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가 제비꽃
4월에 들어서면서 주말텃밭의 풀들이 쑥쑥 자란다. 씨앗을 심은 채소들은 추위에 얼굴을 잘 내밀지 않는데 뿌리지도 않은 잡초들은 여기저기 푸른 초록으로 인사한다.
냉이와 꽃다지, 봄맞이, 민들레, 산괴불주머니, 애기똥풀...
호두나무 산에는 각시붓꽃과 참취, 두릅이 아우성이다.
내 사랑 토끼풀, 질경이도 얼굴을 내밀고 덩굴성 잡초들이 다 함께 합창하듯 돋아난다. 환삼덩굴이 선두에 있고 새모래덩굴과 고마리, 꽈리도 순을 내민다.
노란 수선화가 지려고 하니 튤립과 무스카리가 꽃대를 올린다. 여러 해 전에 심은 튤립은 처음처럼 꽃대를 길게 올리지 못하고 있다.
겨울에 죽었구나 하고 실망했던 클레마티스(으아리과 원예종)가 새순을 다글다글 올린다. 너무 기특하다.
겨울을 이겨낸 다년생 채소인 딸기는 꽃대를 올리고 아스파라거스는 작년 줄기 사이로 새순을 올린다.
4월의 풀. 아니 잡초는 제비꽃이다. 이름이 제비꽃이니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즈음 피는 꽃이라 알고 있는데 꽃 모양이 제비를 닮았다는 설도 있다. 사실 다른 풀들과 마찬가지로 제비꽃을 잡초라 부르기는 미안하다. 빛깔과 모양이 너무 아름답다. 작년에 제비꽃을 텃밭에 한 뿌리 이식한 것 같은데 올해 텃밭에 지천으로 피었다. 왜 그럴까?
제비꽃은 그 종류가 너무 많아 구별이 정말 어려운 풀이다. 흔히 보는 보라색의 제비꽃, 흰색의 흰제비꽃, 흰색이지만 크고 꽃자루가 갈색인 흰젖제비꽃, 잎이 갈라진 흰색의 남산제비꽃, 팬지라 불리는 삼색제비꽃, 잎이 종지처럼 생긴 미국제비꽃(종지나물). 이외에도 왜제비꽃, 털제비꽃, 아욱제비꽃, 둥근털제비꽃, 고깔제비꽃, 노랑제비꽃 등이 있다고... 종류가 너무 많다.
제비꽃은 제비꽃과 제비꽃속으로 흔히 말하는 속명이 viola이며 보라색을 일컫는 바이올렛도 제비꽃에서 나왔다. 공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팬지나 비올라도 제비꽃속이다. 이러한 제비꽃은 열매의 꼬투리를 열고 힘껏 제치며 멀리 종자를 퍼뜨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개미도 종자를 퍼뜨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제비꽃의 씨앗에는 개미가 좋아하는 엘라이오좀이라는 젤리가 있는데 맛난 젤리를 먹고 씨앗을 개미집 앞에다 버린다. 텃밭의 개미는 제비꽃의 씨앗에서 영양분을 얻고 제비꽃은 개미 덕분에 여기저기 씨앗을 퍼뜨리는 것이다. 개미와 제비꽃의 공생이다.
제비꽃은 꽃 모양이 독특한데 5개의 꽃잎 끝에 기다란 꿀주머니가 있다. 아래 가운데 꽃잎에만 있는 화려한 줄무늬로 곤충을 유혹해서 꿀을 주고, 벌이나 다른 곤충은 꽃 속의 암술머리에 꽃가루를 묻혀 수분을 시켜주는 것이다. 벌과 제비꽃의 공생이다.
똑똑한 제비꽃이 키 큰 식물에 덮이고 곤충이 줄어드는 시기가 오면 꽃잎을 닫고 스스로 자가수분을 한다. 이것을 폐쇄화라고 하는데 닭의 장풀도 그러하다.
20센티 밖에 안 되는 작은 제비꽃이 개미나 벌과 같은 곤충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 열악한 환경에도 자손을 퍼뜨리는 것을 보면 우리네는 과연 어떻게 사는가 돌아보게 된다.
이번 주에는 흰제비꽃을 옮겨 심었다. 올해도 개미가 열심히 일을 해서 흰제비꽃을 키워주겠지. 꽃가루를 옮겨주는 벌도, 씨앗을 옮겨주는 개미도. 자가수분하는 제비꽃도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존재다. 나의 힘든 일을 도와주는 친구다. 고맙다.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