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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 Aug 13. 2024

연고 없는 곳에서 살아내기란

모든 이주민들에 대한 경배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서 이미그레이션을 지나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세상 어디에 떨어져도 큰 걱정이 없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연고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옛날, 수 십 년 전에는 대체 어떻게들 이민을 왔던 것일까? 그 용기와 두려움이 감히 가늠하기도 어렵다.


보통 주변에 꼭 한 두 명씩은 미국 사는 이모, 호주 사는 삼촌이 있던데 나는 사돈의 팔촌까지 아무리 탈탈 털어도 한 명도 없다. 유학을 다녀온 친척들은 몇 명 있지만 이민을 간 가족은 없었기에 가까운 곳에서 개인적 이민사를 들을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늘 궁금했고, 약간은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진다. 대체 어떻게, 어떤 계기로 사람이 자신의 뿌리를 통째로 퍼다가 수백만 킬로 떨어진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나는 이 아이디어에 늘 매료되곤 한다. 


아무튼 나의 첫 일정은 시드니에 도착한 후 일주일 동안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예약해 둔 숙소는 참 예뻤고, 혼자 쓰기엔 다소 쓸쓸하게 느껴질 정도로 컸다. 시드니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이라는 더블 베이. 또 언제 이런 곳에 묵어보겠나 싶어서 굳이 찾아와 봤다.



여행 4일 차. 혼자 하는 여행이 슬슬 외롭게 느껴질 때쯤 일부러 한인투어를 예약했다. 투어차량에서 옆 자리에 앉은 여성분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분은 과거에 호주에서 유학생활 경험이 있으셨고, 현재 시드니에 거주 중인 조카를 만나러 언니와 함께 와서 여행을 하시는 중이라고 했다. 홀로 투어에 참여한 나를 점심까지 사주시며 살뜰히 챙겨주시기에 나중에는 거의 사랑에 빠질 뻔했다.


투어 내내 이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었는데, 내가 이민자들에 대한 호기심을 내비치자 아주 전문적으로 호주 이민사에 대한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도 접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기에 너무 흥미롭고 재밌어서 시간 흐르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분은 한국의 모 대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님으로, 놀랍게도 전문분야가 무려 호주 한인이민사였다. 투어가 끝나갈 때쯤 나는 이미 이분과 사랑에 빠진 후였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사람이 외로우면 이렇게 된다).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에 호주생활이 외롭고 힘들 때면 언제든 연락을 하라고 연락처를 주셔서 소중히 받아 들고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작별인사를 했다. 


때론 외로움의 끝에서 선물 같은 인연이 찾아오곤 한다.


이만저만한 가족 내 역동으로 엄마아빠와 분화가 되지 못해 아주 호되게 이별신고식을 치르고 있던 내게, 이분과의 짧은 만남은 너무나 큰 위안이 되었다. 헤어지기 전 이분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조언이 있다. "저도 처음엔 연고 하나 없는 호주에 와서 참 막막했어요. 하지만 호주에선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지셔야 해요. 어디서나 당당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시면서 지내세요."


나중에 이분께서 쓰신 호주 한인이민사에 대한 논문을 읽으며, 참으로 다양한 각자의 사정으로 이민을 떠나오게 된 이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이민사는 최초로 용기를 낸 자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아무런 연고 없이 낯선 땅에 도착해 새로이 삶의 터전을 일궈나간다. 현재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을 그 모든 이주민들의 용기에 경배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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