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민 Oct 25. 2022

37주 품어 낳은 쌍둥이가 중환자실로 갔다.

이전글>>

https://brunch.co.kr/@78945612396/145


힘들게 37주까지 버티며 아기들을 품었지만 결국 중환자실로 갔다. 첫째는 호흡이 힘들어져 갔고, 둘째는 확인할 부분이 있어 추가 검사를 위해 중환자실로 갔다.


사실 둘 다 중환자실로 갔다는 사실이 아주 걱정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는 의외로 덤덤했다. 나 대신 더 잘 봐줄 고급 인력들이 잔뜩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아기들을 못보는 게 아쉬웠지만 건강이 더 중요하니 참을 수 있었다. 검사를 통해 어쩌면 모르고 지나갔을 문제를 찾아낼 수도 있으니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나는 아이들을 많이 믿었다. 잘 지낼 수 있는 힘이 분명히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주 나쁜 문제로 중환자실에 간 게 아니어서 염려를 내려놓은 부분도 있었다.


입원중인 산모는 중환자실 면회를 갈 수가 없어서 퇴원하는 날이 되어서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사진만 보았지 한 번도 실물을 본 적이 없어 무척이나 설렜다. 그냥 사진이랑 똑같겠지 하고 들뜬 마음을 애써 가라앉혀 보기도 했지만 새어 나오는 설렘을 숨기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아기들을 실제로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아기들이 생각보다 너무나 작았던 것이다. 정말로,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작았다. 얼굴은 내 주먹보다도 더 작았고 손바닥은 엄지손톱 두개 정도의 크기였다. 세상에, 나는 이렇게 작은 아기들을 혼자 두고 있었던 건가? 물론 아기들은 의료진과 함께였으니 혼자도 아니었고 나만의 판단으로 중환자실에 간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다 괜찮을거라고 나 좋을대로 생각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안일했는지 뒤늦게 죄책감을 느꼈다. 아기들이 조금은 더 클 줄 알았다. 

이렇게 작을 줄은 몰랐다. 


넷이서 돌아갈 줄 알았던 차를 여전히 둘이 탔다. 두 개나 준비해둔 바구니 카시트는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도로가 그날 따라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내가 왜 이럴까. 나에 대한 원망스러움과 불안함이 커져갔다. 


‘아이들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으면 어떡하지?’

‘퇴원이 얼마나 더 길어질까?’

‘그렇게 힘들게 지켜서 37주 채워 낳았는데, 왜 둘다 내 품에 없을 수가 있지?’

‘아니야… 이런 생각 지금 해서 뭐하겠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게 뭐지?’


엄밀히 따지면 아이들의 컨디션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건 없었다. 걱정이 되는건 너무 당연했지만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아이들이 퇴원하는 날까지 최대한 몸 조리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가슴도 젖이 차오르기 시작해서 딱딱해져갔다. 시간마다 유축을 해야 하는데 당장 유축기가 없었다. 병원과 조리원에는 준비된 유축기가 있고, 그 이후에는 수유를 어떻게 할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중환자실로 가면서 조리원에 함께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기다렸다 아이들과 함께 조리원으로 가고 싶었지만 유축기 때문에 조리원으로 가야만 했다.


그렇게 애써 씩씩한 마음으로 조리원에 들어갔다. 아이가 없을 때 최대한 조리에 집중하겠다는 마음을 안은채로. 짐을 풀고 설명을 듣고 예약해둔 가슴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가슴이 뭉치기 시작했는데 아직 유선이 덜 풀렸는지 잘 나오지가 않아서 빨리 마사지를 받고 싶었다. 그런데 가슴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수유실 구석에 있었다. 그런데 수유실 문을 열고 한 걸음씩 걷는 발걸음이 왜 그리도 무거웠을까. 수유실에서는 많은 엄마들이 저마다 아이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젖을 물리고 있었다. 너무 당연했지만 나에게는 당연하지 못했던 장면들이었다. 또 다시 가슴이 찌르르 아파왔다.


애써 울음을 삼키고 마사지 선생님과 인사를 했다. 그 분은 베테랑 답게 내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셨는지 조심스레 이것 저것 물어보셨다. 결국 울음을 삼키는 데 실패한 내가 훌쩍이며 사정을 이야기하니, 얼마나 마음이 힘드냐며 안타까워하셨다. 한참 마음을 털어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사지를 받으며 가슴도 한결 가벼워졌다. 


내 이야기를 들은 마사지 선생님이 원장님께 이야기를 전했고, 감사하게도 유축기를 대여해 줄테니 아기가 퇴원하면 다시 함께 오는 게 어떠냐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그 길로 다시 짐을 싸 조리원을 퇴소했다. 친정에서 몸조리를 하다 아기가 퇴원하면 함께 들어가기로 하고 말이다.

이전 11화 숨막히는 쌍둥이 출산의 기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