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일이 너무 지겨워요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중에서
제목만 보면 대단히 충동적으로 떠나는 것 같지만, 사실 철저한 계획하에 실행되고 있는 플랜이다. 처음 워홀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대학원 논문학기를 보내면서부터였다. 심해진 코로나 상황으로 집에 틀어박혀 논문쓰기에만 골몰하던 그 시간 동안, 머리를 식힐 겸 우연히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끌려서 읽기 시작했다. 세상살이에 지친 주인공이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으며 1년 동안 잠만 잔다는, 다소 아스트랄한 내용의 소설이었지만 자신에게 온전한 일 년 간의 휴식을 준다는 아이디어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머지않은 시일에 나에게 1년 간의 안식년을 주리라. 내 성격상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일을 시작할 테니, 딱 2년만 일을 하고 그만두자. 그렇게 2년이 흘러흘러 바로 그 떠남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대문자 J 인간이긴 하지만 나도 이렇게 계획대로 흘러갈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그 2년 동안 꽤나 업앤다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한 번의 이직을 했고, 한 번의 연애를 했고, 동시에 두 번의 이별을 했다. 사람과 한 번, 강아지와 한 번. 사람과 강아지 모두 서로 간의 인연이 다하여 마무리된 것이긴 하다만 내게는 꽤나 큰 후유증을 남겼다. 작년 한 해는 그 이별들이 남긴 생채기를 치료하는 데 온 마음을 할애했고, 덕분에 이제는 그 두 번의 헤어짐이 내게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넌 가야 해."
"저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가만히 앉아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좀이 쑤시는 느낌이예요. 연간 일정에 따라 사업들을 해치우면서 때 되면 정해진 일을 하고, 매일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하루하루가 도무지 저랑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현 기관의 센터장님과 퇴사 면담을 하며 했던 이야기다. 나는 내가 지독한 안정추구형 인간이라 미래가 보장된 직장에 속해서 정해진 루틴으로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난 그저 불안이 높은 사람일 뿐이었다.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외부 요인으로서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을 뿐, 한 기관에 소속되어 할당된 업무를 그저 '쳐내는' 역할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 자율성을 최대로 발휘하며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2년 간의 기관 생활 끝에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행정적인 업무들이 너무 지겨웠다. 워홀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도 이런 기관 생활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보다 명확해졌다.
내가 근무하던 이전 기관은 정말 이상한 곳이었다. 일도, 사람도 다 이상했지만 무엇보다 난 그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기관장(60년대생, 유부남, 자녀가 20대 중반)이 공공연하게 성희롱스러운 언사를 하고 저녁에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밥 먹자고 하는 것은 너무 역했다. 견디다 못해 사유를 어느 정도 오픈하고 퇴사 의사를 밝히니 몇몇 직원들은 말했다. "너 그거, 센터장님이 너 챙겨주시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서운해 하시겠다. 기분 잘 맞춰드려." 그곳에 있으면서 점차 무기력해져가고 회사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자 인생이 고달파졌다.
어찌저찌 도망치듯 나와 이직한 현 기관은 (일이 재미없는 것과는 별개로) 분위기부터 사람들까지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나와 잘 맞았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은 자기가 자기에게 허용한 만큼의 세상만 볼 수 있구나. 내가 현실과 타협해 이전 기관에 계속 남았다면 직장동료들에게 순수한 애정과 존경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간혹 이전 기관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오면, 그들은 그때와 같이 여전히 회사에 만족하며 잘 다니고 있다는 얘기 뿐이다. 그래, 저들의 세계에서는 저 직장이 베스트인 것이다. 그들이 틀린 것도, 내가 틀린 것도 아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허용한 세계가 다를 뿐이다.
한때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다들 한 직장에 뿌리내리고 오래오래 잘만 다니는 것 같은데, 난 왜 이모양일까? 왜 늘, 1년도 견디기 어려워하며 그만둘 궁리만 하고 있는 걸까? 그도 그럴 것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대학 졸업반 시절 취업해 지금까지 쭉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미 회사에서 과장 직함을 단 그녀는 내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30대 커리어우먼'의 전형적인 일상을 살고 있다. 멋지게 자차로 출퇴근을 하며 외근과 출장을 다니고, 회사에서도 적당히 인정받고 성과를 내는 삶.
작가 서머싯 몸은 <달과 6펜스>에서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빌려 '타고난 방랑자로서의 삶'을 그려낸다. 그러니까 애초에 태어나기를 잘못된 장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늘 이방인으로 여기며 이곳이 아닌 어딘가, 머나먼 다른 곳에 진정한 자기 삶이 있을 것이라 믿고 그곳을 찾아 평생을 떠돌게 된다. 물론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저 구절을 읽으며 여태껏 한 번도 제대로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았던, 내 마음 한 구석에 모호한 관념으로 남아있던 무언가가 명쾌하게 설명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늘 멀리멀리 떠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그리하여 대학생 때 드디어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으나, 이만저만한 사정으로 나의 첫 해외살이는 애매하게 실패했다(참고: 이전 글 "위빠사나는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는가"). 아주 먼 여정을 돌고 돌아, 드디어 다시 떠날 기회가 온 것이다. 워홀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남들 다 간다고 하지만, 내게는 이런 의미가 있어서 좀 더 애틋하게 다가오기에 이런 긴 글도 쓰고 있다.
아무튼 내 결론은 그렇다. 다들 직장 힘든 거 참으면서 다닌다지만, 나는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 남들 다 그렇게 산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꼭 나까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자괴감은 이제 그만 느끼고 싶다.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흘린 수많은 눈물과 등가교환해서 얻은 결론이다. 나는 떠날란다. 비록 일 년짜리 기약이 있는 떠남일지라도, 우선은 후련한 마음으로 훨훨 떠날란다. 아마도 불안에 덜덜 떨며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거나, 내 앞에 펼쳐진 불확실성에 압도되어 갑자기 세상이 스릴러로 변하는 시점도 분명히 오겠지만, 그또한 나의 몫이니라. 일단 나는 떠날란다.
(Cover: Minolta-X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