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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 Aug 13. 2024

호주에서 변태 만난 썰 풉니다(2)

차에 저건 뭐야?

Case 3. 노망난 변태 할배

그렇게 임시숙소에서 집주인의 행방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지내다 보니 너무 피곤했다. 나 얼른 집도 구해야 하고 일도 구해야 하는데, 아직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저런 변태자식들만 자꾸 꼬이니 울적했다.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조금 떨어진 동네의 쇼핑몰 구경을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가려는 찰나, 길에서 웬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너 어디서 왔어? 한국이요. 그럴 줄 알았어. 내 아들 전여친이 한국인이었는데, 한국사람들은 아시안치고 키가 크더라고.


백발의 할아버지에, 자기 아들 사진까지 보여주길래 처음엔 아들을 나한테 소개해주고 싶은 건가? 싶었다. 근데 얘기를 해보니 동양인치고 키가 매우 큰 내가 신기해서 말을 걸어봤다고 한다. 그럴 수 있지. 워홀러라고 했더니 자기 아는 사람 중에 직원 구하는 친구가 있는지 알아봐 준다며, 번호를 달라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번호를 줬다. 집에 가려는데 트램역까지 자기 차로 태워다 준댄다.


사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아무 의심이 없었다.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할아버지였고... 은퇴 후 일상이 무료해서 낯선 이방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인심 좋은 노인네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트램역까지만 얻어 탈 생각으로 차를 탔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랬더니 갑자기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마침 가는 길에 예쁜 해변이 있는데 한번 보여주고 싶댄다. 네? 뭐... 그래요.


처음으로 밟아본 호주의 백사장은 좋긴 좋았다.


그렇게 잠깐 해변 구경을 하고 집에 가는데 차 안에서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느니, 주말에 교외로 놀러 가자느니 그제야 본격적으로 노망난 발언을 하기 시작한다. 아, 나 또 당했구나. 왜 이걸 진작에 몰랐을까. 집에서 떨어진 곳에 얼른 내려달라고 한 뒤 집으로 돌아와서는, 또 다른 변태 집주인 눈을 피해 조용히 우울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정말 너무 우울하고 심란했다. 왜 저들의 변태적인 사인을 미리 눈치채지 못했을까? 내가 스스로 너무 바보같이 느껴지고 무력감이 들었다.


이때에서야 내 안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호주 문화고 나발이고, 내 직감이 별로고 찝찝하면 그게 맞는 거야. 저들의 가치관을 내가 구태여 파악하고 알아보면서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어. 아니다 싶으면 바로 매몰차게 굴자.


(번외) '도대체 차에 저건 뭐야?'

우선 이 남자는 변태는 아니었다. 0번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이혼한 후 딸을 혼자 양육하는 아파트에서 여자 쉐어생을 구하는 인도인 엔지니어였다. 다만 이 사람도 말이 무진장 많아서 한 시간 반 동안 신나게 (일방적인)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 약속이 있었던 걸 깜빡했다며, 지금 차로 나갈 건데 괜찮으면 트램역까지 태워다 주겠단다. 그 집은 트램역이랑 거리가 꽤 있었기에 더 이상 걷기 싫은 맘에 차를 얻어 탔다.


근데 차를 타더니 시동을 걸기 전에 갑자기 무슨 기계에다 숨을 열심히 불어대기 시작한다. 한 두번으로는 시동이 안 걸리고 삐삐 거리니까 또 열심히 막 숨을 불어댄다. 와중에도 계속 수다는 떠는 중이다(정말 경이로운 입담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기계에 정신이 팔려서 저 사람이 뭐라는지 하나도 안 들렸다. 저게 대체 뭐지?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나? 생긴 게 암만 봐도 음주운전 방지를 위해 부착되어 있는 기계 같았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는 도중에도 중간중간 삐삐 거리는 알람이 울렸고, 그때마다 이 남자는 말을 하다말고 급히 기계에 숨을 불어넣었다. 와, 살다살다 저런 건 또 처음 보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구글에 검색해 봤더니 인터록이라고 하는 기계이고, 내가 생각하는 용도가 맞았다. 그럼 저 사람은 음주운전으로 이미 걸린 적이 있다는 건가? 호주 음주운전 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저걸 멋으로 달아놓았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난 그저 집만 구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별 신기한 경험을 다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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