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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Oct 21. 2022

하루 아침에 걸을 수 없게 되었다.

 26주에 대학병원으로 전원할 때 쯔음, 나는 거의 굴러다니고 있었다. 똑바로 내 의지대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어 거의 굴러서야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똑바로 누우면 숨이 찼고, 누군가 내 목을 옥죄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바로 누웠을 때 자궁이 대동맥을 눌러서 그렇단다. 산소 공급이 줄어들면 실제로도 목이 막히는 느낌이 드는지 그 날 처음 알았다. 눈이 핑핑 돌고 목이 조이듯 막혀 어찌 할 줄 모르는 내가 어딘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남편이 간신히 일으켜 세워 살아났다. 진심으로 무서웠다. 이렇게 까지 된다고? 그 이후로 똑바로 눕는 일은 피했다.  


그래서 옆으로 누워있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옆으로 누워도 배가 뭉치기 시작했다. 또 옆으로 누웠을 때 마냥 편한 게 아니라 배가 축 떨어진 느낌이 들면서 배가 너무 아팠다. 한동안은 바디필로우를 끼고 살았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한 순간도 편안히 있을 수가 없었다. 


서있으면 다리가 저렸고(혈액순환이 막힌 느낌) 앉으면 배가 너무 처져서 경부 길이가 짧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치골결합, 그러니까 두 다리 사이가 밑이 빠지듯이 얼얼하게 아픈 느낌이랄까. 그리고 누우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바로 일어나기도 어려웠다. 옆으로 누우면 배가 아팠다. 몸을 이렇게 두어도 저렇게 두어도 불편하고 불편했다. 하루라도 편안하게 있고 싶다는 게 당시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앉은 자세가 숨을 쉬기에 가장 편했지만 조산할 가능성이 가장 큰 자세였다. 그렇지만 모든 자세가 너무나도 불편해서 계속 자세를 바꾸며 버티는 일상이었다. 그런가 하면 배는 본격적으로 트기 시작해 쭉쭉 갈라졌다. 미친듯이 가려웠다. 살이 찢어지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차라리 시원하게 찢어지고 더이상 가렵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는데 다리 사이가 찢어지게 아팠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제자리에 서있는 것, 의자에 앉아있다 일어나는 것 모두 가능했지만, 다리 한쪽을 별개로 들 수가 없었다. 따라서 걸을 수도 없었다. 


치골결합의 정렬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엄청나게 아팠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는데 화장실을 가고 싶었던 나는 방법을 궁리했다. 배가 남산만하게 나와있어 남편에게 업힐 수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안겨갈 수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열심히 궁리한 끝에 한가지 방법을 찾았다. 바닥에 수건을 깔고 그 위에 서서 트위스트를 추듯 조금씩 조금씩 몸을 틀어 움직였다. 미끄러질 위험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리를 통으로 움직이며 이동할 방법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병원 진료 가는 걸 도와주러 오신 친정엄마는 통탄해하셨다. 엄마는 ‘임신 그거 남들 다 멀쩡하게 다 하는 건데 너라고 무슨 문제가 있겠냐, 할 수 있어!’고 항상 큰 소리로 격려해주셨는데, 엄마 눈에도 딸의 모습이 말이 안된다 생각하셨나 보다. 


하필 내가 다니던 대학병원은 주차장이 몹시 난해하게 생긴 구조였다. 위치가 산 중턱에 있어서 더 그랬다. 그래서 나는 병원 앞에 먼저 내려서 로비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자동차에서 내리고 병원 문 앞까지는 정말 여섯걸음도 채 안되었다. 그정도는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차가 계속 오는데 서있을 수도 없어 조심스레 발을 내딛어 보았다. 


한 번 겪어서 아는 고통이라 더 무서웠다. 정말 너무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소리를 더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런걸 신경쓸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걸음을 내딛는게 너무나 두려웠다. 무게중심이 다른 발로 옮겨가는 순간 정말 가랑이가 찢어져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을 삼키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세 걸음 쯤 걸었을까,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새댁!! 아이고 어떡해! 애기가 나오려고 해요?”

“아, 아니요… 그런게 아니라…”


28주지만 37주 임산부만큼 부른 내 배와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오해하신 아주머니가 주위에 소리를 쳐 도움을 청하려고 하셨다. 난 분만장으로 갈 사람이 아닌데… 바로 그 때, 직원이 휠체어를 가져다 주었다. 분만장으로 갈까요 묻기에 치골통으로 너무 아파서 그런거고 진통이 온 것은 아니라고 설명드렸다. 아주머니는 진통이 아닌데 그리 아플수가 있나 하는 혼잣말과 함께 사라지셨다. 짧지만 정말 강렬한 순간이었다. 느낀 고통도 머리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도..


그러고 나니 엄마가 주차를 마치고 돌아오셨다. 그 멀고 먼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돌아올 동안 나는 로비는 커녕 입구에도 들어서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직원의 센스 덕분에 휠체어를 탈 수 있어서 그 다음부터는 이동이 아주 쉬워졌다. 살면서 딸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일이 생길 줄 몰랐던 엄마의 한숨 소리가 계속 들리긴 했지만 말이다.


진료실로 들어서자마자 엄마의 질문이 총알처럼 빗발쳤다.


  “선생님!! 아니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이렇다는데 이럴 수가 있나요? 이렇게 아파하는 건 처음보는데 이거 정말 괜찮은거에요? 어떻게 더 해줄 수 있는건 없나요? 너무 황당하고 속상해요 정말!”


  “네, 많이 놀라셨죠. 이런 경우 있어요. 아기가 좀 내려왔나본데요. 한 번 볼게요.”


첫째의 위치가 많이 내려왔다고 했다. 자궁 입구에 머리가 깊게 내려와 더 아프다고 느낄거라고 했다.


  “근데 보통 내려와도 묵직하다 정도로 느끼지 이렇게 통증을 심하게 느끼고 걷기 힘들어 하는 경우는 드물죠. 쌍둥이라 그래요.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아기 무게에 양수에 태반까지… 근육도 인대도 많이 늘어났을거에요.”


결과는 치골통이었다. 두 개의 치골이 인대로 단단히 결합을 이루고 있는데, 아기가 내려오고 무게 자체가 무거워서 치골결합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대가 늘어나니 통증을 느낄 수밖에. 걸을 수 없고 너무 힘들었지만, 임신중 생길 수 있는 정상적인 증상이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엄마는 한숨을 푹푹 쉬셨다. 나보다 더 속상해하시니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어리광을 부리기도 민망스러울 정도로 엄마는 무척 속상해보이셨다. 평소 엄마는 내가 힘들때마다 힘든 것을 공감해주기 보단 더 강해지라고 강하게 말씀하시는 편이어서, 그런 엄마 반응이 더 생소하게 느껴졌다. 


내 몸보다 아깝고 귀한게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이전엔 그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내 어머니의 표현방식은 좀 달랐기 때문이다. 부둥부둥 귀하고 예쁜 보배처럼 대하기보단 내가 더 강한 어른이 되도록 표현하시곤 했다. 그런데 당신 몸보다 더 속상해하는 것을 보니 내 생각보다 더 나를 많이 사랑하셨구나 싶었다. (그리고 자식을 지금까지 키워본 경험으로는 엄마가 그 때 얼마나 속상하셨을 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가 아니었을까.그 한숨은 그때의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전 07화 대학병원 전원,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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