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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 Aug 13. 2024

이렇게까지 슬픈 게 맞나요?

분화가 덜 된 가족에게 이별이란

호주로 떠나기 전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넌 지금 엄마아빠를 버리고 떠나는 거야"


늙은 부모를 두고, 나 혼자 좋자고 홀랑 떠나가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근원적 죄책감이 나를 휩싸고 돌았다.

왜 죄책감이냐 하면, 그러니까 사실 마음 한구석에선 이 생각이 뚜렷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멀리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부모에게 갖는 애증의 감정이 한국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다. 아주 잠시만이라도 이 모든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었고, 그럴 수 있는 가장 합법적이면서도 간편한 방법이 워홀이었다. 


우리 엄마아빠는 나이가 많다. 어릴 적부터 우리 부모님은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고, 엄마는 늘 어딘가가 아팠다. 언니가 결혼한 이후 셋이 살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님이 나에게 정서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많이 의지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고작 이십 대 초중반, 스스로 아직 너무 어리고 미숙하다고 느끼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아빠는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때에는 내 삶이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에 꽉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처럼 느껴지던 나날들도 있었다. 


이곳에 다 쓸 수 없는 이만저만한 사정으로 우리 세 가족은 여러 풍파를 겪어 왔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이 너무 공허했고, 일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절실했다. 그래서 출국일이 다가오면 마냥 즐거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전날 밤 문득 내가 엄마아빠를 버리고 떠난다는 생각이 스치자 그 생각에서 벗어 나올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사실이니까. 죄책감에 눈물만 줄줄 흘리며 날밤을 꼬박 새웠다.


출국 당일에 아빠는 공항에 함께 가지도 못했다. 공항에 가면서 엄마는 말했다. 아빠가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해서 공항에 차마 갈 수가 없대. 말 끝에 덧붙였다. 부모가 못해줘서 너가 떠나는 것 같아. 안 갔으면 좋겠는데, 그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네. 그동안 너 마음이 어땠을지 아니까. 그렇게 나와 엄마는 공항에서 내내 울기만 했다.


비행기를 타면서 이렇게까지 슬퍼본 적이 없었다. 엄마, 언니와 헤어지고 출국장으로 들어와 게이트 앞에 앉아서 내내 울었다. 부모가 못해줘서 너가 떠나는 것 같아, 엄마의 그 말이 나를 너무 슬프게 했다. 비행기에 타서도, 기내식을 먹으면서도 내내 울었다. 세상에 이렇게 청승맞을 수가 없는 그림이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속삭임이 자꾸 나를 바닥 끝까지 끌어내렸다. 부모와 자식의 연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가족상담 이론 중에는 분화라는 개념이 있다. 분화가 되지 못한 가족 구성원들은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한다기보다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뭉쳐져서 정서적으로 고착되어 있다고 본다.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으니 서로에 대한 감정적 반응성이 높고, 이는 자연스레 상호거부를 초래하게 된다. 우리 가족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부모와 자식은 일정 기간이 되면 필연적으로 분리가 되어야 한다. 물리적, 정서적 분리가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나와 우리 부모님은 필요한 때에 그걸 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별로 인한 이 고통은 분화가 덜 된 가족이 겪어내야만 하는 몫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내 워홀은 한 바가지의 눈물로 시작했다. 앞으로의 험난한 정착과정을 예견하는 서막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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