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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 Jun 23. 2024

불안은 내 전공이니까

부전공은 무기력입니다

워홀 출국일자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채 2주도 남지 않았다.

날짜가 가까워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관문을 통과하고 있다.


그래, 올 게 왔구나. 세상이 점차 스릴러로 바뀌는 중이다.


나는 태생이 겁쟁이다. 겁쟁이치고는 종종 파격적인 선택을 하긴 하나, 아무튼 타고난 태생은 숨기지 못한다. 나는 무진장 겁이 많다. 때문에 출국을 앞둔 요즘도 불안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목과 어깨에 차례로 오는 담을 반려동물마냥 끼고 살고 있다.


30년 넘게 살면서 이처럼 대책 없이 살던 때가 있었나? 내가 너무 무모한 짓을 했나?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에 내 기분 변화를 따라가기 벅찰 정도이다. 나는 주로 '지나치게 많은 정보' 앞에서 무력해지는 편이다. 이런 내 성향을 알기에 비자를 받고 나서도 출국 직전까지는 워홀에 관련된 정보를 일절 찾아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일종의 보호책이었다. 최소한의 정보로 최소한의 결정을 내림으로써 부정성의 파도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정보에 관해 내가 믿는 한 가지는, 주제를 불문하고 내용이 부정적일수록 침투력이 더 막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국일을 앞두고 생존과 직결된 여러 사항들을 사전에 준비하고 싶은 강한 욕망에 의해 결국 정보의 홍수 속으로 자진해서 빠져들고 말았다. Voilà! 바로 이때부터 나를 둘러싼 세상이 스릴러 영화로 변하기 시작했다.


유튜브든 네이버든 구글이든, 어디에 쳐봐도 단 3초 안에 워홀에 대한 부정적인 콘텐츠들을 접할 수 있다. 그 정보들이 다 거짓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누군가의 세계 속에선 그 모든 이야기들이 빈틈없는 진실이겠지. 다만 난 그런 부정성들이 나를 압도해 무기력하게 만드는 상황이 정말, 정말 싫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내 앞에 놓인 불안을 오롯이 다 느끼면서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처리를 해나가다 보니 얼추 당장 호주에 떨어져도 굶어 죽진 않겠네, 싶었다. 이젠 숨을 돌려도 될 것 같아서 잠시 멈추어 생각해 봤다. 불안을 전공 삼아 살다보니 이제 불안에 대처하는 스킬도 점점 발전하고 있군. 나는 불안하면 주로 앓아눕는 편이었다. 무기력에 잠식돼서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편. 근데 지금은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했다. 불안과의 동일시에서 조금 빠져나온 느낌이랄까. 확실히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하는 명상이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작년 가을에 혼자 떠났던 홍콩여행이 떠올랐다. 그때 홍콩을 여행하며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 홍콩섬에는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뤼가르 로드(Lugard Road)라는 곳이 있는데, 난 네 번째 홍콩에서야 여기를 처음 가봤다. 그동안 왜 갈 생각을 못했냐 하면, 여자 혼자 밤에 가기에는 그 길이 너무 무섭고 위험하다는 후기들 때문이었다. 근데 막상 가본 뤼가르 로드는 그다지 무섭지도 위험하지도 않았다. 관광객들이 워낙 많았고 가로등도 잘 되어 있어서 딱히 무서울 새가 없었다.


지레 겁먹고 가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홍콩의 야경


M83 노래를 들으며 이 야경을 옆에 끼고 길을 내려오자니 이게 현실이 맞나 싶었다. 무슨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생각했다. 무섭다는 남들의 이야기만 듣고 오지 않았다면 영영 알 수 없었겠구나. 그동안 살면서 이렇게 놓친 경험들이 얼마나 많을까. 무섭고 위험하다는 후기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경험도 판단도 모두 각자의 몫일뿐. 각자가 각자에게 할당된 양을 소화하면 될 뿐이다. 그리고 난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워홀에 관한 정보도 같은 맥락인 셈이다. 당연히 안 좋은 일도 생길 것이고,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당하는 일도 생기겠지. 아플 수도 있고 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지. 그치만 어쩌겠는가. 그런 일은 한국에 있든 호주에 있든 우주 한구석에서 유영을 하든 생길 수 있는 일인걸. 진공 속에서 살지 않는 한 나에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불안과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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