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은 당신의 머릿속에 산다'
의미론(Semantics)은 언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연구하는 분야이다. 그런데 언어의 의미를 연구한다고 할 때 대상이 되는 언어의 단위가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스타', '사과', '커피' 와 같은 어떤 어휘, 혹은 문장, 실생활에 있을 법 한 대화는 물론 더 나아가 경전이나 법, 문학 작품과 같은 텍스트가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 중에서 우선 문장(sentece)에 집중해보자. 문장은 아마 어휘와 함께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단위일 것이다. 문장이 통사적 규칙성이 실현되는 주요 단위이자 의미상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 언어의 최소단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장이 무엇인지를 따지면 이것도 한참 복잡한 주제일 수 있다. 일단 여기서는 문장을 '주술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의미적 완결성을 지닌 언어 단위'로 제한해 생각해보자.
1. 문법 조건과 의미 조건
문장이 적절하게 구성되려면 우선 해당 언어의 문법을 지켜야 한다. 예를 들어 수 일치, 동사가 요구하는 필수적 술어(논항)의 갯수 충족 등이 있다. 다음의 영어, 한국어 예문을 살펴보자.
문법을 위반한 문장
1. *They is running. (수일치 위반)
2. *I gave to Shelly. (필수 논항 결여, 자릿수 위반)
3. *나는 되었다. (필수 논항 결여, 자릿수 위반)
* 논항(argument)은 서술어가 요구하는 요소를 말한다.
* 별표(*)는 비문법적 문장을 표시한다.
1-3번은 문법을 준수하지 않아서 적절한 문장이라 말 할 수 없다. 위 예문이 문법적 문장이 되려면 가령 1번 문장은 'They are running (그들은 달리고 있다)', 2번 문장은 'I gave it to Shelly (나는 그것을 셸리에게 주었다)', 3번 문장은 '나는 성인이 되었다' 로 수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문법 규칙을 지켜도 곧바로 '적절한' 문장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의미적 적합성 또한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의미적 이상(Semantic Anomaly) 문장
1. #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 (무색의 녹색 아이디어는 격노하여 잔다)
2. #매마른 커피우유가 달리는 절벽은 너무 평평하다.
*'#' 표는 문장이 의미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나타냄.
1번 문장은 의미적 이상(Semantic anomaly)을 보여주는 유명한 예문으로 1957년 Chomsky가 제시했다. 이 문장은 표면상 문법적인 문제가 없다. 주어와 동사의 수일치, 명사구의 구성, 부사의 위치 등이 모두 문법적이다. 하지만 'colorless green(무색의 녹색)'이나 '격노하여 잔다(sleep furiously)'는 의미적으로 부적절하다. 2번 문장도 마찬가자이다. 커피우유는 액체이므로 매마를 수 없고, 절벽은 평평할 수 없다. 물론 시적이거나 비유적으로 쓰일 수 있겠지만 그럴 때에도 원어민은 해당 문장의 의미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감지한다.
이렇게 문장 구성에 가해지는 의미적 제한을 의미선택(S-selection)이라고 하는데 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가령 '수첩은 원피스를 마신다'는 의미적으로 부적절하다. 왜 그럴까? 의미선택 개념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마시다' 라는 동사는 주어 자리에 살아있는 (유생성) 명사를 논항으로 요구한다. 그런데 '수첩'은 살아있지 않아서 이 요구를 충족할 수 없다. '마시다'는 또한 그 직접목적어 자리에 액체로 된, 먹을 수 있는 명사 논항을 요구한다. 이번에도 '원피스'는 이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 따라서 '수첩은 원피스를 마신다'는 의미상 적절하지 않다.
참고로 의미선택 (S-selection)과 대비해서 문법적으로 적절한 종류의 논항이 와야 한다는 제한을 범주선택(C-selection) 이라고 한다. 여기서 범주(category)란 해당 논항이 가령 명사에 속하는지, 부사에 속하는지를 따지는 틀인데 가볍게는 품사 제약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문장이 적절히 구성되려면 문법과 의미의 두 가지 제약을 모두 지켜야 한다는 점을 포착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2. 문장 의미의 관계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방법 중 문장의 진실과 거짓에 기준을 두는 방법을 '진실조건부 의미론 (truth-conditional semantics)' 이라고 한다. 거창한 용어지만 기본은 간단하다. 이 접근법은 문장을 진실 혹은 거짓으로 판별할 수 있어 진리값이 존재하고 문장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 문장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예를 들어 'Eagles fly (독수리들은 날아다닌다)' 라는 문장을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에 비추어 문장의 참, 거짓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진실조건부 의미론은 한계가 있다. 같은 진리값을 지니는 문장, 예를 들어 '밥을 먹다'와 '익힌 쌀을 섭취하다', '밥을 쳐먹다'는 명제적으로는 같겠지만 이를 사용하고 듣는 사람에게 상이한 효과를 가질 것이다. 또한 '녹색은 아름답다'와 같은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문장도 문제이다. '아름답다'를 두고 쉽게 참, 거짓을 나누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장의 기본적 의미를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주요한 시선으로 진실조건부 의미론이 유용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현대적인 진실조건부 의미론은 방법이 좀 복잡하지만 까다로운 문제도 적극적으로 다룬다.
이렇게 진실조건적으로 문장을 이해할 때 파생되는 몇 가지 기본적 관계가 있다. 첫번째는 함의(entailment)이다. 함의란 어떤 문장이 참일 때 반드시 참이 되는 다른 문장에 대한 관계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함의 관계(entailment)
1. 지민이는 머핀을 먹었다.
2. 지민이는 빵을 먹었다.
3. 지민이는 음식을 먹었다.
1번 문장과 같이 지민이가 머핀을 먹었다면 지민이가 빵을 먹었다는 2번 문장은 참이 된다. 이때 1번 문장이 2번 문장을 함의한다고 말한다. 1번 문장과 3번 문장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함의 관계이며 2번과 3번 문장도 그러하다. 물론 누군가 '머핀이 빵이야?'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휘의 뜻을 다루는 어휘 의미론의 영역이 될 것이다. 혹시 '머핀은 빵이 아니라 과자야!' 라는 반론이 걱정된다면 논란이 없어 보이는 3번 예문에 주목하자. 지민이가 머핀을 먹은게 사실이라면 지민이가 음식을 먹은 것 또한 사실이지 않은가? 이런 관계가 바로 함의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인 전제(presupposition)도 중요하다. 다시 지민이가 등장하는 예문을 보자.
전제 관계 (Presuppositon)
1. 지민이는 머핀을 먹었다.
2. 지민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다.
3. 지민이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상태이다.
1번 예문 '지민이는 머핀을 먹었다'는 2번이나 3번 문장을 전제하고 있다. 다만 전제는 문장의 참, 거짓 판단과 독립적이다. 전제는 문장의 참, 거짓과 별도로 어떤 문장이 성립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굉장히 아리송한 개념이다. 특히 전제는 함의와 도대체 뭐가 다른걸까? '지민이는 머핀을 먹었다'가 '지민이는 빵을 먹었다'를 함의하는 것과 '지민이라는 사람이 있다'를 전제 하는 것 사이에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전제는 어떤 문장이 참, 거짓의 틀 안에서 판단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본적 토대이다. 그러니까 만약 지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민이가 머핀을 먹은게 사실인지 거짓인지 따지는 것은 의미없다. 문장이 애초에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제는 문장의 의미를 성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기본 요소이다.
전제를 알아보는 쉬운 방법으로 부정을 통한 것이 있다. 전제는 원래의 문장을 부정했을때도 그대로 살아남아야 한다. 가령 '지민이는 음식을 먹었다' 라는 원래 문장을 부정하여 '지민이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바꾸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에도 전제에 속하는 '지민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다'는 여전히 사실이다. 따라서 이 명제는 전제이다.
전제나 함축보다 일상적인 개념인 모순 관계(Contradiction)와 반의 관계(Antonymy)도 중요하다. 모순 관계는 동시에 참일 수 없는 문장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희서는 하얀 셔츠를 입고 있다'와 '희서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 '지민이는 음식을 먹었다'와 '지민이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동시에 참일 수 없는 모순 관계이다.
한편 반의 관계는 어휘 의미론에 더 가까운 개념일 수 있는데 가령 '있다' 와 '없다', '높다'와 '낮다'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반대 의미 관계를 말한다. 여기서 반의 관계를 언급한 이유는 많은 경우 모순이 반의어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 책은 두껍다'와 '저 책은 얇다'는 '두껍다'와 '얇다'의 반의 관계로 모순 관계가 유지된다.
우리는 누구나 언어에 둘러싸여 살아가며 문장은 그 언어의 기본 단위이다. 따라서 문장과 문장의 의미를 알아두면 여러 이점이 있다. 문장 의미 개념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우리에게 중요한 대화나 텍스트를 한 번 쯤 자세히 따져볼 수 있다. 가령 시험 지문, 계약서나 약관, 협상이나 입장문 등을 접하며 핵심 주제와 중요한 허점을 보다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독서를 하거나 영화를 보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배울 때도 적절한 문장을 만들기 위한 의미적 원칙을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Kreidler, C. (1998). Introducing English Semantics (1st ed.). Routledge.