 평소와 달랐다. 34주쯤 되면 배뭉침이나 잔잔한 자궁수축은 흔하게 찾아오지만 그날의 그것은 조금 달랐다. 수축이 생각보다 잦았고 또 강했기 때문이다. 진통 어플에 기록을 하자 병원에 어서 가라는 알림이 떴다. 


보통 출산을 해도 괜찮은 시기를 임신 37주 이후로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자궁 수축이 오게 되면 라보파라는 자궁 수축 억제제를 사용한다. 하지만 라보파는 손떨림이나 숨 차는 증상 같은 부작용이 존재한다. 라보파가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심해 사용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트랙토실이라는 약물을 사용한다. 이 트랙토실은 비급여 항목이라 돈이 무척이나 많이 든다. 자궁 수축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약물을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투약을 중단했을 때 반동 수축이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 자궁 수축으로 입원하게 되면 장기 입원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도 들었다. 실제로도 내가 만났던 쌍둥이 산모들은 거의 한, 두달의 입원 경험이 있었다. 인터넷에 쌍둥이 임신 후기를 찾아보아도 빠지지 않는 게 자궁수축과 입원 이야기였다. 거의 한 번씩은 겪는거구나 싶어 나 역시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병원에서는 임신 34주부터는 자궁수축 억제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34주부터는 아기의 폐가 성숙하는 시기라 분만을 해도 자가 호흡이 가능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응급실을 갈까 고민이 되었다. 그 날은 딱 34주가 되는 날이어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도 해줄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간이 새벽 시간이었고 내가 다니던 대학병원까지는 거리가 꽤 되었다. 그리고 응급실 비용이 얼마나 들지도 걱정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 때 분만을 할 수도 있으니 병원에 가 있는게 안전했을텐데 그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싶었다. 그리고 혹여나 진행이 되더라도 초산이니 그리 빠르진 않을거라는 짐작도 있었다. 진통 간격이 아직 불규칙하고 길어서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다 밤을 꼴딱 새었다.


아침에 선잠을 살짝 자고 병원에 전화를 했다. 진료 예정일은 아니지만 밤사이 수축이 있었다 하니 바로 오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해 바로 수축 검사를 했다. 아침에는 꽤 괜찮아져서 잔수축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일반적이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간호사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자궁 수축이 꽤 있다고 했다. 이어서 바로 교수님 진료실로 들어갔다. 평소와 달리 교수님이 장갑을 끼고 계셨다. 그리고는 내진을 하자고 하셨다.


오마이갓, 내진이라니. 내진은 직접 질을 통해 손을 넣어 자궁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내진은 보통 분만 전에 시행하는데, 자궁 경부가 부드러워졌는지, 얼마나 벌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한 행위이다. 난생 첫 내진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 아프고 무서웠다. 그런데 결과는 더 무서웠다. 자궁이 이미 1cm 열려있다는 것이다. 오마이갓… 오늘 분만할 수도 있겠다며 바로 입원을 하라고 했다.


입원 수속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원래 진행하기로 했던 막달 검사는 모두 입원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원래는 검사실을 순서대로 다니며 내가 받으러 가야했지만 입원을 해서인지 조산 가능성이 있어서인지 모두 자리로 와주셨다. 덕분에 편하게 검사를 할 수 있었다.


34주에도 분만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많이 슬프지는 않았다. 30주를 넘긴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만일을 대비한 폐 성숙 주사도 맞았다. 이미 몸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내심 반갑기도 했고, 그래도 아직은 조금 더 버틸 수 있는데 싶어 아쉽기도 했다. 어찌됐든 더이상 이 분만에 나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조금 걱정이 되었던건 분만 방식이었다. 쌍둥이는 보통 제왕절개를 하는 게 보통이다. 쌍둥이 자연분만을 하는 의사가 많지 않다. 그리고 나도 자연분만은 자신이 없었다. 쌍둥이는 자연분만에 변수가 많아, 결국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는 모두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가 먼저 나오고 둘째가 이어서 바로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둘째가 다시 올라간다던지, 빈 공간에 누워버린다던지, 자세를 바꿔 돌면 자연분만이 어렵다. 그러면 결국 제왕절개를 하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진통은 진통대로 다 느끼고서 첫째는 자연분만, 둘째는 제왕절개라니. 그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다. 내가 어떤 상황이 될 지 모르기에 나도 그냥 제왕절개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는 쌍둥이지만 머리가 둘 다 내려와 있으면 자연분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전 진료부터 아이들의 체위를 계속 확인을 했는데 2주마다 후둥이의 자세가 바뀌는 것이었다. 30주에는 정방향(머리가 밑, 자연분만 가능), 32주에는 역방향(머리가 위, 자연분만 불가능)이었다. 그러고 34주에 입원하며 초음파를 확인하니 다시 머리가 밑으로 와있었다. 자연분만이 가능한 케이스가 된 것이다. 아마 이대로 분만이 진행되면 자연분만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를 못했는데… 드디어 분만을 한다는 기대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불안함이 느껴졌다.


분만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실감을 정말 크게 하게 된 건 ‘서류’ 때문이었다. 분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사인을 받아두었는데, 서류 양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거의 서류 뭉텅이 수준으로 많은 양이었다. 거기엔 무서운 말도 많이 적혀있었다. 분만 과정에서 산모와 아기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내용과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서류였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하는 데에 동의한다는 동의서까지. 심지어 쌍둥이라 서류량이 두 배였다. 서류의 무게는 출산의 무게였다. 


그렇게 입원을 3일 정도 했을 때였다. 분만도 뭣모를 때 후다닥 진행되어야지 그쯤 되니 두려움이 점점 커져갔다. 내가 사용한 병실은 6인실이었고 거의 커튼을 치고 지내던 병실이었다. 서로 잘 모르지만 생활공간을 공유하다보니 서로의 상황에 대해 약간은 유추가 가능했다. 양수가 새서 안정하고 있는 산모도 있었고 나처럼 쌍둥이 산모도 있었다. 자궁내 성장 지연으로 이제 버티는 것 보다 분만하는게 낫다며 설득하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 날 밤에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일 터다. 건강하게 아이를 품어내고 건강하게 출산하는 것. 나도 그랬지만 다들 여태까지 얼마나 애를 썼을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모두 건강한 아이를 안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의 자궁 수축은 다행히 그 이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약물 없이 수액만으로 수축이 멎기 시작한 것이다. 약 4일 정도 입원하고 퇴원해도 좋다는 처방이 내려졌다. 아무래도 아기들은 아직 나오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몸은 무척 힘들었지만 그래도 더 힘을 낼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했다. 앞으로 3주 남았으니 조금만 더 버티자는 마음으로 기쁘게 퇴원했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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