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은 당신의 머릿속에 산다'
벌써 몇 년 째 유행하는 MBTI 테스트는 E나 I로 시작하는 결과를 통해 각자의 심리적 성향을 분석한다. E는 성격상의 외향성을, I는 내향성을 나타내는데 이는 ENTP, INFJ와 같은 16가지의 MBTI 유형을 크게 둘로 나누는 기준이다. 언어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인 언어학도 이러한 방향성에 따라 둘로 나눌 수 있다. 바로 외재적 언어학(E-linguistics)과 내재적 언어학 (I-linguistics)이다.
외재적 언어학과 내재적 언어학의 구분은 '문법'과 '언어'의 관계를 보는 시각의 차이에 기반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문법과 언어 중 무엇이 더 먼저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외재적 언어학과 내재적 언어학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외재적 언어학은 대부분의 전통적 문법체계가 전제하는 입장이다. 여기서 '전통적' 이라고 하는 것은 70여년 전 촘스키의 생성문법이 도입되기 이전의 언어학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랑그와 파롤, 기의와 기표로 유명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아직까지도 출판되는 문법서를 출판한 블룸필드(Leonard Bloomfield) 등을 생각할 수 있다 (Araki 2017). 앞서 말한 언어와 문법의 관계로 정의하자면 외재적 언어학은 사용되는 언어가 앞서고 이를 통해 문법이라는 지식이 나중에 구성된다는 관점이다. 사실 이런 순서는 일반적 상식에도 부합한다.
외재적 언어학(E-linguistics): 언어 사용 → 문법
따라서 외재적 언어학은 언중에 의해 사용되는 언어, 정확히 말하면 이미 '사용된' 언어를 분석한다. 예를 들어서 블룸필드는 언어 공동체(speech community)의 발화를 총합한 것이 바로 언어라고 했다. 이에 따르면 아직 표면적으로 등장하지 않은 발화와 문장은 언어학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과거의 의미가 더해진 '사용된' 언어를 분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추상적으로 말해 외재적 언어학은 이미 사용되고 있는 언어 기호와 그 의미에 집중한다.
내재적 언어학의 입장에서 보면 외재적 언어학은 언어를 사용하는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다. 이 입장에서는 기존 언어학이 인간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기호와 의미만 다룬다고 비판할 수 있다. 내재적 언어학은 촘스키가 자신의 언어학파인 생성문법을 규정하며 구성한 개념이다. 여기서는 언어 현상을 기반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정신과 두뇌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이처럼 인간의 내부를 고려하기 때문에 내재적 언어학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처럼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적, 생물학적 속성에 집중하는 입장에서 보는 언어는 시각체계, 사고체계와 같은 하나의 선천적 인지체계이다. 여기서 문법이란 언어가 운용되는 원리를 말하는데 이는 인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엔진이 된다. 그런데 문법이 일종의 엔진이라면 문법과 언어 사용 중 무엇이 먼저일까? 그렇다, 내재적 언어학에서는 문법이 언어 사용에 앞선다. 왜냐하면 문법이 언어를 원활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원리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내재적 언어학(I-linguistics): 문법 → 언어 사용
이 파격적인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다종다양한 언어에서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내재적 언어학을 따른다면 서로 너무나 달라 보이는 언어 아래로 인간이라면 반드시 공유하는 생물학적 문법이 있다는 전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성문법가들에겐 다행히도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고전적인 예시로 X-bar 이론이 있다. 현재는 BPS(Bare Phrase Structure)로 업데이트된 이 이론은 간단히 말해 모든 언어가 서로 똑같은 3단 계층 구조로 정리된다는 내용이다. 이 이론은 너무나 상이해 보이는 언어, 가령 북미 원주민 언어와 일본어 사이에서 공통적인 계층 구조를 발견해낸다.
정리하자면 외재적 언어학은 주류 전통적 언어학의 입장으로 이미 사용된 언어 기호와 의미를 다룬다. 따라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문법 체계보다 앞선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두고 그 규칙성을 정리한 것이 문법이라 이해한다면 사실 이런 입장은 상당히 상식적이다. 한편 언어 사용과 데이터에 집중한다는 특성은 거대한 언어 데이터인 코퍼스(copus)를 기반에 두는 현대의 코퍼스 언어학 등 전산언어학 분야에도 계승되었다.
반면 내재적 언어학은 언어 기호와 의미를 통해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에게 집중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뇌와 정신이 어떻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내재적 언어학은 그 이름대로 인간에게 내재적, 선천적 언어 능력 혹은 본능이 있다고 본다. 선천적으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생물학적 기전을 '언어 기관(Faculty of Language)', 언어 기관의 기본적 원리를 '보편 문법(UG; Universal Grammar)'이라고 하는데 이 키워드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여기서는 커다란 분류에 집중해서 세부적인 차이를 충분히 적지 않았음을 밝힌다. 내재적 언어학 안에서도 세부 학문마다 견해 차이가 클 수 있고 '전통적 언어학'이라고 치부한 여러 문법 이론들도 서로 너무나 다를 수 있다. 다만 MBTI의 첫 글자 처럼 E와 I는 언어학 전반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임에 틀림없다.
참고문헌
Araki, N. (2017). Chomsky’s I-language and E-language. Bull. Hiroshima Inst. Tech. Research Vol.51
Chomsky, Noam (1986). Knowledge of Language: Its Nature, Origin and Use. Prae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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