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na Aug 13. 2024

도서관에서 만난 인연

내가 운명론자인 이유

그렇게 키즈카페 면접을 보고 나와 커피를 마시며 우울에 젖어있던 나를 조금씩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여전히 맘은 불안하고 걱정이 넘실댔지만,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이는 듯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니 갈 곳이 없어서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 무렵 난 거의 참새 방앗간 마냥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기 바빴다. 도서관은 돈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 마침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한국책 코너가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채사장의 책을 읽을 수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겸허히 의무를 행하고, 결과를 기대하지 말라.'


이 구절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마음에 아로새겼다. 결과를 미리 타진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보자. 마치 지금 나에게 누군가가 해주는 조언 같았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한 세 시간 있었던가? 배가 너무 고파서 나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좀 더 책을 읽기로 했다. 근데 그때 어딘가에서 딱 봐도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미팅룸으로 우르르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지? 분명 외국인들을 위한 모임 같은데. 나도 외국인이잖아. 당시에 이 도시에서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사람' 그 자체에 너무 목말라 있던 나는 당장 가서 직원에게 물어봤다. 외국인들을 위한 무료 대화모임이란다. 망설일 것 없이 나도 참여하겠다고 했다. 배고파도 도서관을 안 나가고 버틴 보람이 있었네.


당연한 말이지만, 호주에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종일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비일비재하다. 당시의 내가 그랬다. 외로움에 지쳐있었고, 타인과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하고 싶었다. 대화모임? 한국이었다면 듣는 순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을 단어 조합이다. 사람 많은 곳이라면 일부러 피해다니던 내가 대화모임이라는 말에 반색을 하며 들어가 신나게 떠드는 모습은 한국에서 상상하기도 힘든 모습이었다. 사람에게 연결감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 감각이구나.


그렇게 신나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한 여성분이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자기소개를 하는데 위홀러고 한국인이란다. 얼마만의 한국인인지, 너무 반가워서 통성명을 하고는 함께 한 시간가량을 떠들었다. 나더러 일을 하냐길래 아직 찾는 중이라고 했더니, 마침 자기가 지금 하는 일을 다음 주에 그만두는데 생각 있으면 이력서를 전달해 주겠다고 한다. 사장님이 한국분이신데 너무 좋으시다고.


나는 지금도 이 순간이 너무 신기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