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절대로 간호학과를 선택하지 않았을거다.
학과 공부에 소홀하지 않고 4년간 쉼없이 열심히 달려온 결과는 처참했다.
원하던 대학병원, 그리고 원하는 과에 입사했지만 결과는 3개월만의 퇴사였다.
나는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했다.
내 몫을 제대로 해내는 시간이 아니었으니, 그건 근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배우고 혼나는 시간이었다.
퇴근하고 나면 다음날 준비를 위해 추가 공부를 하느라 쉴 수 없었다.
새벽 두시에 잠들고 여섯시에 일어나는 생활이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누군가 뒷덜미를 잡아채는 듯한 느낌에 30분 단위로 잠을 깼다.
그렇게 일어날 땐 항상 심장이 쿵쾅거렸다.
3개월간 4kg가 빠졌다.
긴장 상태에서 음식을 먹으면 곧잘 체해서 뭘 먹을 수가 없었다.
출근을 할 때마다, 갑옷 하나 입지 않은 맨 몸으로 화살을 맞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오늘도 온 몸 가득히 화살을 맞으러 가는구나.
그렇지만 나는 도망칠 수가 없어.
정말 도망가고 싶다.
도살장 끌려가는 소 마냥 그렇게 3개월을 다녔다.
신기한건 나의 마음 상태 변화였다.
첫 달엔 누군가 나에게 모진말을 하고 괴롭히면 ‘저 사람은 왜 그럴까’ 생각했다.
다음달이 되니 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왜 이럴까’로 바뀌었다.
모든 게 다 내 탓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었다.
내가 무언가 문제가 있어 이렇게 혼나고 또 혼나는 것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건데 그걸 인정하는게 더 싫었다.
제일 듣기 싫은 말은 “너 공부 안하지.”, “너 잘 할 마음 없지.”였다.
매일 하는데도 그런 얘기를 들으니 참 억울했다.
신기한건 그런 싫은 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 악이 생겼다.
정말로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졌다.
울면서 더 힘내보려던 내가 정말 그 말처럼 공부도 안하고 잘 할 마음이 없어지자 두려워졌다.
이 일을 정말로 진심으로 싫어하게 될까봐.
아이러니 하게도 그만둘 각오로 텅 빈 마음과 동태눈깔을 하고서 출근하자 괴롭힘이 줄었다.
잘한다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그게 더 화가 났다.
여태 내가 들인 노력보다 나의 태도가 그들에게 더 영향을 주었던 것일까.
면담을 하러 갔다.
그리고 붙잡혔다.
그런데 나를 붙잡으면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남아있던 희망이 우수수 떨어졌다.
“쌤 말고도 다른 사람도 다 힘들어. 연차가 쌓여도 힘들어. 다들 그렇게 살아.”
나는 그렇게 살고싶지 않았다.
연차가 쌓이면 나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차가 쌓여도 힘들다니.
다들 그렇게 산다니.
나는 그렇게 살고싶지 않았다.
그 길로 퇴사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많은 신규들이 그만뒀다.
나는 아닐줄 알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러했다.
나는 강철 멘탈이 아니었다.
나는 입사부터 퇴사, 그 이후까지 나는 나의 자존감과 자아효능감이 완전히 박살나는 경험을 했다.
더 곤란한건 퇴사 이후에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이 직장이 나와 맞지 않다를 넘어서 이 직업과 맞지 않고, 내가 이 직업을 너무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니었다.
나는 잘못된 길을 너무 멀리 와버렸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사실 나는 하기 싫은 일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대학생활도 실습시간도 잘 견뎌왔다.
그래서 더 오랫동안 나의 욕구를 누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을 땐 이미 너무 멀리 와있었다.
다른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었다.
너무 절망적이었다.
나는 왜 그리 싫은 일을 꾹꾹 참으며 살았을까.
하고 싶은 일을 찾기에도 모자란 시간인데.
너무나 바빴던 간호학과 생활이라 그저 눈앞에 보이는 수업과 시험들만 쳐내며 살았다.
그리고 잘 살고 있는거라고 착각했다.
다른 관심사가 생겨도 학과공부가 우선이라 생각했다.
뒤돌아 생각하면 그게 제일 발목을 잡는 일이었다.
할 줄 아는게 학과 공부밖에 없다는 거.
솔직히 나는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더 파볼 생각을 안했다.
성공하고 또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에.
대학병원에 취업하고 적응하고 인정받는 길이 가장 쉬운 길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 적성이나 욕구는 눌러두었다.
다 내 잘못이다.
그렇게 나는 가진게 면허뿐인 사람이 되었다.
학과 공부에 충실했던 덕분에 괜찮은 학점과 대학병원 취업에 성공하고 졸업했지만 그뿐이었다.
졸업 이후의 삶은 계급장 떼고 붙는 현실이었다.
견뎌서 살아남는게 성공이었다.
이 직장에서 얻은건
나는 강철멘탈이 아니라는 것과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사실
힘을 얻는 것도 잃는 것도 모두 사람에게서 기인한다는 점이었다
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럼 나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깊어져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