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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 Aug 13. 2024

너무 우울해서 손톱을 깎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그렇게 변태 옐로피버들에게 질려버려서 급히 한인쉐어 아파트로 이사했다. 마침 딱 교통편 좋은 최신식 아파트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더 고민할 새도 없었다. 그렇게 내가 이사 들어오자마자 다른 방 쉐어생이 이사를 나가면서 어쩌다 보니 현재는 이 넓은 집을 나 혼자 쓰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집은 이제 구해졌는데, 일이 문제였다. 임시숙소에 머무는 동안 이력서와 RSA(주류취급 자격증으로, 호주 내 술을 취급하는 가게에서 일을 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를 따놓고 온갖 잡 사이트에서 되는 대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50군데는 넣었으려나.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원래의 결심을 고이 접고 한식당 일자리까지 알아봤으나 희한하게 한식당 자리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머릿속에서 경계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건 내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에 중요도가 남달랐고 그만큼 머릿속 사이렌은 시끄럽게 울려댔다. '너, 지금 큰일 났어.'


안 되겠다 싶어서 직접 이력서를 들고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눈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혹시 너희 구인중이니? 이거 내 이력서인데 두고 갈 테니 한 번 봐줘. 그마저도 몇몇 가게에선 문전박대 비스무리한 것까지 당하곤 했다. 서러워도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이력서를 들고 돌아다니는데 길 위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 이대로 일 못 구하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지? 길을 돌아다니면 한국인들이 참 많이 보이는데 저들은 다 어디서 일하는 걸까 싶었다. 꼭 나만 이렇게 일 없이 빌빌대는 것 같았다. 살면서 일자리가 이렇게까지 간절하던 때가 있었나?


그렇게 우울한 상태로 저녁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문득 엉망인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국에서 손톱에 상당히 신경 쓰는 편이었다. 근데 호주에 와 일주일 동안 딸기를 따면서 손가락 살갗이 마구잡이로 까져있었고, 도합 40키로의 짐을 이고지고 떠돌이 생활을 하느라 손톱도 여기저기가 깨져서 엉망인 상태였다. 그냥 이대로 둘까, 하다가 갑자기 뭐에 홀린 듯 캐리어에서 손톱깎이와 네일파일을 꺼내 아주 정성껏 다듬었다. 지금 내 일상이 엉망이라고 손톱까지 엉망으로 둘 순 없어. 내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하나둘씩 정돈해 나가야지. 되는대로 살 순 없잖아.


그렇게 손톱을 싹 다듬은 뒤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한 키즈카페의 구인공고를 보고는 다음날 당장 레쥬메를 들고 찾아갔다. 안녕, 너희 혹시 구인중이니? 내가 사실 인터넷에서 공고를 봤거든. 다행히 그 자리에서 바로 매니저와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내 한국에서의 아동상담 경력이 여기에서만큼은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나, 한국에서 계속 애들이랑 일했어서 애들도 잘 다룰 수 있고 부모들이랑도 잘 소통할 수 있어. 나 한 번 믿어봐. 진짜 잘할 수 있다니까?


온몸으로 날 뽑아달라고 어필하고 키즈카페를 나서는 길, 이때만큼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면접이라도 한 번 볼 수 있어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랄까. 연락이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진전되고 있다는 생각에 편한 마음으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호주의 플랫화이트


사실 이때 난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고, 돈 한 푼 나가는 게 아까워서 집에서 만든 샌드위치를 들고 다니며 하루에 한 끼로 때우는 청승맞기 그지없는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이날의 커피 한 잔이 더 기억에 남는다. 여전히 맘 속 불안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해나가고 있는 내 자신이 대견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이 낯선 도시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애쓰는 내 모습이 썩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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