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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 Apr 01. 2024

서른두 살에 공공기관 때려치고 워홀 갑니다

죄송한데 일이 너무 지겨워요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중에서




제목만 보면 대단히 충동적으로 떠나는 것 같지만, 사실 철저한 계획하에 실행되고 있는 플랜이다. 처음 워홀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대학원 논문학기를 보내면서부터였다. 심해진 코로나 상황으로 집에 틀어박혀 논문쓰기에만 골몰하던 그 시간 동안, 머리를 식힐 겸 우연히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내 휴식과 이완의 해(My Year of Rest and Relaxation)>


제목에서부터 끌려서 읽기 시작했다. 세상살이에 지친 주인공이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으며 1년 동안 잠만 잔다는, 다소 아스트랄한 내용의 소설이었지만 자신에게 온전한 일 년 간의 휴식을 준다는 아이디어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머지않은 시일에 나에게 1년 간의 안식년을 주리라. 내 성격상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일을 시작할 테니, 딱 2년만 일을 하고 그만두자. 그렇게 2년이 흘러흘러 바로 그 떠남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대문자 J 인간이긴 하지만 나도 이렇게 계획대로 흘러갈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그 2년 동안 꽤나 업앤다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한 번의 이직을 했고, 한 번의 연애를 했고, 동시에 두 번의 이별을 했다. 사람과 한 번, 강아지와 한 번. 사람과 강아지 모두 서로 간의 인연이 다하여 마무리된 것이긴 하다만 내게는 꽤나 큰 후유증을 남겼다. 작년 한 해는 그 이별들이 남긴 생채기를 치료하는 데 온 마음을 할애했고, 덕분에 이제는 그 두 번의 헤어짐이 내게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넌 가야 해."



죄송한데 일이 너무 지겨워요


"저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가만히 앉아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좀이 쑤시는 느낌이예요. 연간 일정에 따라 사업들을 해치우면서 때 되면 정해진 일을 하고, 매일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하루하루가 도무지 저랑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현 기관의 센터장님과 퇴사 면담을 하며 했던 이야기다. 나는 내가 지독한 안정추구형 인간이라 미래가 보장된 직장에 속해서 정해진 루틴으로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난 그저 불안이 높은 사람일 뿐이었다.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외부 요인으로서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을 뿐, 한 기관에 소속되어 할당된 업무를 그저 '쳐내는' 역할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 자율성을 최대로 발휘하며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2년 간의 기관 생활 끝에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행정적인 업무들이 너무 지겨웠다. 워홀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도 이런 기관 생활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보다 명확해졌다.



사람은 자기가 자기에게 허용한 만큼의 세상만 볼 수 있다


내가 근무하던 이전 기관은 정말 이상한 곳이었다. 일도, 사람도 다 이상했지만 무엇보다 난 그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기관장(60년대생, 유부남, 자녀가 20대 중반)이 공공연하게 성희롱스러운 언사를 하고 저녁에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밥 먹자고 하는 것은 너무 역했다. 견디다 못해 사유를 어느 정도 오픈하고 퇴사 의사를 밝히니 몇몇 직원들은 말했다. "너 그거, 센터장님이 너 챙겨주시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서운해 하시겠다. 기분 잘 맞춰드려." 그곳에 있으면서 점차 무기력해져가고 회사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자 인생이 고달파졌다.


어찌저찌 도망치듯 나와 이직한 현 기관은 (일이 재미없는 것과는 별개로) 분위기부터 사람들까지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나와 잘 맞았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은 자기가 자기에게 허용한 만큼의 세상만 볼 수 있구나. 내가 현실과 타협해 이전 기관에 계속 남았다면 직장동료들에게 순수한 애정과 존경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간혹 이전 기관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오면, 그들은 그때와 같이 여전히 회사에 만족하며 잘 다니고 있다는 얘기 뿐이다. 그래, 저들의 세계에서는 저 직장이 베스트인 것이다. 그들이 틀린 것도, 내가 틀린 것도 아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허용한 세계가 다를 뿐이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나까지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한때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다들 한 직장에 뿌리내리고 오래오래 잘만 다니는 것 같은데, 난 왜 이모양일까? 왜 늘, 1년도 견디기 어려워하며 그만둘 궁리만 하고 있는 걸까? 그도 그럴 것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대학 졸업반 시절 취업해 지금까지 쭉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미 회사에서 과장 직함을 단 그녀는 내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30대 커리어우먼'의 전형적인 일상을 살고 있다. 멋지게 자차로 출퇴근을 하며 외근과 출장을 다니고, 회사에서도 적당히 인정받고 성과를 내는 삶.


작가 서머싯 몸은 <달과 6펜스>에서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빌려 '타고난 방랑자로서의 삶'을 그려낸다. 그러니까 애초에 태어나기를 잘못된 장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늘 이방인으로 여기며 이곳이 아닌 어딘가, 머나먼 다른 곳에 진정한 자기 삶이 있을 것이라 믿고 그곳을 찾아 평생을 떠돌게 된다. 물론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저 구절을 읽으며 여태껏 한 번도 제대로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았던, 내 마음 한 구석에 모호한 관념으로 남아있던 무언가가 명쾌하게 설명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늘 멀리멀리 떠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그리하여 대학생 때 드디어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으나, 이만저만한 사정으로 나의 첫 해외살이는 애매하게 실패했다(참고: 이전 글 "위빠사나는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는가"). 아주 먼 여정을 돌고 돌아, 드디어 다시 떠날 기회가 온 것이다. 워홀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남들 다 간다고 하지만, 내게는 이런 의미가 있어서 좀 더 애틋하게 다가오기에 이런 긴 글도 쓰고 있다.


아무튼 내 결론은 그렇다. 다들 직장 힘든 거 참으면서 다닌다지만, 나는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 남들 다 그렇게 산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꼭 나까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자괴감은 이제 그만 느끼고 싶다.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흘린 수많은 눈물과 등가교환해서 얻은 결론이다. 나는 떠날란다. 비록 일 년짜리 기약이 있는 떠남일지라도, 우선은 후련한 마음으로 훨훨 떠날란다. 아마도 불안에 덜덜 떨며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거나, 내 앞에 펼쳐진 불확실성에 압도되어 갑자기 세상이 스릴러로 변하는 시점도 분명히 오겠지만, 그또한 나의 몫이니라. 일단 나는 떠날란다.


(Cover: Minolta-X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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